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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계곡의 바위가 노란 빛을 띠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서 보니 오히려 붉은 산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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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39)
해발고도 2897m 토궈티 패스(Togwotee Pass)에서 2000m의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까지는 20㎞의 가파른 내리막길. 브레이크 손잡이를 쥐었다 놨다 하면서 때로는 시속 60㎞의 초고속으로 내려가는데 얼핏 그랜드 티톤의 영봉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급 브레이크를 잡았다. 앞으로 고꾸라지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이 영봉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여행은 충분히 남는 장사다 싶다. 흰 눈의 축복을 받은 해발고도 3000m급의 회색 바위들이 평지에서 갑자기 돋아나 지질학적 경이를 이루고 있다. 예전 프랑스 사냥꾼들이 붙인 티톤이라는 이름 자체는 안 어울리게도 불어로 가슴을 뜻한다고 한다. 엄청나게 큰 가슴이라는 뜻인데 봉우리들이 뾰족해서 잘 연상되지 않는다.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 안의 콜터 베이 빌리지(Colter Bay Village) 캠프장은 한 여름에도 기온이 밤에는 섭씨 영상 5도 안팎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모기도 없고 습기도 적어 공기가 빠삭빠삭하다. 여기서 스페인에서 온 카를로스와 고르고 형제를 만났다. 30대 초중반의 이들은 3 년째 자전거 여행하는 중인데 아프리카와 중동 남아시아 중국을 거쳐 미국에 들어왔다. 동생인 고르고는 3만4600㎞, 형인 카를로스는 3만㎞를 달려 지구의 둘레 4만77㎞에 육박하고 있었다.
고르고는 시정부, 카를로스는 중앙정부에서 일하고 있어 5년 이상 일하면 자기가 일한 기간만큼 무급 휴가를 쓸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의 차림은 수수했다. 자전거도 20만원 안팎으로 대당 보통 100만원이 넘는 여행용 자전거가 아니었다. 바퀴를 손쉽게 뺄 수 있는 퀵 릴리스도 없다. 사이클화도 신지 않았다. 속도계도 없다. 잠은 길가나 야영장에서만 잔다. 눈빛은 너무 맑다. 세상을 보고 싶어서 다닌다고 했다. 욕심을 줄이면 더 많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이치를 이들에게서 다시 확인한다.
또 나빠지면 자전거를 손봐 경삿길 주행
“기적이다” 입떼는 순간 뒷바퀴 ‘툭’
고갯길서는 디레일러 완전해체
지나가는 차들에 도움을 청하려니
그들의 ‘제국주의적 여행’에 배알이 꼴린다
이들과 일정이 안 맞아 먼저 출발하려는데 자전거가 뒤로 나자빠졌다. 체인이 빠져버렸다. 체인을 집어넣으면서 보니까 뒤 드레일러에 문제가 있었다. 근처에 자전거포도 없어서 자전거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고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할 수 없이 출발을 연기하고 스페인 형제와 하루 묵은 뒤 다음날 옐로스톤 국립공원 안의 그랜트 빌리지(Grant Village)를 향해 함께 출발했다. 64㎞밖에 안 떨어진 곳이지만 경사의 변화가 심한 오르막길이고 자전거 상태가 안 좋아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거기서 하루 머문 뒤 궁극적으로는 150㎞ 떨어진 웨스트 옐로스톤에서 수리를 맡긴다는 계획이었다.
고꾸라질만큼 아름다운 영봉
처음엔 내가 먼저 출발했으나 고르고는 과연 빨랐다. 오르막길을 안장에서 일어서서 페달을 밟는 자세로 훌쩍 넘어갔다. 일어서서 페달을 밟으면 페달에 체중을 얹을 수 있지만 선 자세를 지탱하는데 산소와 에너지가 많이 소모돼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고르고는 놀랍게도 긴 오르막길 전체를 일어서서 소화했다. 카를로스는 앞서 가지 않고 내 뒤에서 따라왔다.
그런데 내리막길에서는 내가 빨랐다. 역시 내 짐이 무거워 가속도가 붙기 때문이 아닐까 착각했는데 그들이 휘파람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고르고가 느려진 것은 뒷바퀴가 빵구났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세우고 걸어가서 고르고가 튜브를 갈아끼우는 것을 도와줬다.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이게 불과 여섯 번째의 빵꾸라고 한다.
