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결혼 앞에서 주춤거리는 준영에게 사랑의 상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한 장면.
|
[매거진 Esc] 정이현의 남자남자남자
남자는 여자의 어떤 말을 가장 두려워할까. 혹시 이건 아닐까. “나 선볼 것 같아. 어쩌지?” 침실 파트너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깝고, 애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먼 사이의 여자 연희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 남자 준영은 멍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곧 짜증이 났을 것이다. 날더러 대체 어쩌라고, 싶었으리라. 뒤틀린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남자에게 여자는 나직이 쏘아붙인다. “그냥 당신 생각을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야. 선볼 계획 같은 건 첨부터 없었어.” 진부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다. 이로써 여자는 ‘결혼 상대자’ 예비 목록에서 남자의 이름을 지우게 되었으니. 하기야 결혼을 재촉하는 부모님 앞에서 부부인 척 연기하고 살자는 남자, 대신 밤일만은 진짜로 하자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제안을 해오는 남자를 세상의 어떤 여자가 믿을 것인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연희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사회적 안정을 위해 결혼이라는 형식 속에 몸을 담갔으되 옛 애인과 이중생활을 하는 그 여자의 행동이 본의든 아니든 제도를 교란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럴 수가. 이제 다시 감상해 보니,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연희가 아니라 준영이었다. 준영에게 주목해 보면, <결혼은…>은 세태풍자극이 아니라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초절정 비극이 된다. 성정의 우유부단함과 영혼의 뺀질뺀질함, 그리고 경제적 무능함을 가진 한 젊은 남성이 제도 앞에서 느끼는 주눅을 냉소와 자조로 표현하며 뻗대다가 결국 처절하게 무릎 꿇게 되는 사연인 것이다.
![]() |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
정이현/소설가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