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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5 17:20 수정 : 2006.01.17 17:12

강승숙/인천 남부초등학교 교사

꼼짝마 논술

초등생 글쓰기와 친하게 하려면

점수따기식 논술은 ‘독약’

대학입시가 어떻게 바뀌어도 초등학교만큼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영어교과가 정규교과로 들어오면서 이런 분위기는 달라졌다. 영어를 놀이하듯 배우면서 친하게 만들자는 애초 뜻은 좋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영어는 아이들한테 외우고 익혀야 하는, 그래서 대학입시를 일찌감치 준비하는 짐덩어리 과목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논술까지 더해진다. 2008년부터 대학 입시에 논술 반영 비율이 커진다는 말이 나오고 ‘독서 이력’까지 입시에 반영될 거라고 하니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불구경하듯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논술 능력이나 독서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바삐 서두르고 있다. 책방에서 논술 과련 책자를 찾아보고 논술기사가 실려 있는 신문을 스크랩하기도 한다. 모둠을 만들어 아이한테 글쓰기나 독서, 아예 논술이라고 이름을 걸고 있는 과외공부를 시킨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을 잠시 멈추고 논술의 참뜻이 무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논술은 글 쓸 주제만 두고 생각한다면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조리있게 풀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인생을 헤쳐 나가기 위한 공부이다. 옳고 그름을 요리조리 따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공부다. 직업을 고르거나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대학을 가기 위해 과를 정할 때, 중요한 정치, 경제적 사안에 대해 자기 견해를 펼칠 때도 이런 능력이 중요하게 쓰인다. 그런데 지금 대학입시를 위해 공부하는 논술은 이런 현실과 떨어져 있다. 생활에서 나온 문제를 다룬다 해도 글 쓰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할 열정과 의지를 갖기 어렵다. 잘 써서 좋은 점수를 얻는 게 목표일 뿐이다. 이런 목표는 아이에게 이중적 태도를 갖게 하기 쉽다. 논술 시험을 잘 치룬 학생이 적성에 맞아서 가고 싶은 학과를 출신 고등학교의 명예나 부모의 바람 때문에 선택하지 못하는 학생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논술 교육 대부분이 논술의 주체인 아이들을 인생의 주인으로 세우는 과정과 거리가 멀어서 벌어지는 일이다. 내 아이가 살아갈 인생을 긴 호흡으로 바라본다면 당장 몇 년 후에 있을 입시를 위해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논술의 형식을 빌어다 초등학생들한테 가르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그래서 분명해진다.

초등생에게 논술이 필요할까?


논술공부는 필요하다. 하지만 입시를 잘 치루기 위한 논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치에 맞게 정리하거나 추리하는 힘이 부족한 초등학교 아이들한테는 중·고등학교에서 하는 논술의 형식이나 논리를 들이대면 안 된다. 논술은 비판적 힘이 있고 사고를 논리적으로 해야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런 글을 쓰게 하려면 적어도 고학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전에는 자연스럽게 생활에서 느끼는 온갖 감정과 문제의식을 말과 글로 풀어내는 공부를 해야 된다.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틀에 맞추어 말하게 하거나 글을 쓰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자연스럽게 말과 글이 되어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쓰는 글 가운데 가장 재미없고 아이들도 쓰기 어려워하는 글이 감상문과 주장글이다. 왜 그럴까? 감상문이나 주장글은 추상적인 생각을 해야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1학년 아이들한테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한다. 생각이나 느낌이 단순한 아이들은 줄거리만 길게 쓰면서 독후감 쓰기에 질려간다. 이 과정은 고학년 때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간혹 고학년 아이가 짜임있게 독후감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투적이고 재미가 없다. 주장글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여물지 않은 저학년, 중학년 아이들이 불조심, 물 절약, 자연보호처럼 범위가 넓은 글감으로 주장글을 쓰다보니 일반적이고 뻔한 이야기를 쓴다. 고학년도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아는 정보나 지식만 보탠 주장글을 쓴다. 이런 글에서 설득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말하기·듣기 교과를 공부하면서도 이런 문제는 그대로 드러난다. 6년 내내 글쓰기 공부를 해왔지만 아이들 글쓰기 실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교과서가 짜임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아이들 생활을 글감으로 한 보기글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주장글은 모두 어른들이 쓴 딱딱한 글이다. 아이들은 가슴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주장글은 그저 어려운 글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러한 보기글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생각을 자기 말이나 글로 풀어내지 못한다. 게다가 얼거리를 짠 뒤 글을 쓰면 그 틀에 매여 풍부하게 글을 펼쳐 나가지 못한다. 저학년이나 중학년, 글쓰기 공부가 제대로 안 된 고학년은 글을 쓰기 위해 얼거리를 짜면 그 틀에 몇 글자 겨우 보태고 글을 맺고 만다. 아이들을 가르쳐본 교사라면 누구라도 이런 현실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교과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생활에서 자기 생각을 진실하고 이치에 맞게 표현하는 글쓰기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저학년부터 겪은 일을 충실히 쓰는 것이 그 첫 단추를 꿰는 중요한 시작이다. 중학년이나 고학년도 이 공부가 겪은 일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이 공부부터 해야 한다. 겪은 일(서사문)은 모든 글의 바탕이 된다. 겪은 일 쓰기가 튼튼하면 어떤 글도 잘 소화할 수 있다.