처음 36㎞는 신나게 달렸다. 뒤 기어가 제 멋대로 움직였지만 앞 기어를 조절해가면서 무난히 달렸다. 기왕 이렇게 달릴 수 있는 바에 웨스트 옐로스톤까지 내처 달릴까도 생각했다. 그랜트 빌리지는 너무 가까워서 하루 묵기에는 아까웠고 무엇보다 빨리 기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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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티톤의 영봉들을 배경으로 내려오는 바이크 라이더. 어드벤쳐 사이클링 어소시에이션에서 제공한 흑백사진으로 1976년 당시 처음으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이 생겼을 당시 촬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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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기적적으로 자전거가 잘 되고 있다”면서 “오늘 바로 웨스트 옐로스톤까지 가버릴까 한다”고 말하자마자 체인이 빠져버렸다. 입방정의 대가다. 체인을 다시 끼우고 얼마 안 가서 이번에는 뒷바퀴가 빠져버렸다. 짐수레가 무거워서 항상 뒷바퀴 축에 무리한 힘이 가해지기 때문에 뒷바퀴가 자주 이탈한다. 성가신 일인 것이 바퀴를 다시 끼우려면 짐수레를 분리해 내고 자전거를 거꾸로 뒤집어서 바퀴를 집어넣은 뒤 축의 나사를 조이고 다시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짐수레를 결합해야 한다. 문제는 짐수레와 자전거를 결합하려면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놓을 나무나 기둥이 필요하다. 내 자전거에는 자전거를 땅에 받칠 수 있는 킥 스탠드가 없다. 받칠 데가 없이 혼자서 끼우려면 자전거를 거꾸로 올라타 프레임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걸치고 두 손으로 짐수레의 두 손잡이를 붙잡아 뒷바퀴 축에 끼어 넣어야 한다. 자전거가 균형을 잃어 넘어지면 날카로운 톱니바퀴에 종아리나 정강이 무릎이 주욱 찢어진다. 톱니바퀴는 내 피로 얼룩덜룩 하다.
지금은 고르고가 자전거를 잡아줘서 일이 쉽다.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이래서 좋다.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체인에 부하가 많이 걸린다. 저 언덕을 넘을 때까지만 무사하기를 빌면서 가는데 체인이 뒤 기어에서 또 빠졌다. 그랜트 빌리지까지 가는 여정이 점점 엉망진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배려해 뒤따라오던 고르고와 카를로스가 다가왔다. 나는 미안해서 그들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기다리는 게 전혀 문제 안 된다며 일을 거들어줬다. 나는 체인을 끼운 뒤 그들에게 “다음부터는 내 자전거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멈추지 말고 그냥 그랜트 빌리지까지 가라. 거기서 만나자”고 했다. 나로서는 도움이 아쉬웠지만 그들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들이 먼저 출발했다. 언덕의 꼭대기가 바로 저긴데 저기만 넘으면 될 것 같은데 또 체인이 빠졌다. 다행히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언덕을 넘어가버린 듯했다. 체인을 혼자 끼우고 있는데 어느 새 고르고가 언덕을 내려왔다. 한번 올라간 언덕을 다시 내려오는 것은 보통 성의가 아니다. 나는 죽어도 그렇게 못한다. 그에게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차라도 얻어 타고 갈 테니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다.
나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관찰력이 없다. 페달을 밟으면 앞 뒤 바퀴가 동시에 움직이는 줄 알았다. 체인이 뒷바퀴에만 연결돼 있어서 뒤 바퀴가 움직이면 앞바퀴가 따라서 움직인다는 걸 알고는 그 동안의 내 무지에 한숨이 나온 적이 있다. 기어라는 것은 결국 뒷바퀴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요즘 자전거들은 그 조절을 프랑스 사람이 개발해 철자가 복잡한 드레일러(derailleur)로 한다. 드레일러는 앞과 뒤 기어에 두 개가 있는데 뒤 드레일러를 가만히 보면 조그만 바퀴 두 개가 있다. 이걸 폴리라고 부르는데 드레일러는 이 폴리의 위치를 변경함으로써 기어를 변속하는 것이다. 내 자전거는 이 폴리의 위치가 흔들려서 뒤 기어를 조절할 수 없었는데 얼마 안 있어 폴리 두 개 모두 떨어져나갔다. 드레일러가 완전 해체돼 버렸다. 자전거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지구 반바퀴 돈 스페인 형제
망연자실 고개 위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랜트 빌리지에서 기다리다 알아서 점심을 먹겠지. 그리고는 구경을 다니겠지. 고개 옆으로는 기기묘묘한 바위틈으로 찬란한 햇볕을 튀기며 시냇물이 흐르고 그 맞은 편에는 산이 딱 막아서 있다. 언덕 아래를 바라본다. 차들이 행여 속도를 늦추면 차가 흘러내리기라도 하는 듯 전속력을 내며 올라와 씽 스쳐간다.
