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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1 20:56 수정 : 2006.01.17 16:59

우한기/일이관지 논술연구모임(ilgwan.net) 대표, 서울강남청솔학원·부산해운대청솔학원·광주플라톤아카데미 출강중, 저서:<우한기 논술25강>(2004, 이슈투데이), <대한민국 대표 논술>(2005, 사회평론)

꼼짝마 논술

주제별로 풀어보는 기출문제 - <3> 생명과 더불어 가는 과학-과학과 생태

과학 이론과는 상관없다

과학 쪽은 인문계 학생들이 무척 싫어하는 분야입니다. 아니, 아예 모르는 편이라 하는 게 맞겠군요.^^ 그래선지 과학과 연관된 문제가 나오면 아주 곤욕을 치르더군요. 그런데 이게 심심찮게 나온단 말이거든요. 특히 최근에는 정보화와 관련한 문제들이 우수수 쏟아지다시피 합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 마세요. 과학이라 해서 과학 이론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예전에는 과학 방법론 같은 것도 출제되곤 했지만, 그런 건 지식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따로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출문제들을 보면, 대부분의 문제가 과학이 인간의 삶과 어떤 연관을 맺는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 역시 현대인의 삶의 문제입니다.

과학과 관련된 주제들은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과학기술문명의 폐해

고전 중에서도 고전에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근대 과학이 끼친 폐해에 관한 문제가 그렇죠. 그러니까, 과학기술문명이 생태계 파괴와 인간성 상실을 낳았다는 것 말입니다. 이와 관련한 문제를 풀 때 중요한 것은, 이런 결과를 낳은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겁니다.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Panopticon). 공리주의의 창시자인 그는 효율적인 감시체제로서 ‘일망감시체제’를 제안했다. 부채꼴의 중심은 감시자의 자리다. 오늘날 이 중심에 인터넷이 자리잡았다. 그것만이 세상을 보여준다. 우리가 클릭하는 순간, 그것은 우리를 분석한다. 남은 건 하나다.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여기서 ‘기계적 세계관’이 문제로 떠오릅니다. 세계가 기계처럼 질서정연하다는 발상이죠. 그런데 기계의 특징이 뭡니까? 원인과 결과가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적 인과율’이죠. 이렇게 인과관계가 결정되어 있으니까, 원인만 파악하면, 과학법칙을 활용하여 세계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발상이 나옵니다. 이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동원되는 방법이 ‘분석적 방법’이죠. ‘원자’나 ‘쿼크’는 물리 세계의, ‘전자’는 에너지 세계의, ‘유전자’는 생명 세계의 원인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과학의 ‘전문화’, ‘세분화’를 낳습니다. 그렇게 파악한 것을 들고 세계를 개조하겠다는 발상으로 나갑니다. 여기서 ‘아는 것이 힘’이라는 유명한 베이컨의 명제가 나옵니다. 과학, 즉 ‘아는 것’이 기술, 즉 ‘힘’이라는 거죠. 결국 ‘과학기술문명’의 성립을 선포한 셈입니다.

그런데 왜 이 과학기술문명이 엄청난 폐해를 낳았을까요? 그건 세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한관계에서 무한히 변화한다는 거죠. 그걸 단순하게 해석하니까 사단이 생기는 겁니다. 설명할 때야 간단하게 해도 무관하겠지만, 막상 그걸로 개조하겠다고 덤비는 순간, 떼어놨던 온갖 것들이 끼어들기 시작하죠. 그 결과는 예상하지 않았던 문제들로 드러나겠고요. 결국 그릇된 세계관에 입각한 세계 설명을 과신한 게 문제의 근원이었다는 겁니다.

※관련 문제: 경희대 1998학년도 정시(인문), 한양대 2000학년도 정시, 서강대 2002학년도 3차 모의논술.

(2) 정보화와 인간

최근 들어 무척 많이 출제되는 유형입니다. 늘 수험생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문제죠. 생활에 밀착된 것인데도 그만한 고민을 하지 않아서겠죠.

정보화와 관련된 문제의 핵심은, 정보화가 우리의 삶에 끼친 영향입니다. 긍정적인 점도 많죠. 수많은 정보를 접함으로써 자기 계발의 기회가 늘어날 것이고, 자기 앎을 점검할 기회를 주기에 자기 성찰도 할 수 있죠. 나아가 서로 주고받는 네트워크를 통하여 새로운 관계망을 확장할 수 있는 수단도 됩니다.

그러나 거꾸로 현실세계와 차단시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힐 위험이 있는가 하면, 주어진 정보만으로 세계를 해석할 위험도 있습니다. 또 사이버 세계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들을 감당하지 못하여, 자기 발전에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한 채 헤맬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가 주로 거대기업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거대기업의 상품화 논리에 저도 모르게 사로잡힐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결국 문제는 누가, 어떻게 정보화를 사용하는가로 귀결됩니다. 그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관련 문제: 연세대 2004학년도 정시(자연계), 서강대 2004학년도 정시와 1차 모의논술, 성균관대 2000학년도 정시

(3) 인간과 자연의 관계-생태주의

요즘 부쩍 각광받고 있는 분야입니다.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생태주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태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세계관에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서구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맞서 ‘유기체적’ 세계관을 제시합니다. 세계가 그렇게 단순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거죠. 세계는 ‘무한관계→무한변화’(앗! 또 나왔네요. 앞으로도 나올 거예요)하는 무한대의 상호의존 망으로 짜여져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전체가 연결되어 하나라는 뜻에서 ‘전일적’ 세계관이라고도 합니다. 이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이 세계를 법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오만한 것이 됩니다. 대신, 자연과 더불어 생존, 융합하는 것이 유일한 살 길이라는 거죠.

