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에스에이티(SAT) 학원 출입문이 잠겨 있다. 에스에이티 학원들은 국제학교 방학이 끝나는 8월 초에 여름방학 특강을 마무리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아이 혼자 고시원 보내라는 학원
“주저하면 경쟁에서 도태” 겁주며
고액 수강료 대놓고 홍보
“시간당 5만원은 싸구려” 매도
수업시간 부풀리거나 현금만 받아
상한선 훌쩍 넘는 학원이 태반
학부모도 “비싸면 다르겠지” 싶어
단속 비웃는 ‘떴다방’식 운영
“강의 아닌 상담으로 거짓신고
1분당 5천원까지 받아내기도”
걸리면 폐업, 새로 열면 그만
|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에스에이티(SAT) 학원 출입문이 잠겨 있다. 에스에이티 학원들은 국제학교 방학이 끝나는 8월 초에 여름방학 특강을 마무리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해마다 여름이 되면 유난히 앳된 얼굴의 자취생들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배회한다. 국외 조기유학을 떠났다가 방학 특강을 듣기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을 대치동에서는 ‘리터니’ 또는 ‘일시귀국생’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최종 진학 목표는 국외 대학이 아니라 한국 대학의 재외국민 전형이다. 국외 체류 3년 이상이면 자격이 생기는 이 전형에서는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가 등락을 좌우한다. 이들을 위한 단기 속성과정이 생긴 것은 2010년 무렵이라고 학원가에선 말한다.
<한겨레>는 지난 두 달 동안 리터니들을 직접 만나 일상을 따라가 봤다. 형편에 따라 어떤 중학생은 고시원에, 어떤 초등학생은 호텔에서 생활한다. 편의점에서 홀로 끼니를 때우고 어두운 자취방으로 귀가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흔한 풍경이다. 변질한 입시제도와 불법 사교육 시장, 학부모의 욕망이라는 트라이앵글이 리터니를 양산하는 엔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3회에 걸쳐 그 실태를 파헤친다.
“아이들 묵는 숙소가 고시원이 일반적이라 확인 답사를 위해 방문해 보면 그 협소함에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어떻게 여기에 우리 아이들을 거주하게 할까’라는 생각이 순간 확 솟구치지만, 지금까지 늘 그래 왔던 일입니다. 중2 어린 여자아이가 베이징에서 혼자 와서 10주를 죽어라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 아이는 명문대에 합격했습니다. (…) 10주 동안 어떻게 살까가 고민이라면 이는 경쟁에서 도태되는 출발점입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어느 에스에이티(SAT) 학원 원장이 최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쓴 글이다. 이 원장은 “아이를 기존 타성에서 벗어나게 하라”며 “부모가 굳이 동반할 필요 없이 학원 근처 고시원에서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줌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14살 아이가 고시원에서 자취한 경험을 모범 사례로 내세우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학입시 경쟁에서 실패할 것처럼 겁을 주는 것이다.
SAT 학원들의 ‘불안 마케팅’
방학 시즌이 되면 학원들은 재외국민특례전형(특별전형)으로 한국 대학에 입학하려는 조기유학생 학부모의 불안을 극대화한다. “새로운 입시제도를 적용받는 8~9학년(미국 기준)은 선배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해야 한다” “올해의 게으름은 내년 더 큰 사교육비로 돌아온다”고 홍보한다. 이른바 불안 마케팅이다. 학부모의 불안과 욕망, 그리고 이를 자극하는 학원들의 행태는 여름마다 ‘리터니’들을 가혹한 환경에 몰아넣는 주범이다.
