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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의 절경이 펼쳐지는 존 데이 화석지대에는 켜켜이 쌓인 지층마다 천만년의 세월이 응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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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45) 오리건 주 베이커 시티에서 머무를 때 마지막 여정을 짜보니 엿새면 태평양까지 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지도에 밤에 머물 곳들을 표시했다. 흥분하기에 앞서 여섯 개의 고개에 신경 쓰였다. 그 중 세 개의 고개는 하루에 다 넘어야 한다. 중간에 마땅히 머물 곳이 없다. 섬터(Sumpter)와 팁턴(Tipton), 딕시(Dixie) 고갯마루. 모두 1500m가 넘는 준령들이다. 그런데 나는 하루에 다 넘었을 뿐 아니라 이 세 고개를 넘고도 160㎞를 달렸다. 이제 남은 고개는 세 개. 이제 닷새에 나눠서 넘으면 된다. 자신만만해진 탓에 데이빌(Dayville)이라는 곳에서 “조금 돌아가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시원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식료품점 주인 스티브의 말에 넘어가버렸다. 그리고 무진장 후회했다.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에 따르면 데이빌이라는 곳에서 26번을 타고 60㎞ 가면 미첼(Mitchell)이 나온다. 나는 절경이 있다는 존 데이 화석지대를 돌아보기 위해 19번으로 새서 207번을 타고 삥 돌아와 미첼에 도착했다. 모두 125㎞. 65㎞를 더 돈 것이다. 더위와 바람, 오르막길, 전날의 피로가 누적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무리한 일탈이었다. 페달 밟기가 고통스러웠다. 절경 보고 가란 식료품 주인 말에 꼬여
65km 돌아 ‘존 데이 화석지대’엘 갔다
천만년 압축 ‘연대표’ 시간의 질감이 무겁다
하룻밤 잤으나 천년의 세월 흐른 듯 그래도 덕분에 시간여행을 했다. 궁극적인 여행은 존재의 조건에 대한 탐험이다. 도시와 마을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우주 속으로 헤매는 것이다. 존 데이 화석 지대는 그런 곳이었다. 켜켜이 쌓인 지층, 한 층마다 천만년의 역사가 압축돼 있는, 거대한 지질학의 ‘연대표’를 굽이굽이 돌면서 나는 시간을 거슬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험한 준령 세번 넘고도 160km 질주 마치 부침개를 뒤집듯 천만년을 단위로 지각이 휘 까닥 변동한다. 이곳이 열대 밀림이었다는 사실, 브론토세레스(brontotheres)와 아미노돈트(amynodont)처럼 멸종된 포유동물이 여기에 쏘다녔다는 사실, 도저히 믿기 어렵다. 지금은 사막성 분지이기 때문이다. 마른 광선은 생명을 태워버린다. 그런데 열대밀림을 증거하는 나무와 동물들의 화석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인류의 역사도 언젠가는 저 한 층, 불과 10m도 안 돼 보이는 지층 하나로 압축되지 않을까. 이 화석들을 보면 인류가 영속하리라고 믿기보다는 지각변동으로 브론토세레스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그것을 최후의 심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또는 자연적 순리로 받아들여야 할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의 의미를 묻게 된다. 무엇을 하든 어차피 저렇게 시간의 잔재로 퇴적하고 말 텐데. 세계 초강대국인들 오는 세월을 저지할 수 없다. 우주의 단위에서 보면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서 기삿거리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구만한 별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물며 내 개별적인 삶의 중단이야 말해 무엇 하랴. 우주 일보의 한 줄짜리 부음란에도 실리지 않을 것이다. 허무주의를 꼭 극복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도 우주를 이루는 전체의 한 부분이라고 믿는 것뿐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연계돼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죽음으로 삶의 의미가 완성되지는 않겠지만 단절도 아니다. 더 큰 존재에 합류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는 것은 우주에서 티끌 같은 존재인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기와 속도에 압도돼 좌절하기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한 바퀴 한 바퀴에 의미를 두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비춰볼 때 미국 횡단은 엄청난 성취가 아니다. 자전거타기는 긴 거리를 달려서가 아니라 자신이 페달로 밟은 몇 미터의 거리에도 성취감을 느낄 줄 아는 삶의 방법이다. 비단 라이딩뿐 아니다. 마라톤을 뛸 때 연도에 선 시민들이 손을 흔들어줄 때 왜 박수를 쳐줄까 생각해본다. 인간애와 연대감 같은 게 있겠지만 무엇보다 마라토너들이 인간의 숙명을 재연하는 위대한 연기자들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껴서가 아닐까. 이곳에는 온통 존 데이 투성이다. 존 데이 화석지대 외에 존 데이 마을, 존 데이 강, 데이빌… 그래서 그가 위대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유추했는데 아니었다. 1810년 그는 아스토(Astor) 모피사냥 원정대의 일원으로 오리건에 들어왔다가 겨울이 다가오자 허기와 피로에 지쳐 동료 한 명과 뒤에 쳐졌다. 두 사람은 생선 내장과 뼈, 동물 가죽으로 연명하며 컬럼비아 강까지 갔으나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붙잡혀 얻어맞고 옷까지 빼앗겼다. 벌거벗고 아사직전의 데이는 다행히 탐험대에 의해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다시 사냥 원정대와 함께 컬럼비아 강 일대를 방문했다가 정신이 나가 몇 개월 뒤 숨졌다. 주요 지형과 마을에 이름이 붙을 만한 인물의 일대기는 아니다. 하지만 역사가 항상 승자와 위인만을 기억하라는 법은 없다. 낙오자도 기려야 한다. 존 데이 화석지대는 몇 천년 전이나 똑 같은 모습일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 옷을 입고 존 데이 강에 들어가 수영 겸 목욕 겸 세탁을 했다. 옷을 벗고 해도 무방했을 것이다. 보는 사람이 없다. 자전거를 타고 남은 길을 가면서 옷을 말릴 심산이었다. 서비스 크릭(Service Creek)이라는 곳을 만나 강변에 텐트를 쳤을 때는 감쪽같이 다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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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빌에 있는 스태포드 호텔에서 앤디와 캐론 부부 그리고 호주에서 온 매트(오른쪽)와 합숙했다.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서인데 일행인 세 사람은 항상 이렇게 셋이서 여관에서 같이 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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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불으면 직장 관두고 반년씩 걷기·자전거여행
뒤에 성조기를 꽂고 다닌다 애국심 때문이냐고? 차에 치이지 않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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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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