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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9.05 17:20 수정 : 2007.09.05 17:38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

[매거진 Esc]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
멸치국물로 낸 은은한 맛, 자극적이지 않아도 승산 있다는 걸 보여주길

압구정동의 한식집 ‘개화옥’

김: 오랜만에 와 보는 것 같네요. 이 집 처음 생겼을 때 아주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압구정동에 이런 밥집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고 자주 가기도 했어요. 비 오는 날 처마에서 듣는 비를 보면서 먹는 김치말이 국수가 일품이었던 기억이 나요.

X: 집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네!

김: 가게도 좀 넓어졌지만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도 눈에 띄네요. (X가 악력기를 쥐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대만제 가쓰오부시, 믿을 수가 있나


X: 이 운동을 좀 해줘야 해. 손목 힘을 길러야지.

김: 손목 힘을 길러서 뭐하시게요?

X: 큰 프라이팬 들어야 하는데 요새 힘이 부쳐서 말이지. 후배들이 번쩍번쩍 프라이팬 드는 걸 보고 열받아서 운동을 시작했어.(웃음)

김: 불고기 먹고 힘내세요.

X: 이 집에서 음식을 먹으면 어떤 기분이 드냐면, 큰집이나 잘 사는 친구의 집에 가서 밥을 먹는 것 같아. 우리 큰집이 좀 잘살았거든. 밥맛도 좋고 반찬도 맛있고 …. 그런데 밥 먹으면 꼭 체했어. 밥맛은 좋은데 너무 엄숙해서 말야. 여기선 그렇지 않아서 좋아.

김: 이런 불고기판은 요즘 쓰는 데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X: 어렸을 때 우래옥 같은 고깃집에 가면 이런 불판이 있었지. 한일관은 좀 달랐던 것 같고 …. 불고기 스타일이 바뀐 게 한 20년 전쯤이었던 것 같아. 팽이버섯이 싸지더니 국물에다 난리를 치고 흥건해지더니 이젠 양배추까지 썰어올리는 집도 있더라.

김: 불고기의 맛이 좀 마른 듯하지만 이런 고기가 씹는 맛이 있어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은 된장찌개 맛이 유난히 좋은 것 같네요. 두부가 맛있어요.

X: 두부가 아주 심심한 식재료 같지만 찌개의 맛에 큰 영향을 줘. 어떤 두부가 들어가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지. 맛이 아주 깔끔하네!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
김: 제 고향은 경상도라서 어릴 때 먹었던 된장맛과는 많이 달라요. 이런 게 서울식 된장찌개죠?

X: 그렇지. 멸치로 국물을 냈는데 아주 은은하네. 요즘엔 된장찌개에도 가쓰오부시 넣는 집이 많아진 것 같아. 일본산 가쓰오부시는 아주 비싼데, 대만제 중에 싼 게 있어. 과립형으로 된 건데 물에도 잘 풀리고 조금만 넣어도 국물이 확확 살아나지. 맛이 그럴듯하긴 한데 믿을 수가 없지. 그렇게 가쓰오부시를 아무 음식에나 넣기 시작한 것도 한 10년 된 것 같다.

김: 이 집은 양이 적은 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것 같아요.

X: 된장찌개는 이 정도 양이 맞아. 1인용 뚝배기는 다 이만한 크기였지. 그런데 양이 점점 늘어나더니 이젠 아주 솥 만한 크기에도 끓여주더라. 찌개인지 탕인지 알 수 없을 정도야. 다 먹을 수가 없어. 김치찌개도 그렇지. 건강한 상태에서 키운 김치로 찌개의 맛을 내려면 도저히 단가가 맞질 않아. 농도를 맞추느라 다른 재료를 첨가하거나 재활용할 수밖에 없어. 한 숟가락을 떠 먹어도 맛이 느껴져야 하니까 말야. 그리고 그걸 제대로 버리냐면 하수구에다 그냥 쑤셔 넣어. 다 죽는 거야.

김: ‘음식 남기지 말기’ 운동을 할 게 아니라 식당에서 ‘양 적게 내놓기’ 운동을 해야겠네요.

‘양 적게 내놓기 운동’을 하자

X: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우리나라에는 ‘식구’라는 개념이 있잖아. 하숙집 같은 데 가면 같은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지. 회사동료들하고도 그렇고. 앞에 앉은 사람이 간염에 걸렸는지 알 도리도 없는데 그냥 먹는 거야. 나눠 먹는다는 좋은 문화이기도 하지. 하지만 재활용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야.

김: 우린 다 나눠 먹잖아요. 얼마 전 식당에서 외국인들이 피자를 먹는 장면을 봤는데, 자기 앞에다 한판씩 놓고 먹더라고요. 내 건 건드리지 말라는 듯한 표정으로요. 좋아 보이기도 하고 야박해 보이기도 하고 ….(웃음)


요리사 X와 김중혁의 음식잡담
X: 이 집 김치말이 국수가 맛있는데 오늘은 좀 맛이 덜한 듯하다. 여름이라서 그런가?

김: 여름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X: 냉면을 겨울에 먹듯 국수도 겨울이 맛있어. 유산균 활동이 활발하지 않으니까. 아주 더운 지방에선 발효음식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거랑 마찬가지 이유야. 더운 지방에서 좋은 와인이 생산되는 거 봤어? 프랑스의 보르도나 부르고뉴, 이탈리아 같은 곳은 겨울이 엄청 추운 곳이야. 여름에도 해가 지면 서늘해. 그런 곳에서 발효음식이 잘돼. 요즘엔 김치냉장고가 있어 어떤지 모르겠지만 가을 겨울 찬바람에 서리맞고 그래야 맛이 제대로 살아나지.

김: 이 집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고구마와 통마늘을 식전에 내놓았는데 그건 바뀌지 않았네요. 그래도 반찬이 조금 적은 느낌이 들긴 하죠?

X: 제철 생선 한 마리쯤 올려주면 좋겠지만 이 집 내용상 그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김: 맛이 부딪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순한 맛인데 생선 같은 건 맛이 세니까.

X: 된장찌개 하나에 6천원이면 싼 편이지만 반찬 열 가지 이상 깔아주는 집하고 경쟁이 안 될 수도 있어. 이 곳에서 꾸준히 버티고 있으니 인정해주는 손님들이 늘어난 거지만 버티기 쉽지 않아.

김: 저도 이 집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 개화옥이 좀더 발전하고 진화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지금은 반찬이 적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느낌까지 없앨 수 있다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지속적으로 유지해도 승산이 있다는 사례가 됐으면 좋겠어요.

겨자잎, 느낌이 확 오네

X: 이 겨자잎 한번 먹어봐라. 느낌이 확 온다. 겨자잎이 맛있는 게 한번 심하게 오고는 뒤끝이 없어. 순식간에 맛이 사라지지. 요 근처에 괜찮은 커피숍이 있는데 거기 한번 가보자.

김: (자리를 옮겨 씨네시티 극장 골목으로 들어간 후 ‘미니스톱’ 골목에 있는 커피집 ‘라바짜 클럽’의 커피를 마신 후) 아, 이집 커피 정말 좋은데요. 커피잔 속에 끈적끈적한 크레마가 듬뿍 남아 있어요. 맛도 좋고 향도 좋고. 겨자잎과는 달리 느낌이 확 와서 오랫동안 남아있는데요.(웃음)

X: 커피 다 마셨으면 거기에다 차가운 우유를 넣어서 마셔봐. 입가심으론 그만이지.

김: 맛이 오묘하네요. 정말 추천하고 싶은 커피숍입니다.

정리 김중혁 기자 p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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