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유부인〉
|
[매거진 Esc]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과연,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자유부인> 풍문은 익히 들어왔다. 자유부인이라니! 제목 한번 끝내준다. 현숙한 가정부인이 살랑살랑 봄바람을 타고 자유를 찾다 패가망신한다는, 그 유명한 이야기 말이다. 뒤늦게, 한형모 감독의 1956년작 <자유부인>을 보았다. 그리고 오선영 여사가, 반세기 동안 ‘자유부인’이라는 타이틀을 홀로 짊어진 채 저잣거리의 온갖 비난을 홀로 감내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부인’을 있도록 한 건 아무려나 남성 제위다. 오 여사 주위를 둘러싼 건 넷 남짓한 남성들. 이 작품의 제목을 ‘자유부인이라 불렸던 한 여자 그리고 네 남자’ 라고 바꾸는 건 어떨까? 자 이제 그 면면을 살펴보자. 1. 그 여자의 남편-장 교수‘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고전적인 경구를 몸소 실천하시는 분. 그동안, 오 여사의 남편은 온전한 희생자인 줄로만 알았더랬다. 그런데 이거야 원, 오 여사가 양품점과 댄스홀 사이를 한들한들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의 교수님께서도 만만찮은 행적을 과시하신다. 아내보다 훨씬 예쁘고 젊고 착하고 이해심 넓기까지 한 타이피스트 아가씨와 애틋하고 풋풋한 감정을 나누는바, 육체적 접촉만 없었다뿐이지 그 애정관계의 강도는 상당하다. 자기는 밖에서 할 거 다하면서 마누라의 부정을 강하게 단죄하는 건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모양새 아닌가. 2. 그 여자의 연하남-춘호
오 여사님 옆집에 세 들어 사는 총각, 춘호군. 직업은 알 수 없다. 취미는 늦은 밤 큰소리로 음악듣기, 국적이 의심스런 외국어 함부로 구사하기 등이 있다. 빵모자·스카프 등등 오묘한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그는 오 여사님을 댄스계로 입문시킨 스승이기도 하다. 사실 그가 오 여사에게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 있는 여자의 가슴에 불을 지른 죄는 결코 작은 게 아니다. 불 질렀으면 책임을 지든지, 사람 한껏 헷갈리게 했다가 결정적 순간에 확 뒤통수치고 꽁무니 빼 버리는 그 작태는 심각한 죄임이 분명하다. 3. 그 여자의 상대남-한 사장
오 여사가 매니저로 근무하는 ‘파리양행’ 대표이사의 남편. 쉽게 말해 이 남자, 아내의 부하 직원에게 느끼한 추파를 던지며 유혹하는 거다. 돈도 좀 있고 사회적 권력도 없는 것 같진 않지만, 삐쩍 마른 체구에 슬슬 벗겨진 대머리 등 외모적 측면에서는 그다지 볼 것 없는 사내다. 그런 사내가 저 유명한 키스신의 주인공이라는 건 여성관객 입장에서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다. 내심 마음을 주었던 춘호 총각이 미제 와이셔츠 한 벌 얻어 입자마자 싹 입을 씻지만 않았어도, 우리의 오 여사, 홧김에 그렇게 쉬이 이 아저씨한테 넘어가진 않았을 터인데. 새삼 춘호가 원망스럽다. 한 사장은 이후 한국영화 및 드라마의 ‘바람난 남편’ 캐릭터의 원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빤한 모습을 보인다. 부인과 애인 양쪽에다 거짓말을 하고, 우유부단하며, 별 실속도 없이 참 쉽게 덜미가 잡힌다.
![]() |
정이현의 남자 남자 남자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