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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9 21:22 수정 : 2006.02.12 16:00

와이오밍 주의 관통하는 윈드 리버(바람의 강)는 살색 사막 속의 푸른 젖줄이다. 강을 주위로 푸른 나무와 마을들이 어미 젖의 송아지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 강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들은 혈투를 벌였다.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38)


바람의 강으로 번역하면 딱 맞는 윈드 리버(Wind River).

와이오밍 주 랜더(Lander)에서 내리막과 평지가 끝나고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에서 두번째로 높은, 해발고도 2897m의 토궈티 패스(Togwotee Pass)로 가는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후지어 패스도 넘었는데 이 정도 고개를 못 오르랴 싶어 방심한 탓에 고통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바람의 강을 따라 가는 287번 길의 경관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눈은 황홀했다. 바람의 강은 살색 사막에 난 파란 젖줄 같다. 어미 젖에 달라붙은 갓난 송아지들처럼 강 주변에 푸른 마을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과거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들은 이 강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는데 19세기 중엽 쇼쇼니족(Shoshone)과 크로족(Crow)은 사흘 동안 강 계곡을 놓고 전투를 벌였지만 승부를 가릴 수 없다. 그러자 쇼쇼니족의 와샤키(Washakie) 추장과 크로족의 빅 로버(Big Robber) 추장은 둘이서 맞짱을 뜨기로 하고 사방으로 수십㎞가 내려다 보이는 바위 봉우리 위에 올라 일합을 겨뤘다. 여기서 이긴 와샤키 추장은 강의 영유권을 따낸 데서 그치지 않고 빅 로버의 심장을 도려내 씹어먹었거나 창 끝에 매달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래서 이 봉우리는 크로하트 뷰트(Crowheart: 크로족의 심장봉)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지금은 2백만 에이커의 윈드 리버 인디언 보호구역을 제외하고는 백인의 땅이 돼 무위한 대결이 돼버렸지만 그 장렬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선혈처럼 묻어 있다.

자전거 뒷바퀴 빠지고 기어 고장
랜더에서 겨우 수습하고 불안한 출발
‘바람의 강’따라 오르는 길에 맞바람
53톤 화물트럭 위협…스쳐도 사망이다

랜더에서 자전거에 탈이 났다. 앞바퀴에 빵꾸가 났는데 여행 극히 초반에 연달아 세번 빵구가 난 이후 거의 50일만에 처음이다. 뒷바퀴도 차축에서 빠져버리고 기어도 말을 안 듣는다. 자전거포에서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성의 있게 수리하는 것 같지 않았다. 점점 자전거에 대한 믿음을 잃어간다.


능청맞은 인간으로 변할 줄이야

불안한 마음으로 점심 때가 다 돼서 출발했다. 일박할 예정인 두보이스(Dubois)까지 113㎞. 먼 거리는 아니지만 오르막길에다 바람의 강을 따라가는 길답게 맞바람이 거셌다. 거기다 먹구름까지 몰려왔다. 날이 일순 어두컴컴해졌다. 내 자전거에는 전등이 없어 밤에는 안 달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뜻밖에 길에서 이른 어둠을 맞이한 것. 갓길도 분명치 않아 차에 치일까 무서웠다.

특히 무서운 건 트럭이다. 여기서 다니는 광산 트럭은 장난이 아니다. 나중에 석탄을 와이오밍 대학에 배달하는 트럭 운전사를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트레일러 두 대를 연결한 트럭의 길이가 27m나 된다고 했다. 웬만한 수영장 길이보다 더 길다. 바퀴는 모두 30개. 빈 트럭 무게만 16.761t. 여기에 36.240t의 석탄을 싣는다. 총 무게 53t. 36.240t의 석탄이면 10만 가구에 1년 동안 난방을 공급할 화력이라고 한다. 전동차 한량만한 이 어마어마한 트럭이 시속 120㎞로 질주하니 빗맞아도 사망이다.

