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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렛팩커드의 창업자인 데이브 팩커드(왼쪽)와 빌 휴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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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신뢰의 조직문화
창의성 강조하는 인본주의
직원들과 이익분배도 앞장
존경받는 기업을 찾아서/③ 휴렛팩커드
“모든 사람들은 좋은 일, 창조적인 일을 하기를 원하며, 그에 맞는 환경만 만들어주면 누구라도 할수 있다.(휴렛팩커드 설립자 빌 휴렛)”
한국 휴렛팩커드 최준근(52) 사장은 독립된 사무실이 없다. 서울 여의도 휴렛팩커드 사옥 19층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칸막이 쳐진 2평 남짓한 공간이 사장실이다. 용무가 있으면 칸막이 너머 있는 그를 부르면 된다. 최고경영자도 별도의 방이 없는 회사, 이는 실리콘 밸리의 효시로서, 작은 차고에서 시작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휴렛팩커드의 전통이다.
“저희 회사는 1939년 설립 이래 수평적인 소통을 장려하는 ‘오픈 도어(open door)’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도 끊임없이 소통을 하며 동의를 이끌어냅니다. 대기업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훨씬 유리하다는 게 저희의 생각입니다.” 최 사장은 설명했다.
세계를 제패한 ‘HP’ 프린터와 ‘컴팩’ 노트북 등으로 소비자들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휴렛팩커드는 전 세계적으로 임직원 15만명에 지난해 매출액 799억달러를 올린 거대기업인 동시에, 독특한 ‘휴렛팩커드 방식(HP Way)’이라는 독특한 경영철학과 방식으로 주목받는 기업이기도 하다.
‘도요타 방식’ ‘존슨앤존슨 크레도’ 등과 더불어 경영학 서적에 자주 소개되는 ‘HP Way’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신뢰’라는 인본주의로 요약된다. 조용한 엔지니어 스타일인 창립자 빌 휴렛과 데이브 팩커드는 권위나 형식보다 자율성과 신뢰에 기반한 창의력의 힘을 일찌감치 내다봤던 것이다. ‘사람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원칙에 따라 회사는 설립 초기부터 회사 실적을 직원들과 나누는 이익 분배제도를 구축했다. 삼성의 초과이익 분배 제도 등도 이를 본받은 것이다. 이밖에도 ‘사람을 자르기보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주고 교육한다’ ‘의사결정 단위는 최소화한다’ 등이 휴렛팩커드 방식의 골간을 이룬다.
“실제로 회사에서 사장님 자리로 직접 가서 이야기를 거는 평직원들도 꽤 있어요. 1년마다 한번씩 하는 전직원 엠티에서는 상사를 조롱하는 익살스러운 연극도 나오지요.” 홍보팀의 권형준 차장은 말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휴렛팩커드 본사에서는 경영이 어려울 때 노동시간을 단축해가며 일자리를 나누는 ‘전통’이 있었다.
95년 한국 휴렛팩커드는 삼성과의 합작지분을 정리하며 대대적인 경영문화 개조에 들어갔다. 그 핵심은 ‘HP Way’의 소개였다. 회사는 각종 워크숍과 시상, 분기별 보고를 통해 위와 아래가 분명한 삼성 조직문화를 더 유연하고 자율적인 문화로 바꾸는데 3년을 할애했다. “휴렛팩커드는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잘 안해요. 매니저들도 코치 같아요. 조언을 해 준 다음 뒤에 물러서 있는거죠.” 삼성 공채 출신인 최 사장은 당시를 기억하며 탄력근무제의 도입과 결재라인 간소화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고 기억했다. 실제로 미국 언론들은 빌 휴렛과 데이브 팩커드가 96년과 2001년 사망했을 때 이들의 가장 큰 업적을 ‘HP라는 기업이 아니라 HP방식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도할 정도였다. 그러나 90년대말 글로벌 정보기술(IT)산업이 격랑기를 맞음에 따라 ‘HP Way’ 역시 대대적인 변화에 직면해야 했다. 99년 부임한 칼리 피오리나 회장은 컴팩과의 인수합병과 대규모 해고 등을 주도하며 조직을 뒤흔들었다. 휴렛팩커드는 2002년 이후 페덱스, 스타벅스 등 세계적인 기업들 뒤에는 회사의 기술이 있다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디지털카메라 사용자들을 겨냥한 ‘당신과 HP’, 기술을 활용해 변화에 성공한 기업 사례를 소개하는 ‘변화와 HP’등과 같은 브랜드 캠페인을 펼치며 ‘기술 기업’에서 ‘소비자 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다소 느리고 전통적인 방식의 HP Way는 진화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열려있는 의사소통과 사람을 믿고 신뢰하며 중요시하는 회사의 원칙은 새롭게 진화해서, 회사를 일구는 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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