대부분의 에스에이티 학원들은 원생에게 원룸·고시원 계약을 알선하는 등 숙소를 직접 소개해준다. 학원 누리집(홈페이지)에 고시원과 학사 등을 나열한 ‘추천 숙소 목록’이 올라와 있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숙소를 구하기 힘든 리터니들의 사정을 배려해준다는 측면도 있다. 대치동 에스에이티 학원의 한 직원은 “학부모들이 직접 알아보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우리 학원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숙소 목록을 원생들에게만 제공한다. 일종의 등록 혜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속사정을 아는 이들은 다르게 말한다. 2년 전 에스에이티 학원에서 상담실장으로 일했던 ㄱ씨는 “한국까지 자녀와 동행할 수 없는 학부모들을 상대로 일종의 영업을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며 “어떤 학부모가 아이 혼자 보내겠다는 결정을 마음 편히 하겠나. 원래는 보낼 생각이 없었던 엄마들도 학원에서 ‘다들 그렇게 한다’고 말하면서 숙소를 소개해주니까 보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큰돈은 안 되지만 학생을 소개해주면 (학원이) 부동산에서 일정한 대가를 받는 식으로 연계해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학원들도 이런 사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한 에스에이티 학원은 올 여름방학을 앞두고 인터넷 학부모 카페에 “선릉에서 10년 경력이 넘는 부동산과 연계해서 좋은 반응을 변함없이 받아 왔다”고 홍보했다. 실제로 대치동에서 학원과 부동산이 일종의 협업 관계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리터니 학부모를 상대로 ‘한 철 장사’를 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협력도 쉽다. 학원이 학부모에게 부동산을 소개해주거나, 반대로 부동산이 학부모에게 학원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
한 에스에이티(SAT) 학원은 올해 여름 특강을 앞두고 학부모들에게 ‘학원 수강료를 현금으로 내 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보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
“시간당 5만원은 싸구려”
에스에이티 학원들은 그렇게 끌어모은 학생들에게서 얼마를 받아갈까. 학부모 사이에서는 일주일 120만원(하루 8시간 수업 기준)이 평균 시세로 통용된다. 8주 과정에 학원 수강료만 1천만원 가까이 드는 셈이다. 실제로 <한겨레>가 대치동과 신사동 일대의 에스에이티 학원 여섯 군데 수강료를 취재한 결과, 8주 평균 수강료는 약 1033만원이었다. 이보다 비싼 곳도 수두룩했다. 제일 비싼 곳은 신사동 ㅂ학원으로 1302만원을 받았다. 호텔과 연계해 ‘여름방학 생활관리형 캠프’라는 명목으로 1600만원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ㄱ씨는 “에스에이티 학원 수강료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라며 “기본적으로 한 철 장사다 보니 과다 책정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학원이 여름 특강 수강료는 평소보다 2~3배 높은 수준으로 책정한다. 값이 천정부지로 뛸 수밖에 없다. 그는 “이마저도 매년 10% 정도씩 오르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고액 수강료는 불법이다. 교육 당국은 지역별·과목별로 적정한 분당 단가 상한선을 마련해 규제하고 있다.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은 외국어 수업의 분당 단가 상한선을 255~287원으로 지정했다. 시간당 1만7220원을 넘으면 안 되는 셈이다. 하루 8시간, 주 5일 수업한다고 가정하면 8주 수강료는 551만400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 <한겨레>가 취재한 학원 6곳 중 이 기준 미만인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모두 위법 소지가 크다.
그런데도 학원들은 오히려 고액 수강료를 홍보에 버젓이 활용한다. 수강료를 저렴하게 책정하는 학원은 ‘실력이 나쁜 곳’이라고 매도하는 행태도 쉽게 볼 수 있다. 9년 동안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해온 한 원장은 학원 누리집에 “수강료를 시간당 3만~5만원 부르는 싸구려 학원들이 있다. 싼 거 좋아하는 맘(엄마)들 위해 수업 왕창 깔아주고, 강사는 엉망인 곳”이라며 “그 가격에 많은 걸 바라면 안 된다. 그 돈에 그만한 물건이 당연하다”고 비난했다.
중산층 이상 가정을 상대로 하는 장사인 만큼 ‘싼 게 비지떡’이라는 식의 홍보는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 학부모는 “비싼 학원일수록 뭔가 있겠지 싶어서 한번이라도 더 쳐다보게 된다”며 “또 전체적인 시세라는 게 있어서 그보다 낮으면 오히려 의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세와 관련해서는 학원들이 매년 여름 특강을 앞두고 짬짜미(담합)를 한다는 의혹도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원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오고 가는 말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며 “아예 교육청에 신고하지 않고 운영하는 불법 학원의 경우 ‘배 째라’는 식으로 수강료를 훨씬 더 비싸게 받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에스에이티 학원들이 운영하는 기숙 캠프도 불법 소지가 크다. 현행법은 숙박시설을 갖춘 기숙학원에 대해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교육청 허가를 받아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23일 기준 서울 시내에는 허가받은 정식 기숙학원이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원에서 호텔을 소개해주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전단에 ‘숙식 제공’ ‘기숙 캠프’ 같은 용어를 쓰거나 사실상 기숙학원처럼 운영하고 있다면 불법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에스에이티 학원 앞에 교재와 학습자료 등이 상자째 버려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단속 비웃는 ‘떴다방’ 행태
상한선을 넘는 고액 수강료는 과태료나 벌점 등 행정처분 대상이지만 대부분 법망을 피해간다. 교육부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2014~2019년 강남서초교육지원청 학원 등 지도·감독 적발 내역’을 보면 <한겨레>가 취재한 학원 6곳 중 이런 사실이 적발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교육청이 가장 최근 점검에 나선 건 지난 13일이다.