이들이 서두르는 이유는 빨리 배달하면 한탕 더 뛸 수 있기 때문. 이 트럭운전사는 와이오밍 대학까지 한번 왕복할 때마다 125달러를 받는다고 했다. 한 여섯 시간 걸리는데 빨리 달리면 하루에 두 탕을 뛸 수는 있다고 한다. 트럭 운전사들이 그 동안 바이크 라이더들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돈이다. 자전거 때문에 서행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자전거를 신경질적으로 길 밖으로 밀어붙인다. 대적할 힘이 없는 우리로서는 밀려날 수밖에. 그래, 모든 게 내 탓이다.

날이 추워졌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페달을 세차게 밟아 두보이스에 도착하니 밤 9시. KOA 캠프장은 캠프비가 비싼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샤워를 했다. 샤워하기 전 옆 텐트를 보니 중국인 남녀와 미국인 남자로 구성된 일행 셋이 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들은 장작불에 불을 피워 놓고 핫도그용 소시지를 구우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군침이 돌았다. 그 동안 숱한 친절을 접하면서 터득한 친절 유도법을 써먹을 때다. 이들은 내게 관심이 있고 친절을 베풀고 싶은 눈치가 역력한데 어색해서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거리를 없애줌으로써 이들에게 그렇게 하고 싶은 친절을 베풀도록 해줘야 할 사명이 내겐 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샤워하는 동안 지켜봐 달라며 배낭을 맡겼다. 샤워를 마치고 배낭을 찾는 길에 자연스레 장작불을 쬐니 예상한 대로 구워놓은 소시지와 아이스박스에 넣어둔 애플 비어를 권한다. 내가 이렇게 능청맞은 인간으로 변할 줄 여행 전에 나도 몰랐다.

행복은 잠시. 소시지를 핫도그 빵에 넣어 한입 베어 물려는 순간 복숭아 씨만한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바람이 엉성하게 쳐놓은 텐트들을 불어 가버린다. 주인들이 화들짝 일어나 텐트를 고정하러 갈 때도 나는 움직이지 않고 먹었다. 비가 그치고 그들이 돌아왔을 때 석쇠 위에는 어떤 음식도 남아 있지 않으리.

친절은 인구 수와 반비례

그러나 비바람이 너무 거세 나도 세탁실로 대피했다. 거기에는 왠걸 노르웨이에서 온 두 가족들이 동작도 빠르게 식탁을 차려놓고 저녁을 먹고 있는 중. 중국인 일행이나 이들은 모두 유명 관광지인 그랜드 티톤과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여기서 1박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노르웨이의 음식을 맛볼 차례다.

이들과 얘기해보니 노르웨이는 흥미로운 나라다. 올해(2005년)는 그들의 독립 1백주년이라고 한다. 노르웨이는 덴마크 밑에서 무려 500년간 식민지였고 이어 스웨덴의 지배도 90년 간 받았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의 침략을 받았을 정도로 외세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려온 나라. 하지만 지금은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2위의 부국이다. 이 가족은 부국이라는 점보다 가장 평등한 나라, 가장 중산층이 넓은 나라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의 주시경 선생처럼 거기도 노르웨이어를 지켜온 사람들이 있어서 그게 독립의 힘이 됐다고 한다. 잘 사는 비결은 수출의 35%를 차지하는 석유와 풍부한 수력 발전.

네덜란드 사람도 만났다. 캠프장의 종업원인 안자. 그는 네덜란드에서 주당 70시간씩 일하다가 더 이상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없다고 선언하고 남편과 캠핑카를 사서 세계를 여행하는 중이다. 돈이 떨어지면 이렇게 한 곳에 눌러 붙어서 일한다. 잠은 캠핑카에서 자고. 내 경험상 네덜란드인들의 영어발음이 세상에서 가장 알아듣기 쉽다. 미국을 여행하면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서쪽으로 올수록 인구 밀도는 줄어들지만 친절은 인구의 수와 반비례하는 것 같다. 와이오밍을 가로지르는 287번 길 주변은 가게도, 인가도 거의 없는 사막이다. 물과 음식을 충분히 들고 가지 않으면 중간에 탈진할 우려가 있다. 그걸 알지만 자전거에 한번 올라타면 계속 가고 싶은 심리적 함정에 빠져 오랜만에 가게가 나와도 내리기가 귀찮아 그냥 지나쳐버린다. 그러다 강풍을 만나 속도가 줄어들면 물과 음식이 빨리 동이 난다. 때로는 물 한 모금이 50㎞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람이 적을수록 친절망이 더욱 촘촘히 가동한다.

