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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는 모든 음식의 맛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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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⑩
섹스의 기쁨을 음식에서 느끼게 한 프랑스 요리사 로저 버지와의 만남
지금이 휴가철이죠? 요리사들은 거의 휴가를 못 가요. 가도 겨우 3∼4일 정도예요. 휴가 다녀오는 걸 겁내는 요리사도 많아요. 휴가 다녀오면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거든요. 요리사는 매일 일정량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하는데 휴가 때 그게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식당으로 돌아오면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면서 “이 일은 절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100퍼센트 모든 요리사들이 그래요. 시스템에 정상적으로 적응하려면 사나흘 걸려요.
휴가철 때마다 사표를 내고 떠나
나는 휴가철이 되면 늘 식당에 사표를 냈어요.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올 거다” “2개월 간 일본에 갔다 올 생각이다” 그래요. 그리고 “그 때도 내가 필요하면 다시 전화를 하라”고 해요. 거의 전화가 왔어요. 나 혼자 휴가를 길게 다녀오는 거예요. 식당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주방장들은 일하고 있을 때 얼마나 믿음직스럽게 일을 하는가, 얼마나 부지런한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게 그 사람의 ‘가치’인 거지요.
내가 도자기 작가로 활동하고 있을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도자기를 만들면 돈 생길 데가 없어요. 그러면 식당에서 ‘고용 총잡이’로 일을 하는 거예요. 식당이 새로 문을 열면 일 잘하는 요리사가 필요하잖아요. 그러면 딱 석 달에서 여섯 달 정도만 일을 해요. 왜냐하면 식당 문을 열고 석 달에서 여섯 달 사이에 평론가가 들이닥치거든요. 그때 잘해야 해요. 나는 돈을 많이 달라고 해요. ‘러닝 개런티’ 같은 거도 있어요. 평론가에게 별 하나를 받으면 돈을 얼마 더 받고, 별 세 개를 받으면 얼마를 더 받고 …. 내 요리를 하는 건 아니에요. 절대적으로 주방장이 요구하는 요리를 해요. 주방장과 부주방장은 저녁에 바쁘니까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 소스 같은 걸 만들어요. 열 시쯤 부주방장이 출근하면 소스 만든 걸 보여줘요. 그리고 세 시쯤 퇴근해요.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도자기를 만들었어요.
여름이 되면 휴가 삼아 여행을 많이 다녀요. 지금도 생각나는 두 가지 여름 음식이 있어요. 첫 번째는 멕시코에서 먹었던 옥수수예요. 어떤 할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숯불에 구운 옥수수를 팔고 있었는데,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숯불에 구운 옥수수에다 칠리와 마요네즈 같은 걸 발랐는데 그 조화가 기막혔어요. 옥수수도 얼마나 신선한지 좀전에 밭에서 딴 것 같았어요. 두 번째 기억나는 건 프랑스 프로방스에 있는 미슐랭 투스타 식당(Le Moulin de Mougins)이에요. 한 3∼4년 전 여름이었어요. 로저 버지가 요리사였는데 아주 유명한 사람이에요.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예요. 나는 전부터 그 사람을 알았어요. 책을 통해서 …. 그 사람 레서피로 요리도 많이 했어요. 책도 한 권 들고 갔죠. 들어가서 곧바로 인사를 했어요. “나는 뉴욕의 ‘프로방스’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고, 지금은 한국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스스무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너무 반갑게 나를 맞아줘요. 주방까지 구경을 시켜줬어요. 첫 번째 나온 요리가 뭔지 알아요? 토마토였어요. 그냥 토마토예요. 껍질만 벗겼고 바질 퓨레를 주위에 살짝 뿌린 거 말곤 아무런 장식도 없어요. 그런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조금 있다가 로저가 우리 식탁으로 왔어요. “오늘은 제가 키운 토마토 중에서 제일 맛있는 걸 스스무에게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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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무 요나구니의 비밀의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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