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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이야! 이 모락모락 고슬고슬한 밥맛! / 일러스트레이션 부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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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
맛 없는 건 용서해도 마음 빠진 음식은 용서 못해
뭐든지 껍질이 최고…전기밥솥 탓 식문화 망가져
생태와 냉이, 고추장과 파스타는 과연 어울린단 말이더냐 김: 부산식당, 제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두루치기나 생태탕을 먹으러 들러요. 예전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인사동에 와도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어요. X: 예전에 그런 노래도 있었지. 장승 하나 뻗쳐 놓고 앗따 번쩍 유리 속의 골동품.
생선이든 고기든 껍질이 맛있지 김: 정태춘이죠. 그런데 이 콩나물은 참 두껍기도 하네. 중국산인가? X: 콩나물은 중국산 없어. 콩은 중국산이 있어도…. 물류비가 안 나오거든. 왜 중국산 뻥튀기가 없는 줄 알아? 압축해서 가져올 수가 없잖아. 요즘은 뭐든지 빨리빨리 키우니까 가져올 필요도 없지. 김: 어릴 때 먹던 콩나물 맛하고는 다른 것 같아요. 가느다랗고 야들야들한 콩나물 맛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나는데. 국 안에서 흐느적거리는 콩나물들을 보고 있으면 올챙이 같기도 하고, 무슨 동물 같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건 너무 굵다. X: 생태 껍질 좀 먹어봐. 생선이든 고기든 껍질이 맛있어. 와인도 비슷해. 와인의 맛은 포도 껍질에서 나오는 거잖아. 포도 알갱이는 와인의 양을 많게 해주는 역할만 할 뿐이고, 실제 맛은 껍질에서 다 낸단 말야. 타우린이 껍질에 많대. 타우린이 몸에 좋다는 얘길 많이 하지? 그게 맛에도 관련이 있어. 광학적으로, 미네랄적으로 말이지. 타우린 성분이 많을수록 맛이 좋은 거야. 김: 사실, 부산식당에서 가끔 생태찌개를 먹지만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국물이 너무 걸죽해요. 전 지리로 하는 스타일이 좋은데. X: 생태찌개에 냉이가 들어 있는데, 이건 생태하고 어울리질 않아. 조개류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냉이 때문에 생태 맛이 가려지잖아. 심하게 말하면 냉이된장국에다 생태를 푼 거야. 이 집 나름의 스타일이긴 하겠지만. 제발 양철냄비 좀 쓰지 말자 김: 저는 일산의 고성생태집을 좋아해요. 고니도 넉넉하게 넣어주고, 국물도 단순하게 맛있고. X: 서울에 생태찌개 잘한다고 소문난 집이 몇 군데 있지. 속초생태도 있고, 삼각지에 있는 한강집도 있고. 그런데 난 제발 그 양철냄비 좀 쓰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거 법으로 금지해야 돼. 금속이 너무 얇아서 끓이면 금속 성분이 다 우러나. 우리가 뭐 철분보충차원에서 먹는 것도 아니고 말야. 김: 여기 두부가 참 맛있어요. 고소하고. X: 두부도 문제가 참 많아. 편의점에 냉장두부가 등장하면서 두부를 파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잖아. 공장두부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냉장유통을 거치는데, 그 맛이라는 게 남아 있을 수가 있겠냐고. 김: 하루키 에세이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잖아요. 매일 아침 따끈한 두부를 사러 나갔는데, 점점 두부가게가 없어진다고. 정말 맛있는 두부는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아도 맛있잖아요. 노란색 국물이 바닥에 스윽, 깔리는, 그런 두부요. X: 이 집은 밥맛이 일품이네. 김: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밥을 새로 지어주는 거예요. 저는 ‘고슬고슬하다’라는 말이 그렇게 좋아요. 그 단어만 들으면 어디선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잖아요. X: 그래. 이런 게 밥인데 말야. 요즘은 이런 밥을 식당에서 먹을 수가 없잖아. 전기밥솥 생기면서 우리나라 식문화가 다 망가졌어. 냄비에다 바로 밥을 하면 얼마나 맛있어. 누룽지도 먹을 수 있고. 김: 한국에 식당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예요. 일본에 갔다가 들은 얘긴데, 망하는 식당이 한국의 30퍼센트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어지간히 잘하지 않고서는 식당 열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X: 일본 얘기하니깐 고로케 먹고 싶다. 김: 맛있죠. 고로케. 일본에 갔을 때 100년 됐다는 고로케 집에 들렀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어요. 튀긴 후 시간이 좀 지났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스테이크는 소금 툭툭 쳐먹는 게 제맛? X: 고로케가 맛이 없으면 이상한 거야. 양파, 감자 등등 그 맛좋은 걸 다 넣었는데 맛이 없을 수가 있나. 하긴, 그걸 또 맛없게 하는 데가 있어요. 튀기는 게 쉬운 요리는 아니지. 김: 기본에 충실하는 게 제일 힘들죠. 전 퓨전음식은 별로더라고요. 새로운 실험정신이야 환영할 만하지만 기본이 없는 데다 퓨전을 하면 뭘하냐구요. 고추장 파스타 같은 것도 어쩐지 이름만 들어도 이상하고. X: 고추장은 비빔국수에 든 게 제일 맛있지. 김: 그냥 오리지널에 충실한 파스타가 제일 맛있는데, 왜 거기다 고추장을 넣는지 모르겠어요. X: 먹는 것처럼 보수적인 게 또 없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 틀린 거라고 생각해. 양식처럼 편견이 심한 음식은 더 그렇지. 스테이크에 소스 없으면, 무슨 스테이크에 소스가 없어, 그러는데, 그러면 환장하는 거야. 스테이크는 그냥 소금 툭툭 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는데…. 김: 다 먹었는데 결론을 내려보세요. 맛이 어땠어요? X: 밥맛은 정말 좋네. 입안에다 한숟가락 떠넣었을 때 입속에서 느껴지는 밥맛의 기분 있잖아. 호호, 후후, 입김을 불면서 뜨겁고 부드러운 밥알갱이를 삼키는 기분. 밥맛이 좋으니까 별 한 개 추가. 김: 원래는 몇 개였는데요. X: 별 세 개.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본명을 밝힐 수 없는 요리사 X는 현재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중국, 일본, 한국의 음식에 일가견이 있으며 와인에도 조예가 깊다. 또, 그는 식당에서 내놓는 음식을 척 보기만 해도 원가를 계산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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