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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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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세트메뉴 비교적 싸지만
음식과 재료의 원형질을 고민해 봐야 할 듯
서울 압구정동 테이스티블루바드
김: 여기 유명한 곳이죠. 다들 맛있다고 난리던데요?
X: 예전에 ‘알 파르코’라는 식당이 있던 자리네.
김: 저 그 식당 참 좋아했는데 …. 엇, 여긴 주방이 훤히 보이네! 난 요리사도 아닌데 오픈 키친만 보면 마음이 불안해요. 왜 주방을 보이게 하나 모르겠어요. 그 속에 있는 요리사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X: 그래도 익숙해지면 괜찮대.
열린 주방만 보면 마음이 불안한 이유
김: 예전에 유기농을 주제로 한 오픈 키친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요리사가 재료를 다듬으면서 계속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거예요. 그걸 보고 있으니 어찌나 불편하던지 …. 휴대전화기가 얼마나 더러워요. 그걸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요리를 한다고 생각하니, 유기농이고 뭐고 뛰쳐나오고 싶더라고요. 안 보이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
X: 아무래도 열려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지.
김: 메뉴 골라요. 저녁에 와보지 못한 게 아쉽지만 점심용 세트메뉴가 있네요. 값도 싸네. 이거 드세요. 저는 한치숯불구이랑 리조토를 먹을 게요.
X: (종업원이 와서 생선과 고기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자) 이거 다 주는 거 아니었어요?
김: 그러게요. 여기 오어(or)가 빠졌네. 나도 다 주는 줄 알았어요.
X: 와인도 한잔해야지. 여기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식당에서 화이트와인은 너무 무성의하게 짜. 와인 애호가로 불리는 사람들은 주로 레드에만 집착하지. 레드와인은 몇 등급 몇 등급 통째로 외우면서 화이트와인에 대한 이해는 낮은 수준이야. 화이트와인 역시 레드와인만큼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말야. 독일하고 알자스, 이탈리아 북부, 뉴질랜드에 좋은 화이트와인이 많잖아. 나도 잘은 모르기 때문에 기회 있을 때마다 화이트와인을 먹어보려고 하는데, 와인을 다양하게 파는 식당이 거의 없어. 알자스에서 유명한 와인들은 대부분 수입이 되고 있는데, 찾아볼 수가 없어. 재고 정리하는 와인장터에 가보면 화이트와인만 엄청나게 나와 있지. 와인 회사도 고민 많을 거야.
김: 한치숯불구이 나왔는데, 발사믹 소스를 어쩜 이리 많이 뿌렸어요?
X: 요리는 취향이긴 하지만 한치나 해산물을 숯불에 잘 구워 놓고 발사믹 소스를 뿌리는 건 말이 안 되지. 향이 다 죽어버리잖아. 식전에 단 걸 먹으면 입맛이 없어져. 단 빵 먹고, 발사믹 소스 뿌린 샐러드 먹고 나면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나 있겠냐.
김: 식전에 빵을 주는 건 왜 그런 거죠?
X: 식전에 주는 게 아니지. 코스가 시작되고, 메인이 끝날 때까지 식탁 위에는 계속 빵이 놓여 있어야지. 디저트 나오기 전까지.
김: 빵을 주는 목적이 뭐예요?
X: 일단 배불비 먹기 위한 거지. 접시에 묻은 소스를 깨끗하게 닦아 먹는 용도이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 빵이 너무 달아. 빵이 아니라 과자의 전통에 가깝지. 토스카나에 이런 얘기가 있어. 요리보다 빵이 맛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래서 일부러 소금도 안 치고 맛없게 빵을 만드는 전통이 있어.
왜 빵과 함께 올리브오일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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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압구정동 테이스티블루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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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빵과 함께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소스 주는 걸 이해 못하겠어요.
X: 이탈리아에서는 없는 방법이야. 그걸 달라고 하면 “왜? 샐러드 시켰어?” 하고 물어볼 거야. 저가형 샐러드를 먹을 땐 소스를 주고 직접 비벼서 먹는 게 있거든.
김: 달콤한 소스로 먹는 음식은 별로 없죠?
X: 일반적으로는 푸아그라나 오리 가슴살 정도에 달콤한 소스가 곁들여지지. 뭐 달콤하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만 과한 건 문제야.