에스에이티 학원들이 단속을 피할 수 있는 이유는 이른바 ‘떴다방’식 운영 때문이다.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 잠시 폐업을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다시 새로운 이름으로 개원을 하는 방식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원 수는 많고 정기점검 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5년 이상 정기점검을 받지 않은 학원들을 먼저 점검한다. 신규 등록 학원은 아직 계도기간이라고 보기 때문에 순위에서 밀린다”며 “이런 사실을 악용해서 폐원과 개원을 반복하면서 단속망을 피해가는 학원들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치동 ㄷ학원은 2017년부터 해마다 이름이 바뀌었다. 이 학원 원장은 2016년 3월 본인 이름으로 운영하던 학원을 폐원한 뒤 이듬해 같은 자리에 새로 개원했다. 지난해와 올해에도 설립자 이름과 학원 명칭을 바꿨다. 2년 연속 같은 이름으로 운영한 적이 없는 셈이다. 2016년 이후 이 학원은 교육청의 지도·점검 대상에 한번도 오르지 않았다. 합법 수강료 기준을 초과하면서도 적발되지 않고 버젓이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다.
수강료를 현금으로만 받거나 강의 시간을 부풀리는 식으로 단속을 피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ㄷ학원이 교육청에 제출한 교습비 게시표를 보면, 에스에이티 종합반 에이(A)의 경우 매달 240시간 수업을 하고 수강료는 400만원 받는다고 돼 있다. 그러나 올여름 이 학원에 다녔던 한 학생은 “저런 반은 없었다. 내가 다녔던 반은 하루 4시간 수업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습이었는데 한 달에 400만~500만원 냈다”고 말했다. 한 에스에이티 학원 원장은 “실제로는 여름방학 동안 한 학생당 2천만원씩 뽑아내고도 적발되지 않는 학원들이 즐비하다”며 “교육청에 외국어 강의가 아닌 ‘진학상담지도’라고 신고하면 분당 5천원까지 받을 수 있어 이를 악용하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단속에서 적발돼도 폐원을 하면 실질적인 불이익을 주기 어렵다. 법 위반이 반복되면 벌점이 쌓여 영업 정지를 당하거나 과태료를 물게 되는데 이 위반 내용이 모두 초기화하기 때문이다. 학원들이 ‘떴다방’식 운영을 일삼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특히 에스에이티 학원의 경우 방학 시즌만 노리고 하는 곳이 많아서 그 시즌이 끝나면 폐업하고 이듬해에 새로 운영을 시작하는 곳이 많다”고 했다.
학부모와 학원, 욕망의 합작품
학원들의 이런 행태는 결국 학부모의 욕망을 전제로 한다. 입시 전문가들은 “리터니들을 상대로 한 사교육 장사를 지탱하는 요소 중 하나는 학부모들의 수요”라고 말한다. 비상식적인 수강료를 치르고 아이를 고시원에 보내더라도 명문대에만 갈 수 있다면 괜찮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대치동의 한 에스에이티 학원 원장은 “학원 마케팅이 문제라기보다는 학부모들이 먼저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여름 동안 대치동 와서 8~9주 에스에이티 문제만 죽어라 푼다고 해서 점수가 그렇게 많이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학부모들도 그걸 모르지 않는다”며 “그런데도 ‘연고성’(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에는 어떻게든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에스에이티 학원들의 학부모 상담 게시판에는 “부모가 동행할 수 없는 여건인데 숙식이 제공되는 학사를 알아봐 주실 수 있느냐” “6월 말쯤 들어갈 건데 숙소 상담을 받고 싶다”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치동의 한 기숙학사 실장은 “부모들이 ‘우리 애 꼭 좀 받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학부모의 욕망과 학원들의 욕심이 만나 어린 리터니들의 대치동 잔혹사가 여름마다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광고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