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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8.01 17:30 수정 : 2007.08.01 17:30

험프리 보가트가 필립 말로로 열연한 영화 <빅 슬립>

[매거진 Esc]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셜록 홈스와 필립 말로. 둘을 한 공간에 나란히 세워 놓고 뭇 여성들에게 ‘남자’로서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대부분 망설임 없이 말로 쪽을 택할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여자란 원래 더 매력적인 남자 쪽을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그는 도통 즐거워 보이지 않는 사내다. 하긴 밥벌이를 즐겁게 하는 인간이 뭐 그리 많겠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직업에 대한 별다른 자부심도 없어 보인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의 직업이 ‘탐정’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세상의 악을 소탕하고 범죄를 응징하는 업무. 그런 위대하며 중차대한 직분을 맡은 이에게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흔히 다른 가치를 기대한다. ‘여기 정의의 사도가 나가신다!’는 자신만만한 일성만은 아니다. 적어도 “나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립 탐정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400만달러짜리를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는 식의, 대놓고 위악적인 발언을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러나 어쩌랴. 그 직설적인 냉소가 이 남자가 가진 최고의 매력인 것을. 위의 예문에서 보듯 그의 시니컬한 시선은 자신뿐 아니라 이 비정한 도시 세계를 향해서도 닿아 있다.

탐정 말로가 맞부딪치는 세상은 악의와 절망, 비도덕적 욕망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 한가운데, 그는 맨주먹으로 내던져진 존재다. 그는 때론 거칠고 때론 심드렁하게 맞서 싸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링 위에 서게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필립 말로 자신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다만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쥔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입술이 터지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악의 실체를 물고 늘어진다. 물론 본인이야 특유의 궤변으로 “나도 마음에는 안 듭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일이 뭐겠습니까? 나는 사건을 맡고 있어요. 난 먹고살기 위해서 팔아야 하는 건 팝니다”라고 대답하겠지만 말이다. 혹자는 이것을 하드보일드 정신이라고 한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만들어낸 이 특이한 탐정, 그러나 후대 주요한 탐정 계보의 시조가 된 필립 말로는 소설 <빅 슬립>에 처음 등장한다. 33세 미혼, 183cm의 당당한 체격을 가졌던 이 사내의 여정은 <안녕 내 사랑> <귀여운 여인> <기나긴 이별>로 이어진다.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초기작에서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처럼 상대적으로 강하고 터프한 느낌을 발산하던 그도 다음 작품들을 따라 점점 나이 들어간다. 팬 입장에서야 세월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긴 하지만, <기나긴 이별>에 다다라 중년이 된 말로를 보며 묘한 감상에 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필립 말로만은 영원히, 상처도 없이 공치사도 없이 변명도 없이, 그 자리에서 버텨주기를 바라는 건 팬 역시 나이를 들어가기 때문이겠지. 초라한 링 위에서 상처와 공치사와 변명으로 점철된 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겠지.

말로는 세상 모든 남자들을 대신해 말한다. ‘한 남자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이유를 아무도 알 수 없다. 부자가 될 수도 없고, 대부분 재미도 별로 없다. (…) 두 달마다 한 번씩 이 일을 그만두고 아직 머리가 흔들리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번듯한 다른 직업을 찾아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왜 지속하는가? ‘그러면 문에서 버저가 울리고 대기실로 향하는 안쪽 문을 열면 새로운 얼굴이 등장하여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슬픔, 약간의 돈을 안고 들어’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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