등록 : 2017.08.02 20:04
수정 : 2017.08.02 20:10
|
로망 포르노 <하얀 손가락의 장난> 포스터. 인터넷 갈무리
|
[ESC] 커버스토리
|
로망 포르노 <하얀 손가락의 장난> 포스터. 인터넷 갈무리
|
일본은 에로영화, 성인영화의 강국이다. 온갖 성인물(AV)들이 넘쳐난다. 그 가운데 작가주의 성향의 특별한 성인물도 있다. 바로 ‘로망 포르노’(Roman Porno)다.
1960년대 후반, 일본의 영화 스튜디오들은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불황에 접어들었다. ‘닛카쓰’도 도산 위기에 처했다. 닛카쓰 스태프 노조는 위기를 극복하고자 ‘저비용 고효율’을 모토로 극장용 성애영화를 제작했다. 이것이 ‘닛카쓰 로망 포르노’(日活ロマンポルノ)의 시발이다. 닛카쓰는 첫 작품으로 중산층 주부의 부도덕한 성생활을 그린 <단지처: 오후의 정사>(1971)를 만들었고, 영화가 흥행하자 로망 포르노 제작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로망 포르노를 만드는 감독들은 스튜디오에 월 2회 이상 배급을 목표로 편당 평균 제작비 750만엔(약 7600만원), 70분의 러닝 타임으로 열흘 안에 순발력 있게 영화를 내놓아야 했다. 성애영화인 만큼 10분마다 한번씩 섹스 신이 등장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이를 뒤집으면, 기본적인 제작 조건만 지키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도 관계없다는 얘기가 된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성애영화지만 스튜디오의 전문 인력과 시스템 덕에 비교적 완성도 높은 드라마와 작가적 개성을 갖춘, 성애영화의 탈을 쓴 명작이 숱하게 탄생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에이브이 시장’의 확장과 함께 로망 포르노 장르는 사장되었다.
이 ‘닛카쓰 로망 포르노’가 최근 부활했다. 2016년 닛카쓰는 로망 포르노를 다시 제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도쿄, 로망 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 기자회견에서 사토 나오키 닛카쓰 사장은 “자유가 재능을 배출한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뉴욕에서 열린 고전 로망 포르노 상영회에 대한 여성 관객들의 관심이 뜻밖이었다고도 언급했다. 닛카쓰 로망 포르노의 규칙에 입각한 신작도 그 자리에서 함께 공개됐다. 나카타 히데오의 <화이트 릴리>, 소노 시온의 <안티포르노>, 유키사다 이사오의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시라이시 가즈야의 <암고양이들>, 시오타 아키히코의 <바람에 젖은 여자>다. 이 작품들은 요즘 한국에서도 차례로 개봉되고 있다.
현재 일본 영화계에서 작가들의 오리지널 창작물이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다는 것은 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다만 104년 전통을 가진 대형 스튜디오(닛카쓰)가 창작자들을 위한 발판을 구축하려 노력한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의 메이저 남성 감독들이 ‘포르노’라는 장르 안에서 여성 관객을 위한 영화를 만들겠노라 선언한 것 또한 의미가 있다. 남성 전유물로 취급돼온 성애영화 장르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본 영화계의 유리천장을 두드리는 신선한 시도로도 읽힌다.
윤혜지(씨네플레이 에디터)
에로영화(Ero movie) 성적 욕망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의 영화. 성애 장면을 주로 다루지만 직접 성행위를 하지는 않음. 실제 성행위를 집중 묘사하는 포르노 영화와는 구별됨. ‘에로’는 에로틱을 줄인 일본어식 표현. 정확한 표현은 ‘에로틱 무비’(Erotic movie), ‘에로틱 필름’(Erotic film)이나 한국에선 ‘에로 영화’(Ero movie)로 통용된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