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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구야? / 에로영화계 투신한 자전 스토리로 극장개봉작 <색화동> 만든 공자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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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에로영화계 투신한 자전 스토리로 극장개봉작 <색화동> 만든 공자관 감독 15일 개봉하는 <색화동>의 제작사에는 청년필름과 클릭영화사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클릭영화사? 설마 그 클릭영화사?라며 고개를 갸웃거리시는 분, 맞다. 에로영화 시장이 살아 있던 시절 비디오 가게의 한 귀퉁이를 오롯이 차지하던 컬렉션의 제작사다. 공자관(30) 감독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클릭영화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하지 마> <야망> <만덕이의 보물상자> <깃발을 꽂으며>등 십여 편의 에로영화를 만들었다. <색화동>은 영화연출 전공자로 에로영화계에 투신한 공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 ‘에로물’에서 출발해 ‘독립’영화제를 거쳐 ‘개봉작’으로 변증법적 도약을 한 <색화동>과 공자관 감독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카메라의 남성중심적 시선 덜어내 -클릭영화사에서 만들어 서울독립영화제에 출품하고 독립영화적 성향이 강한 청년필름을 통해 개봉한다는 게 이채롭다.=에로시장이 죽으면서 영화사에서 케이블 성인 드라마 진출을 타진하던 중에 사장님이 ‘우리 이야기’를 3, 4회짜리 드라마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했다. 마침 나도 내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쓸 구상을 했기 때문에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클릭의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투자사가 터무니없이 낮은 제작비를 제안해서 계획을 엎고 장편 개봉작을 만들기로 한 거다. 찍고 나니까 안팎의 반응이 안 좋아서 의기소침해 있다가 마지막 구원 요청이다 싶어 연락해 본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흔쾌히 초청을 해줬다. 그걸 계기로 청년필름과도 연락이 됐고 개봉까지 오게 됐다. -영화를 보면 영화적 문법을 지키려는 주인공(조감독)이 베드신만 집중하려는 감독이나 제작자 때문에 괴로워하는데, 본인도 그랬나? = <색화동> 찍으면서 사장님과 엄청 싸워서 6년 우정 금갈 뻔했다. 사장님은 에로영화의 제작자로서 본연의 입장을 고수한 거니까. 그래서 사장님이 미국 갔을 때 베드신을 왕창 들어냈다.(웃음) 단순히 ‘야해’ 보이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니터를 하면서 불필요한 장면들, 그동안 관성처럼 길들여진 카메라의 남성중심적 시선을 덜어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에로영화계에 입문할 때 어떤 존재적 결단이 있었나? =제대하고 대학 4학년(단국대 연극영화과) 때였는데 비장한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친구들하고 단편영화 준비하려고 모였다가 비디오를 빌려봤는데 이필립 감독의 <쏘빠떼2>였다. 아무래도 남자애들끼리 모이니까 빌리게 된 비디오다.(웃음) 그걸 보면서 “우리보다 훨씬 낫다. 에로계로 진출해야겠다”고 공언 아닌 공언을 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된 거다. 그런데 나중에 애들이 다들 “너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해서 내가 더 황당했다는.(웃음) 그때 B급 정서나 키치 문화 등이 유행이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고 충무로 도제에 들어가기보다는 저예산이라도 빨리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태극기를 꽂으며>로 뜬 ‘제2의 봉만대’ -영화를 보면 촬영 속도가 에로 영화 성패의 관건인 것 같은데 어땠나. 또 하다보면 노하우도 많이 쌓이지 않았나? =살인적인 스케줄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한 작품 찍는데 4, 5일 정도 걸렸는데 나중에는 이틀 만에 완성했다. 또 하루에 500만원 가지고 90분짜리를 다 찍은 적도 있다. 찍다 보면 컨벤션(관습)도 생긴다. 이를테면 시나리오 작가에게 남자 셋, 여자 셋으로 진행하되, 각 커플은 한번씩 크로스로 하도록 쓰라고 한다. 그럼 최소한 6, 7개의 서로 다른 베드신이 나오니까. 또 밤에는 모텔 한 층을 통으로 빌려서 방을 바꿔 가며 베드신을 찍는다. 그렇게 시간 배분의 노하우를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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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화동〉은 영화를 전공한 청년이 에로영화계에 입문해 겪는 일들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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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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