부모가 책 읽어주면 독서에 흥미 느껴

겪은 일을 잘 쓰려면 자기가 본 일, 들은 일, 한 일을 제대로 되살리는 힘이 있어야 한다. 생각이나 느낌은 무언가를 눈여겨보면서 떠오른다. 잘 듣고 한 일을 따져보면서 분명해진다. 이 가운데 어떤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을 주로 쓴 생활감상문은 주장글의 중요한 씨앗이 된다. 감상문은 아이들이 어떤 사실에 대해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감성적인 글이다. 짜임도 부족하고 그럴듯한 대안도 들어있지 않지만 그 아이만의 소중한 감정이나 생각을 발전시켜나갈 글이다. 감상문이나 주장글만 써야 논술 능력이 길러지는 것을 아니다. 사물의 진정, 알맹이를 꿰뚫어보는 시 쓰기나 경험과 지식을 알기 쉽게 쓰는 설명글, 편지글 같은 다양한 갈래의 글도 고루 써보는 게 좋다. 이 모든 글쓰기가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고학년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짜임을 생각하며 글을 써야 한다. 저학년부터 순서를 잘 밟았다면 시기에는 주장글을 잘 쓸 수 있다. 글감은 저학년, 고학년 할 것 없이 범위가 큰 것보다는 일상에서 부닥치는 자잘한 글감부터 골라야 한다. 그러면서 차츰 이웃이나 사회문제로 글감을 넓혀야 한다. 지금 논술공부의 문제점은 바로 아이가 생활에서 보고 느끼는 문제에 대해 원인을 따져보고 나름의 대안을 써보는 과정을 생략하는 데 있다. 아이 자신이 그 문제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태도까지 돌아보는 과정을 밟지 않는 것이다. 논술의 논리만을 익혀 쓴 글은 보기에 매끄러울지 몰라도 읽는 이의 마음을 설득하고 움직일 수 없다. 논술은 튼튼한 짜임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짜임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설득력이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 그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창의적인 주장이 싱싱하게 담겨야 한다. 그런데 논술이라고 쓴 글을 보면 그 사람의 냄새가 없다. 그래서 읽는 사람도 설득에서 오는 감흥이 없다. 글이 읽는 사람에게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좋은 글, 잘 쓴 글이라고 할 수 없다.

생각 넓히려면 토론·대화가 중요

토론 수업은 아이들이 서로의 생각을 배우는 좋은 공부다. 토론 경험을 쌓고 논술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논술학원이나 과외를 한다면 소그룹으로 넉넉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토론을 한 뒤 글을 쓰게 하고 서로 견주어보는 식으로 공부를 진행하는 데가 좋을 것이다. 또한 책을 읽고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데서 나아가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는 곳을 견학한 뒤 토론을 하고 글을 쓰게 하면 논술의 토대는 훨씬 깊어진다. 중요한 점은 지식으로 머리만 키우는 공부가 아니라 마음이 깊어지고 행동이 달라지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맞은 교사를 찾아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을 보내면 논술의 중요한 부분이 글쓰기 능력은 길러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부모가 아이들과 대화하지 않고 윽박지르면서 아이의 주장과 생각이 발전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령 발전한다고 해도 부모나 텔레비전에서 누군가 책에서 누군가 한 말을 앵무새처럼 풀어내는 일밖에 못한다. 깨달음이나 행동의 변화없이 글만 잘 쓰는 일은 위험하다. 이런 사람은 ‘친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글은 잘 쓰면서 친구를 함부로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기 쉽다.

논술 하면 글쓰기와 함께 독서를 양날개로 삼는다. 왜 독서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걸까?

