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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명은 ‘강자 중심의 논리’ 개방성 회복이 대안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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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논구술·입시정보 특집 ‘꼼짝마 논술’
주제별로 풀어보는 기출문제/문명의 한계와 지식인의 과제 현대 문명이라 하면, 자본주의·합리주의·과학주의·자유주의 등으로 불리는 갖가지 이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것들 하나하나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왔습니다. 이제 이 모든 현대 문명의 흐름을 꿰뚫는 원리를 알아보면서, 가장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야겠습니다. 현대 문명이라 하면 흔히들 ‘서구 문명’을 일컫습니다. 맞는 말이죠. 그런데 모든 문제를 그냥 서구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단정하는 것은 좀 문제가 많습니다. 서구 문명 중에서도 우리가 살려야 할 긍정적인 점이 많을 뿐더러, 막연히 그렇게만 문제를 진단하면 ‘그래서 동양이 대안’이라는 식의 단편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동양 사상이나 동양 문명은 이미 한 번 패배한 것입니다. 그렇게 실패했다는 것은 그 나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죠. 따라서 무작정 동양 사상을 대안으로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서로 만나 함께 해결해야겠죠. 중요한 것은, 만나되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현대 문명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서구 문명이 다른 문명을 대하는 태도가 개방적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에 부딪히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문제의 핵심은 현대 문명의 폐쇄성과 배타성인 것이고, 이것을 낳은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문명은 적어도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새로운 문명을 열어갈 지식인상도 바로 이런 문제의 해결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가 나옵니다. 참고로, 이 모든 문제를 아우르는 문제로는 서울대 2005학년도 수시 문제가 있습니다. (1) 서구 문명 비판 서구 문명은 ‘이성적 인간’의 발견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의 출발점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입니다. 이 명제는 ‘생각하는 나’, 즉 이성적 인간을 모범 답안으로 제시합니다. 이성적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무기 삼아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렇게 세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이제 인간은 세계를 ‘인간을 위한 세계’로 개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성립한 것이 바로 ‘과학기술문명’입니다. 과학기술문명은 ‘아는 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발상과 직결됩니다. ‘과학’으로 세계를 알아서 ‘기술’로 세계를 정복하자는 거죠. 이성적 인간이 세계를 연구하여 개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다른 말로 ‘인간중심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세계를 ‘주체’와 ‘대상’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발상이죠. 이것은 상황에 따라 ‘여성에 대한 남성 중심’, ‘비서구에 대한 서구 중심’, ‘유색인에 대한 백인 중심’,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 중심’ 따위로 변형됩니다. 자연을 연구하여 개조할 수 있듯이, 서양은 비서양을 연구하여 개조할 수 있다는 발상 따위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강자 중심의 논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서구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이 ‘자기중심주의’에서 여러 주제가 파생됩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개조하려는 ‘도구적 합리성’이나 ‘자기’만이 중심이라는 ‘절대화’의 논리가 대표적이죠. 그러면 ‘자기’ 아닌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연히 ‘자기’를 따르거나[동일화] 배제되어야[배타성] 하겠죠. 물론 잘 따르(게 하)거나 잘 배제하기 위해선 다시 ‘도구적 합리성’이 필요할 겁니다. 선진화가 곧 서구화라는 발상이라든지, 미국 같은 선진국을 따라잡는 것이 곧 우리의 발전을 이루는 길이라는 논리 따위가 ‘동일화’의 논리죠. 오늘날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분쟁에는 ‘배타성’의 논리가 작용하는 거고요. 이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이성은 ‘도구적 합리성’이겠죠? ※관련 문제: 연세대 2000학년도 자연계, 고려대 2002학년도 정시. (2) 동서양의 만남 지금까지 동양은 ‘서양인의 눈으로 본 동양’, 즉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앞에서 봤듯이, 이것은 ‘서구중심주의’의 산물입니다. 그러면 서양인들은 왜 그렇게 동양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을까요? 그야 ‘아는 것이 힘’의 논리죠. 동양을 잘 알아서 잘 이용하자는 발상에서란 겁니다. 당연히 동양은 미개하고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세계였죠. 그러나 서구 문명이 위기에 봉착하자 새삼 동양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동양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세계관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그것은 서구의 ‘기계론’에 대한 ‘유기체적’ 또는 ‘전일적(全一的)’인 세계관입니다. 세계를 기계처럼 질서정연한 것으로 보는 서구와 달리, 부분과 전체가 유기적으로 이어져서 상호의존, 상호작용한다는 발상이죠. 이것이 오늘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제할 새로운 가치관이라는 겁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이 새로운 가치관으로 동서양의 교류를 이루어야 할 듯합니다. “우리 학문과 사상을 오늘의 상황에 맞게 재창조하고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적 지식인의 사명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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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의 석판화 <해방>. 현대 문명은 이분법이 지배해 왔다. 그 속에서 선과 악, 진보와 퇴보, 남과 여, 서양과 동양은 위계질서를 이루었다. 이제 저마다의 모양, 저마다의 색깔, 저마다의 몸짓으로 날아오르는 새로운 문명을 꿈꿀 때다. 그대 한국의 젊은이여, 부디 한국적 지식인으로 날아오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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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기/일이관지 논술연구모임(ilgwan.net) 대표, 서울강남청솔학원·부산해운대청솔학원·광주플라톤아카데미 출강중, 저서:<우한기 논술25강>(2004, 이슈투데이), <대한민국 대표 논술>(2005,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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