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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바디샵의 창설자 아니타 로딕은 아프리카 가나 등 저개발 국가의 원주민들과 연대관계를 맺어 소규모 직거래 방식으로 화장품의 원재료를 사들였다. 더바디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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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출신 창업자, 동물실험 반대 등
‘정치적으로 올바른’ 제품 추구
“당신의 몸을 긍정하고 사랑하라”
‘굵은 허리-배 불록 인형’ 홍보모델로
존경받는 기업을 찾아서/⑤ 더바디샵
“정치적 실천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의무다.” (아니타 로딕·더바디샵 창업자)
1987년 당시 갓 10살을 넘긴 화장품기업 더바디샵은 영국 재계가 선정한 ‘올해의 기업’ 상을 받았다. 수상식에서 아니타 로딕(63) 회장은 동네 가게들을 억압하는 횡포와 공룡처럼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성, 여성 차별로 대변되는 영국 재계와 대기업들을 공격했다. 영국 재계 거물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노골적인 거부감을 표시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화장품 기업 중 하나인 더바디샵은 ‘동물 실험 반대’ , ‘용기 재활용’ 등 환경 보호에 적극적인 회사로 잘 알려져있다. 그러나 더바디샵의 환경 캠페인은 정치적 실천에 앞장서온 이 회사의 일면에 불과하다. 자유무역과 세계화 반대 목소리를 높여온 이 회사는 어떻게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나는 학교에서 경영학을 배우지 않아 성공할 수 있었다.”=1976년 영국 작은 마을에서 처음 문을 연 바디샵의 시작은 소박했다. 이탈리아 이민가족에서 태어나 생활고에 시달리던 아니타 로딕은 ‘친환경적인 재료에, 조금씩 덜어서 살 수 있고, 가격도 적당한 화장품을 만들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에 바디샵을 시작했다. 아니타와 남편 고든은 히피 출신으로 각국의 피부관리 비법을 비즈니스에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원주민들과 소규모 직거래를 원칙으로 하고, 여성들이 생산한 재료를 우선 구매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들이 만든 ‘정직한’ 화장품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니타는 한해의 3분의 1은 전세계를 여행하며 안전하고 자연적인 비누와 샴푸의 새 재료를 찾아다녔다. 로딕은 직관적이고 창의적인 리더십 스타일로 회사를 이끌었다. 로딕은 “내가 비즈니스에 대해 몰랐던 것이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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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바디샵은 평범한 여성의 몸매를 가진 ‘루비’라는 이름의 인형을 수년동안 광고 모델로 써왔다. 더바디샵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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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가진 비즈니스는 계속된다.”=더바디샵의 경영방식은 90년대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진보주의자들은 더바디샵이 원주민들과 직거래하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비난했다. 보수 진영은 애초부터 바디샵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친환경주의를 표방하는 유사 화장품 브랜드들이 많아졌고, 더바디샵은 ‘좀 신기한 캠페인을 하는’ 기업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회사를 엄습했다. 결국 아니타는 2002년 공동 회장 자리를 내주고, 회사는 광고와 마케팅을 허용하는 동시에 ‘사회적 책임 감사제도 도입’ 등 궤도수정을 통해 더욱 튼튼하게 거듭났다. 지난해 더바디샵의 2천여개 매장은 전 세계적으로 7억파운드(1조3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남편과 함께 회사 지분 50% 가량을 보유하며 비상임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니타는 오늘날 활동가로 전 세계의 반세계화, 반전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나는 비즈니스가 잔혹한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이라고 보는 케케묵은 견해가 사라지기를 희망한다. 앞으로 비즈니스는 책임있는 자들만이 이끌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그가 2001년에 낸 책 ‘영적인 비즈니스’에서 한 말이다.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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