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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04 05:00 수정 : 2019.09.04 10:12

대치동 학원가 리터니들의 ‘방학 잔혹사’
출국 전부터 재외 특례로 컨설팅
“주재원으로 나가는 경우는 양호
현지 공무원에 뒷돈, 자영업 위장도”

A급 국제학교는 1년 전부터 대기
“현지에 입시 최적화 시스템 갖춰져”
방과후엔 한국학원 분원…스펙 준비

늘어나는 재외국민전형, 왜
“등록금 수익 늘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
12년 특례는 정원 제한도 없어

베트남의 한 한국국제학교에서 8년 동안 교사로 일했던 ㄱ씨는 몇 해 전 학교에 사표를 냈다. 교사 생활 동안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회의감을 그즈음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3천㎞ 넘게 떨어진 이곳마저 이른바 ‘스카이’(서울대·고대·연대) 합격을 위한 입시전문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을 보면서 교직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했다. ㄱ씨는 “원래는 어쩌다 보니 해외에 나온 학생들이 많았다면, 언제부턴가 재외국민 전형을 노리고 전략적으로 이곳에 오는 학부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이들은 우리 학교를 명문대에 쉽게 합격할 수 있는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학교가 이 흐름에 가세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교육과정은 재외국민 전형 필답고사 기출문제를 다루는 수업들로 채워졌고,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나 에이피(AP·미국 대학과목 선이수제) 학원 등록을 학교 차원에서 권유하기도 했다. “조만간 학교를 그만두고 에스에이티 학원을 차려야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동료 교사도 있었다. ㄱ씨는 “학교 진학부장이 에이피를 봐야 ‘스카이’ 간다며 학생들에게 학원 다니라고 바람 잡더라.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이 저마다 수백만원짜리 학원으로 쫓기듯 가는 걸 보면서 죄책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재외국민 전형 악용…리턴 위한 유학”

재외국민 전형은 국외에서 3년 이상(고교 1년 포함) 학교를 다닌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국내와 현저히 다른 교육 체제에서 공부한 학생을 일반 학생과 같은 기준에서 평가하는 것은 공평하지 못하다는 취지다. 일부러 유학 나간 경우를 배제하기 위해 대부분의 학교가 부모 둘 다 학생과 함께 외국에서 일정 기간 거주할 것을 요구한다. 국외 재학 기간에 따라 3년 특례와 12년 특례(전 교육과정 이수자)로 나뉘며 모두 정원외 전형이다. 특히 12년 특례의 경우 모집 인원에 제한이 없어서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뽑을 수 있다.

입시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이 제도를 악용하는 지원자가 늘었다고 말한다. 재외국민 전형이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다는 소문이 학부모들 사이에 퍼지자, 처음부터 이 전형에 지원할 목적으로 국외로 나가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이다. ㄱ씨는 “일부 대학은 아예 현지법인 근무자나 자영업자 자녀로 지원 자격을 제한하는데, 이 자격을 충족하려고 현지 공무원에게 뒷돈을 주고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자영업을 하는 학부모도 있다”며 “특히 4~5년 전부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학부모들이 이런 편법을 동원해 국외로 나가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입시 컨설턴트 ㄴ씨는 “주재원으로 나가는 건 그나마 양호한 경우고, 이 전형에 지원하려고 위장 이혼까지 하는 학부모도 봤다”고 했다. 이혼을 하면 부모 중 한 명만 자녀와 함께 체류해도 재외국민 전형 지원 자격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혼 후 아빠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엄마는 아이와 함께 국외로 나가는 신종 ‘기러기 아빠’인 셈이다.

“A급 국제학교는 한국인 30% 넘어”

실제로 재외국민 전형 지원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집계한 9개 대학(건국대·경희대·고려대·동국대·성균관대·숙명여대·이화여대·한국외대·한양대)의 12년 특례 지원자 현황을 보면 2017학년도 2310명에서 2020학년도 3277명으로, 3년 만에 41.8%나 늘었다.

‘리턴을 위한 유학’이라는 새로운 현상은 어느새 주된 흐름으로 정착했다. 예전엔 주로 영어권으로 조기유학을 갔지만, 언젠가부터 아시아 국가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방과후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학원에 가서 한국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학부모들은 한국 대학에서 선호하는 국제학교 목록을 공유하고, 에스에이티 학원들은 현지에도 분원을 차리기 시작했다. 오기연 대오교육컨설팅 대표는 “사실상 리턴을 위한 유학”이라며 “예전에는 단순히 영어 실력을 높이려고 나갔다면, 이제는 처음부터 대학 입시를 목적으로 나간다. 체류 기간부터 모든 걸 재외국민 전형에 맞춰 계획해서 나간다”고 했다.

