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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와의 해후를 뒤로 한 채 돌아섰을 때 상우의 한 시대가 끝났다. 영화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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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정이현의 남자남자남자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울던 그를 기억한다. 갓 서른이던 나. 나보다 어리던 스크린 속 그의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며 혀를 찼다. 바보야,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속으로 그렇게 퉁을 주었던 것 같다. 하긴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바로 다음번 연애에서 그 다디단 첫맛이 빠지고 입안에 시큼털털한 침이 고이는 순간 말이야, 라고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까지 내게 뭐 그다지 거창하고 강렬한 실연 경험 따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사랑의 종말이라는 표현보다 연애의 끝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자잘한 이별들이나 통과해봤을 따름이다. 그러나 태생이 겁쟁이인 나는 어쩌면 작은 상처들을 꽤나 심각하게 과장해 왔던 것 같다. 내 맘속에서 혼자 상처를 부풀리고 혼자 빨간약도 발랐다가 혼자 괜히 박박 긁어 덧내기도 하면서. 은수와 이별하고 상우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몇 해 만에 다시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 보면서, 술에 취한 밤 강릉에 찾아가는 상우, 여자친구의 차를 열쇠로 긋는 상우, ‘그 남자랑 잤니?’라고 무력하게 화내는 상우 때문에 나는 울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게 끝난 뒤의 해후, 다시 시작하자는 뉘앙스를 풍기는 은수를 담담히 돌아서 가는 상우 때문에 저절로 눈물이 났다. 상우에겐 그제야 비로소 한 시대가 끝났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것도 예측하지 않고 그저 맹목적이던 한 소년의 사랑이 그 지점에서 완전히 깨어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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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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