미국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관광객이 되면 안 그렇다. 관광객들은 빛만 보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보려고만 하지, 개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관광의 본질이다. 만약 내가 외진 길에서, 또는 국립공원 아닌 곳에서 이런 일을 당했으면 친절망이 가동했을 것이다. 또는 손을 들어 도움을 청하면 관광객에서 다시 더불어 사는 시민으로 돌아가는 운전자가 나타날 것이다.
손을 들까 말까 고민했다. 미국의 많은 주들이 낯 모르는 사람을 길에서 태워주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히치하이커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가끔 있었기 때문에 그런 법이 생겨났겠지만 참 무정한 법이다. 대중교통과 인도가 발달하지 않은 미국에서 히치하이킹은 때로는 유일한 통행방법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와이오밍 주에 그런 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법이 무서워서 손을 못 들고 주저하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 께름칙했다. 이 여행을 시작할 당시 나는 미국을 횡단하는 데 차의 편의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캔터키 주에서 친구 경보 집에 갈 때 어겼다.
지금은 가장 절실히 차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고장 난 자전거에다 짐수레를 끌고 110㎞를 걸어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콜로라도 주 오드웨이에서 하루 신세를 진 뉴질랜드인 질리언의 말이 생각났다. 항해를 좋아하는 질리언은 망망대해에서 배가 기관고장을 일으켰을 때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최종적인 해결책은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미국 관광객들은 ‘집’을 몰고 다닌다
RV 안에 화장실·부엌·침대… 새로운 세계에 자신의 삶을 강요한다
이슬에 젖지도 새소리에 눈뜨지도 못한채
그에 비하면 길 가에서 자전거가 고장 난 상황은 그냥 불편한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믿고 마음을 가볍게 먹자. 사실 내가 실망한 것은 자신에 대해서다. 나는 아직 자전거와 라이더 그리고 자전거 수리 기술의 삼위일체로 이뤄진 바이크 라이더가 되지 못한 것이다. 전날 잠정적으로 자전거를 고치면서 그 기술을 깨우친 줄 알고 좋아했지만 사실 문제를 잠시 연기한 것, 아니 악화시킨 데 불과한 것이었다.
하치하이킹 금지법 무정하다만
손은 들지 않았지만 잔뜩 불쌍하면서도 악의는 없는 얼굴을 지으면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관광 온 미국인들은 큰 차를 선호하다 못해 집을 몰고 다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전거와 수레를 넣을 공간은 있다. RV(Recreational Vehicle)라고 하는 차들은 때로는 그 집만한 차로도 부족해 뒤에 SUV나 승용차를 달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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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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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대의 길이가 10m가 넘는 게 수두룩하다. 그래서 그 동안 나는 RV를 미워했다. 그것은 제국주의적 여행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잠시 기존 삶의 혜택을 단념하고 새로운 세계에 자신을 집어넣은 것이다. RV는 새로운 세계에 자신이 누리던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다. RV 안에는 화장실 부엌 침실에다 응접실마저 있다. 그들은 이슬에 젖지도 않고 새소리에 눈을 뜨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좁은 편도 1차선 길의 경우 길을 독차지하고 지나가는데 종종 자신의 덩치를 의식하지 못하고 바이크 라이더에게 몸을 바싹 붙이고 지나간다. 그 매연하며. 그런데 지금은 그 RV들을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도움을 청하고 있으려니 스스로 배알이 꼴렸다. 다시 자전거 도구들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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