김: 세트메뉴에 포함된 음식들은 문제가 좀 많은데요! 왜 이렇게 값이 싼가 했더니 이유가 있네요. 수프는 기대 이하고, 샐러드와 파스타에는 별로 들어간 재료가 없고 …. 아스파라거스 수프 맞죠? 아스파라거스 향은 하나도 없고, 아스파라거스의 쓴맛만 가득 느껴지는데요! 야채가 들어간 파스타는 면이 원하는 알덴테로 제공되지 않았어요.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어보기라도 해야 할텐데 ….
X: 점심 세트가 엄격하기는 힘들지만, 원가 고민이 많은 듯해 보여 실망스럽다.
김: 매시포테이토에서는 겨자 맛이 나는데요! 음, 왜 넣었을까?
X: 스테이크는 왜 이렇게 뜨겁게 내왔지? 철판 위에다 얹었나봐. 내 옷에 기름이 다 튀어. 그냥 뜨거운 접시에 내와도 아무런 상관없을 텐데, 기름이 튀어서 먹질 못하겠다.
김: 그래도 리조토는 괜찮은데요! 간이 좀 싱겁긴 하지만 비싼 샤프란도 많이 뿌렸고요. 버터 마무리를 세게 해서 흥건한 국물이 있는 건 아쉽지만요.
X: 소금 좀 쳐서 먹어.
김: 소금 치니까 훨씬 낫네요.
X: 이 집 간판을 보니까 와인과 스테이크라고 적혀 있던데 …. 주방장이 어떤 생각으로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테이크 잘 굽고, 스테이크 맛있다고 소문나서 유명해진다는 건 사실 요리사에겐 불명예스러운 일이야. 스테이크는 말야, 그냥 좋은 고기 사서 숯불에 잘 구으면 그만이잖아. 창의적인 게 아니지. 우리나라는 스테이크가 맛있는 고급 식당이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 있잖아. 삼겹살 잘 굽는다고 고급 한정식집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지? 양식당도 마찬가지야.
김: 디저트와 커피도 별로예요. 음, 이 집의 점심 세트메뉴는 낙제점입니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의 음식을 먹고 나니 얼마 전 삼청동에서 먹었던 ‘르쁘띠끄루’(Le Petit Cru)라는 식당의 음식이 생각나요. 메뉴가 좀 비슷한 것 같아요. 그 집에서 가장 놀랐던 건 파스타 한 접시에 2만원이라는 사실.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전복파스타였던 것 같은데, 양배추를 넣어 뒀더라고요. 그런데 양배추 때문에 맛이 엉망이 됐어요. 양배추 특유의 맹맹한 맛이 소스 전체에 배어 있는데, 나중에는 아무맛도 느껴지질 않았어요.
저녁엔 주방장 특선 메뉴를 먹어보자
X: 양배추를 넣지 말라는 법은 없지. 문제는 그걸 넣어서 얼마나 새로운 맛을 끌어내느냐에 달린 거지. 새로운 실험은 계속돼야 하지만 계속 원형질을 생각하고 있어야 해.
김: 점심 세트가 3만8500원인데 결국 스테이크 값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앞쪽에 나오는 것들은 너무 부실해요.
X: 이 많은 음식들을 다 먹는 데 3만8500원이라면 유혹적인 거지만 형식만큼 내용이 뒤따라주질 못하고 있네. 메뉴판에서 내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어.
김: 뭔데요?
X: 메뉴판 왼쪽은 한국어와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는데, 메뉴판 오른쪽은 한국어와 영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
김: 왜 그랬을까? 왼쪽은 이탈리아 음식이고 오른쪽은 미국 음식? 그건 아닌데 …. 도저히 이탈리아어로 적을 수 없는 것들만 오른쪽에다 배치한 게 아닐까요? 음, 아무튼 인터내셔널한 식당이군요.
X: 내가 이 식당에서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건 서비스 태도야. 생선과 고기를 모두 주는 것처럼 잘못 써놓고도 손님에게 사과가 없고, 한치에 붙은 버석거리는 검댕에 항의했는데, 검댕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아. 4만 원에 가까운 점심세트면 파리나 뉴욕에서도 싼 게 아니야.
김: 저는 오픈 키친이요. 너무 불안해서 밥을 못 먹겠어요. 나같이 소심한 사람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웃음) 저녁에 다시 한번 먹으러 와보죠. 저녁엔 주방장 특선 메뉴도 있던데.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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