생태론이 특히 비판하는 것은 기계론에 따른 ‘인간중심주의’입니다.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이 자기를 자연과 구분해, 자기를 ‘주체’로 자연을 ‘대상’으로 삼는 발상입니다. 이것은 ‘기계론’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 인간중심주의 역시, ‘유기체론’에 따르면, 허구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생태론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자연중심주의’입니다. 머레이 북친 같은 사회생태주의자는, 이것 역시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여 자연을 우위에 놓는 이분법 아니냐라고 반발합니다만, 뭐, 그렇게 따질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어차피 ‘자연’ 속에 인간도 포함되는 것이고, ‘자연중심’이라 해도 자연이 스스로 중심이 되겠다고 나설 일도 없을 테니까요. 생태론의 중요한 가치는 ‘발전’이 아니라 ‘생존’, ‘공존’, 나아가 ‘융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일한 살 길이니까요.

※관련 문제: 서강대 2002학년도 1차 모의, 2003학년도 2차 모의, 경희대 2003학년도 정시.

(4) 과학과 종교(신비)

과학과 관련한 기출문제 중 남은 건, 과학과 종교의 갈등입니다. 이것은 워낙 해묵은 논쟁이라서 별로 중요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만, 사실은 얼마든지 출제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고요? 과학적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 한계에 봉착한 이상, 세계를 해석하는 권리는 모든 분야에 다 열려 있다 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신화나 동양사상적 관점에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은 언제나 출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신비적 또는 종교적 해석이 설득력을 갖느냐에 있습니다. 그것은, 과학과는 달리, 세계를 대상화하지 않는다는 데 가장 큰 특징이 있습니다. 신화에서는 자연이나 동식물조차 인격화하여 대등한 관계로 봅니다. 이런 점이 오늘 과학기술문명이 낳은 폐해를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줍니다. 그렇게 대등하게 대하는 이상, 함부로 개조하겠다고 덤빌 일이 없으니까요. 특히 이 문제는 ‘언어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계를 해석할 때는 불가피하게 언어를 동반할 수밖에 없죠. 그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는 겁니다. 과학적 언어만이 득세하자, 세계는 ‘과학적’ 설명의 대상이 되었죠. 그게 문제가 된 겁니다. 이에 대안으로 제시되는 게 바로 ‘신화적’, ‘예술적’ 언어입니다. 이것은 논리적, 인과적으로 세계를 보는 것에 반대합니다. 대신 세계를 인격체로, 신성한 것으로 대하죠. 이에 따를 때 우리가 세계를 보는 눈이, 그리하여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관련 문제: 경희대 1998학년도 정시, 동국대 2002학년도 정시.

사례를 버리고, 원인에 주목하라

과학 관련 문제가 나오면 늘 조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제발이지 부탁인데요, 사례를 늘어놓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생태계 파괴에 관한 문제가 나오면, 온갖 오염을 줄줄 나열하기 바쁩니다. 육해공군 다 뒤져가면서 온 지구를 헤맵니다. 그렇게 원고지를 열심히 메워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게 다 상식, 지식을 늘어놓는 것 아니고 뭡니까?

정작 중요한 것은,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느냐입니다. 도대체 과학 이론이나 정보화의 논리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살펴야 합니다. 따라서 과학과 관련된 지문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원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과학이론이 됐든, 정보화와 관련한 논리가 됐든, ‘원론’ 속에 사태의 원인이 숨어 있습니다. 그게 기계론인지, 합리주의인지, 정보의 속도인지, 그것을 팔아먹는 자본의 문제인지를 찾으라는 거죠. 무턱대고 편리함에 현혹된 현대인 운운하지 말라는 거죠.

Globalization=Localization

정보화 시대에 바람직한 인간상은 무엇일까요? 정보에 능통한 사람?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틀림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매거나, 주어진 정보로만 세계와 나를 보는 의존적 인간만이 나올 뿐입니다. 그렇다고 정보화를 배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누가’, ‘어떻게’ 그것을 활용하는가가 관건입니다. 결국은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 삶의 영역에서 관계를 구축하는 사람이라야 정보화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는 이 모든 걸 자기성찰의 토양으로 활용할 줄 압니다. 나아가 정보화를 나와 이웃, 나아가 세계와 소통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정보화는 세계시민의 네트워크 구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노자는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 즉 ‘문밖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고 했습니다. 자기 삶을 잘 가꾸는 사람이라면, 무한대의 정보와 연결망을 천하와 소통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 즉 지구화는 로칼리제이션(Localization), 즉 지역화와 통합니다. 자기 삶! 자기 관계! 이것이 세계시민이 되기 위한 기본 덕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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