논술 시험이 등장하면서 독서가 중요하게 떠오른 것은 독서가 사물을 비판하는 힘, 세상을 넓고 깊게 보는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책과 친하게 만드는 일이다. 일부에서는 자극을 주어서라도 책을 읽게 해야 한다며 독서퀴즈대회, 다독상 같은 행사를 만들어 아이들한테 책을 많이 읽게 하고 있다. 이런 일들은 논술시험에서 독서의 비중이 커지면서 탄력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등학교부터 경쟁하듯, 다가올 논술을 생각하며, ‘독서 이력’을 염두에 두고 경쟁하듯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야 할까? 책을 읽을 때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유로운 세계가 아이 마음속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무언가 목적을 들이대면 아이들은 긴장하면서 책을 읽게 되고 그만큼 자유롭게 책을 맛보고 만끽하는 기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주일에 한 권을 읽어도 맛있게 읽고 진정으로 책 읽는 기쁨을 맛보며 읽어야 한다.

그 시작은 책 읽어주기다. 집에서 부모가 책을 읽어주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한테는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만 만들어주면 아이들은 얼마든지 책과 친해질 수 있다. 교과서 본문 뒤에 나오는 문제풀이가 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더없이 자유로워진다. 할 말도 많아진다. 더 듣고 싶고 더 읽고 싶다. 12월초부터 한달 가까이 소년소설 <몽실언니>를 읽어주면서 아이들의 이같은 감정을 수없이 확인하였다. 50여 쪽을 읽었을 때 한 아이는 참지 못하고 내 책을 빌려가더니 그날 다 읽어버렸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부시간에 도무지 집중을 못하는 아이 하나도 <몽실언니>는 꼭 읽어달라고 한다. 읽고 나면 조금만 더 읽어달라고 한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단에 정서적이면서도 지식적인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인민군은 뭐고 공비는 뭐예요?’, ‘검둥이라고 멸시하는 아이까지 감싸 안는 몽실이가 정말 대단해요’. 책을 읽어주다 말고 역사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관심을 갖는 게 대견해 더없이 즐겁다. 책 한 권을 읽어도 공감하고 토론하고 질문하고 비판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열 권 읽은 것 못지 않다. 그러니 많이 읽히려고 덤빌 일이 아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독후감을 써보게 하면 어떨까? 비록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갖가지 감정을 독후감에 담아내지 못할지라도 아이는 무수히 많은 감흥을 느끼며 책을 읽는다.

강승숙/인천 남부초등학교 교사 sogochum@hanmail.net

“컴퓨터가 아니라 책에도 중독이 되니 신기해요”

선생님이 읽어준 동화책 듣고 독서에 푹 빠진 사례 생생

<우리누나>가운데 ‘목걸이’를 읽고

이 작품은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님께서 읽어주셨다.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는 내내 나는 긴장이 되었다. 선생님이 글은 3분의 2쯤 읽어 주셨을 때 글을 읽다가 멈추면서 내일 더 읽어 주신다고 하였다. 나는 이야기에 중독이 되어 빨리, 끝까지 듣고 싶었다. 집에 가는 길에 컴퓨터에만 중독 되는 게 아니라 책에도 중독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재미있고 좋았다. 컴퓨터는 하면 할수록 흥분이 되는데 책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또한 많은 것도 가르쳐준다.…(박종성 인천남부초 6년)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이틀에 걸쳐 읽어준 동화에 대해 쓴 독후감이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의 감정, 집에 가면서 생각한 일들을 자연스럽게 독후감에 담았다. 책과 컴퓨터를 견준 부분이 신선하다.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생각이 발전한다. 이 아이는 컴퓨터도 즐기지만 장편동화도 잘 읽는다. 책을 읽어줄 때나 읽어주고 나면 할 말이 많은지 궁금한 것을 자주 묻는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어떻게 책에 재미를 느끼고 생각이 발전하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읽어준 뒤 어려운 하는 부분을 설명해주었다는 아버지도 있다. 그 아버지는 중학교에 가서도 이따금씩 아이가 부탁하는 바람에 교과서를 읽어준다고 한다. 믿기 어렵다. 재미없어 하는 교과서를 읽어달라고 하다니 말이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교과서를 읽더라도 아버지가 가르치겠다는 마음에서 벗어나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즐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 경험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가도 난 뒤에도 아버지가 교과서를 읽어주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예 역시 초등학교 시절에 책을 아이들한테 어떤 방식으로 만나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책을 인생의 친구로 만들려면 말 그대로 책을 즐기게 해야 한다. 아이가 논술 능력을 잘 갖추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글쓰기와 책을 즐기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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