제프리 시티에서 랜더까지 갈 때 그랬다.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느끼면서 힘겹게 페달을 밟고 가는데 언덕 아래서 소형 승합 택시가 서더니 두 사람이 내렸고 그 중 한 사람이 내게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이 사막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까.

캐티였다. 옆에 남편 칩이 서 있는데 조금 불편한 표정이다. 콜로라도 주 월든에 있는 모텔에서 만난 61살 동갑 부부. 그들은 로링스에서 택시를 대절해서 두보이스까지 가는 길이었다. 이 길은 역풍이 센 것으로 악명 높다. 은행에 넣어둔 돈의 이자로 여행하고 있는 부자 라이더답게 이 구간을 택시로 건너다 나를 발견한 것.

에너지가 고갈될 무렵 택시 한대가 멈췄다
월든서 만난 호화여행 노부부 힘든 구간이라 택시대절했다며 초콜릿바와 물을 건넨다
“우린 네 지원차량 같아” 캐티는 말괄량이 할머니

택시대절은 당연히 캐티의 아이디어다. 칩은 힘든 구간이라고 해서 택시 타고 건너 뛰면 무슨 미국 자전거 횡단이냐는 불만에 찬 표정. 칩은 내게 마실 물을 줬고 캐티는 에너지 보충용 초콜릿 바와 샌드위치를 싸 주면서 “우리가 말이야, 꼭 네 지원차량인 것 같아” 라고 말했다. “맞아. 지금 먹을 게 떨어져 가서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던 차였어.” 내가 말했다. 캐티 얼굴에서는 생기가 돈다. 더욱 더 60대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베스트 웨스턴 호텔에서 이틀 쉬고 택시 타고 가는데 생기가 왜 안 돌겠어?” 그가 말했다. 나는 캐티가 새치기했다기보다는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의 전구간을 페달을 밟아서 건너겠다는 집착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느낀다. 그들이 택시를 타고 떠나는데 보니까 운전사 옆 좌석에 캐티가 앉았다. 당당하고 자의식 없는 말괄량이 소녀다.

마음 따뜻한 곳이 바로 서부

얼마 안 가서 사막 한가운데 물통을 들고 서 있는 또 다른 중년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내 물통에 있는 미적지근한 물을 시원한 물로 갈아줬다. 두보이스를 지나 콜터 베이 빌리지(Colter Bay Village)로 가는 길에 만난 브라이언 부부는 땅콩을 주면서 오리건 주에 오면 자기 집에 재워주고 바비큐 해주고 공항까지 태워주겠다고 약속했다. 어느 식당의 식탁 위에 놓인 팜플렛에 ‘서부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제목의 시를 보고 나는 내가 서부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시는 아서 챕먼(Arthur Chapman)의 원작시를 줄여놓은 것이었다.

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손 잡는 힘이 조금 더 세게 느껴지는 곳

미소가 조금 더 오래 머무는 곳

그곳이 서부가 시작되는 곳이니

한숨보다는 노래가 많고

주는 게 많아서 살 필요가 적으며

한번 친구를 사귈 때는 마음을 다하는 곳

그곳에서 바로 서부가 시작되거늘

서부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미 건국 당시에는 애팔래치언 산맥 서쪽이 서부였고 한 동안은 미시시피강 서쪽이 서부였다. 20세기 초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한 챕먼은 덴버가 서부라고 생각하고 그런 시를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록키산맥 서쪽을 서부로 여긴다. 지리적으로 어디가 서부인지는 중요치 않다. 마음이 따뜻한 곳이 바로 서부다. 나는 그런 곳에 들어왔으며 더욱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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