강아무개(48)씨도 그렇게 자녀를 대학에 보낸 ‘리터니 맘’이다. 남편이 주재원을 지낸 5년 동안 아들을 중국 상하이의 한 국제학교에 보냈고, 졸업을 1년 남기고 한국에 돌아와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강씨는 “나가 보니 아예 한국 대학 입시에 최적화된 시스템이 현지에 마련돼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출국 전부터 컨설팅을 받았다”고 했다. 재외국민 전형을 염두에 둔 학부모들은 국외 나가기 전에 회당 10만원 하는 ‘출국 컨설팅’을 받으면서 대학 입시에 유리한 국제학교와 체류 기간 등을 계획한다. 강씨는 “대학들이 몇몇 국제학교를 놓고 일종의 ‘등급제’를 암암리에 운영한다는 건 이미 학부모 사이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그중 최상위인 ‘에이(A)급’ 국제학교는 한국인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1년 전부터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한국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 에이급 국제학교는 주로 영어권인 경우가 많은데 한국인 비율이 30%가 넘는다고 한다. 강씨는 “나갔는데 생각보다도 ‘한국화’돼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학기 중에는 현지에서 한국 학원 분원을 다니는데 원장과 강사 모두 한국인”이라고 했다. 학원에서 학생들은 재외국민 전형에 필요한 ‘스펙’인 에스에이티나 에이피 등의 시험을 준비한다. 그러다 방학이 되면 한국에 들어와서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는 식이다. 강씨는 “학교마다 한국인 엄마 모임이 있는데 거기서 학원 정보를 공유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교육 시장은 과열됐고, 학생들의 스펙은 상향평준화됐다. 강씨는 해마다 최대 1억여원을 교육비로 썼다고 털어놨다. 그는 “대학들이 에스에이티뿐만 아니라 아이비(IB·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스위스 기관이 주관하는 국제공인 교육과정) 점수를 보기 시작하면서 다녀야 하는 학원 개수가 늘었다”며 “또 고등학교 가기 전에 에스에이티 점수를 만들어 놓아야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8학년(미국 기준) 때부터 에스에이티 학원에 다니는 일이 당연해졌다”고 말했다. 대치동의 한 에스에이티 학원 원장도 “에스에이티 점수 커트라인만 놓고 보면 5년 전에 비해 15% 정도 올라왔다”고 말했다.

“대학들 재외특례를 돈벌이로 생각”

늘어난 건 지원자만이 아니다. 주요 대학들의 재외국민 전형 모집 인원도 증가 추세다. 2009학년도에 서울 10개 대학(경희대·고려대·서강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한국외대·한양대)은 재외국민 외국인 전형(북한이탈주민 제외)으로 1730명을 모집했는데, 2018학년도에는 3770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3년 특례의 경우 대학 전체 정원의 2% 이내에서 선발해야 하지만, 12년 특례는 그런 제한이 없어서 숫자가 고무줄이다. 연세대 입학처 관계자는 “모집 인원을 따로 정해두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뽑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제한 없이 뽑을 수 있는 전형은 장애인 등 특수교육 대상자, 북한이탈주민, 외국인뿐이다.

대학들이 재외국민 전형을 많이 뽑는 이유는 뭘까. 박거용 대학교육연구소장은 “10년째 등록금이 동결되고 정원도 묶여 있는 상황에서 대학이 수익을 늘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보면 된다”며 “10명만 뽑아도 1년에 1억~2억원이니까 대학들로서는 미봉책 정도는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에 따라 재외국민 전형을 둘러싼 사교육 시장이 과열된 데는 대학 책임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사실상 기부입학에 가까운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제한 없이 대학들 마음대로 학생을 뽑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입시제도 내 일종의 사각지대인 셈”이라며 “대학으로서는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재외국민 전형 지원자를) 굳이 탈락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한 에스에이티 학원 원장은 “대학들의 그런 인식이 학부모에게도 직간접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특례를 노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들이 학생들을 등록금 장사의 대상으로 본다는 비판도 있다. ㄱ씨는 “대학들이 재외국민 학생들을 가르침의 대상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며 “덮어놓고 뽑는데다 학생들의 적응을 돕기 위한 커리큘럼도 미비하다 보니 한 학기만 다니고 아예 자퇴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해마다 여름이 되면 유난히 앳된 얼굴의 자취생들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배회한다. 국외 조기유학을 떠났다가 방학 특강을 듣기 위해 잠시 한국을 찾은 학생들이다. 이런 학생들을 대치동에서는 ‘리터니’ 또는 ‘일시귀국생’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최종 진학 목표는 국외 대학이 아니라 한국 대학의 재외국민 전형이다. 국외 체류 3년 이상이면 자격이 생기는 이 전형에서는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점수가 등락을 좌우한다. 이들을 위한 단기 속성과정이 생긴 것은 2010년 무렵이라고 학원가에선 말한다.

<한겨레>는 지난 두 달 동안 리터니들을 직접 만나 일상을 따라가 봤다. 형편에 따라 어떤 중학생은 고시원에, 어떤 초등학생은 호텔에서 생활한다. 편의점에서 홀로 끼니를 때우고 어두운 자취방으로 귀가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흔한 풍경이다. 변질한 입시제도와 불법 사교육 시장, 학부모의 욕망이라는 트라이앵글이 리터니를 양산하는 엔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3회에 걸쳐 그 실태를 파헤친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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