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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06 20:14 수정 : 2006.04.07 14:12

전망대에서 본 시스터스. 비슷한 모양으로 붙어있어 자매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 생성시기는 다르다고 한다.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46)

해발고도 1597미터의 맥켄지 패스(McKenzie Pass)는 태평양으로 가는 마지막 산마루. 이 산마루를 넘어가며 나는 라이더로 완성돼 간다고 느꼈다.

이 산마루는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있어 등정하기가 쉽지 않다. 출발할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뒷바퀴가 트레일러의 무게를 못 이겨 빠져버리는 현상이 재발했다. 트레일러를 떼어내고 바퀴를 도로 집어넣은 뒤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출발하려는데 이번에는 체인이 빠져버렸다.

앤디와 캐런 서머스 부부와 매트는 나중에 레드몬드(Redmond)에서 보자고 먼저 출발해버렸고 끝내 그들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시스터스(Sisters)에 있는 친구 집에 들러 이 일대를 며칠간 등산한 뒤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마저 갈 예정.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들이다.

자전거를 꼼꼼히 살펴보면서 디레일러에 다시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다. 고질병이다. 앞기어를 고단에서 중단으로 내리면 다시 고단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그리고 뒷기어를 4단 밑으로 내리면 앞기어와 뒷기어를 잇는 체인의 각도가 비뚤어져 체인이 자주 빠져버린다. 그러니까 결론은 앞기어는 고단, 뒷기어는 7단에서 4단까지만 쓸 수 있다는 얘기. 발딱 선 오르막길을 가려면 많은 기어가 필요한데 큰일 났다. 내가 쓸 수 있는 기어는 4개 단밖에 없다. 레드몬드나 시스터스에 있는 자전거포에 들러서 기어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했으나 하루가 더 소요되는 게 마음에 걸린다. 그냥 돌파해보기로 했다. 나는 항상 그런 식이다.

마지막 등성이 1597m를 넘어야 하는데
뒷바퀴·체인·기어 연쇄말썽이다
빙상선수 자세→수영 자세→달리기 자세
온몸 근육 가동 자전거와 내가 한몸이 됐다
정상에 오른 나, 대견하다


시스터스를 지나서는 24킬로미터의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터득한 온갖 자세로 올라갔다. 자전거 타기가 힘들어지면 스피드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고 생각한다. 페달에 붙어있는 발을 빙상선수처럼 움직인다. 한동안은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나가는 느낌이 난다. 피로를 느끼면 자세를 바꾼다. 이번에는 수영이다. 자유형 발차기 하듯 발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팔 젓기도 한다. 물론 핸들바를 놓지는 않은 채 그렇게 한다.

한여름인데도 이빨 덜덜

수영도 오래할 수는 없다. 그럼 달리기다. 자전거 위에서는 실제 달리는 동작이 나온다. 서서 타면 된다. 페달에 붙은 발을 밀고 당기면서 자전거를 좌우로 흔든다. 마치 피아노의 메트로놈처럼 흔드는데 자전거를 왼쪽으로 기울일 때는 왼발에, 오른쪽으로 기울일 때는 오른 발에 힘을 줘서 율동을 창출한다. 정확히 달리는 동작이 나온다. 자전거와 내가 한 몸이 되는 것을 느낀다.

서서 타면 등과 다리로 몸통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피로해진다.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서서 타는 연습을 해온 탓에 산길 2킬로미터를 앞기어는 고단, 뒷기어는 5단으로 놓고 선 채로 갈 수 있게 됐다. 어차피 기어를 낮게 조절할 수 없어서 서서 세게 밟아야 계속 출몰하는 고비들을 넘을 수 있다. 20킬로미터를 선 자세와 앉은 자세를 반복해서 올라갔더니 더 이상 설 수가 없다. 이제는 안장에 앉은 채 허벅지로 페달을 들어올리는 동작으로만 바퀴를 돌린다. 그 다음에는 종아리로만 페달을 당기기. 그러다 지치면 그 다음에는 발로 페달을 밀어내기 또는 차내기… 나중에는 다리에 붙은 근육들을 완전 가동하며 맥켄지 패스를 향해 올라갔다.

맥켄지 패스는 후지어 패스보다 2000미터 가량 낮았지만 바람이 더 세고 추웠다. 오래 있을 수가 없었지만 한 여름 눈 덮인 시스터스와 제퍼슨 마운틴이 시선을 붙잡는다. 참 멀리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용암이 흘러내리다 1500년 전 멈춰 검은 바위들의 강을 이루고 있는 광경이 신기하다. 마치 조금 전 하천 준설공사를 해서 바닥 흙들을 쌓아놓은 것처럼 용암들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1500년 전이면 삼국시대다. 그 때에도 아메리카 대륙은 지질학적으로 꿈틀대고 있었고 지금도 언제 화산이 폭발할지 모르는 유동적인 상황이다. 그 현장에 도착한 소감은 후지어 패스에 올라갔을 때와 비슷했다. 목표를 정하면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이룰 수 있는 나를 믿게 됐다는 것이다. 이루지 못한다면 내 안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실히 노력한 나는 아니다.

맥켄지 패스를 넘으면 바다가 눈에 들어올 줄 알았다. 그 바다를 향해 내리막길을 질주하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올라왔는데 바다의 냄새조차 맡지 못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기 머금은 바람 덕택에 캐스케이드 산맥의 서쪽 사면은 다종다양한 수종과 화초들로 우거져 있다. 삼나무는 고층 빌딩처럼 치솟아 시야를 가렸다. 그래서 내려가는 길은 빌딩 숲 사이의 골목길처럼 좁다. 내려가는 즐거움은커녕 너무 추워서 이빨이 덜덜 떨렸다.

태평양으로 가는 마지막 산마루 맥킨지 패스(1597미터)에서 관광객에게 부탁해 사진 한 장 찍었다. 너무 추웠다. 주차장 바로 옆에 보이는 돌밭이 1500년 전 용암이 흘러내리다 멈춘 흔적이다.
내가 라이더가 됐다고 느낀 것은 맥켄지 패스를 넘고도 154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을 만큼 향상된 라이딩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 깨달음은 유진(Eugene)으로 가는 외진 길에서 찾아왔다. 지금까지 11번 펑크가 났는데 11번째 펑크는 전혀 예상 못한 트레일러 바퀴에서 일어났다. 이 바퀴의 타이어는 면적 1인치당 감당할 수 있는 압력(psi)이 120으로 높은 편이어서 끄떡 없을 줄 알고 여분의 튜브를 가져오지 않았다. 펑크를 때울 수 있는 패치도 없었다. 자전거포는 100킬로미터 떨어진 유진이나 그에 조금 못 미친 스프링필드(Springfield)까지 가야 있다.

사실 전날 공기가 빠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공기를 집어넣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공기가 또 빠져 있었다.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지만 일단 공기를 넣고 강행했던 것. 얼마 못 가 트레일러가 질질 끌리는 느낌이 들어 자전거를 세워보니 바람이 완전히 빠지고 타이어까지 우글쭈글 찌그러져 있었다. 낭패였다. 홍동지식 밀어붙이기의 업보다. 이 일을 어쩐다.

일단 타이어를 림에서 빼내는 것부터 힘들었다. 너무 꽉 끼어있었다. 끝이 ㄱ자로 구부러진 타이어 레버 한 개를 타이어와 림 사이에 찔러놓아 틈을 만든 뒤 다른 레버를 그 틈으로 집어넣고 오른쪽으로 밀고 간다. 더 이상 밀고 갈 수 없는 지점에서 레버를 지레로 써서 타이어를 밖으로 밀어낸다. 그러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레버 사이의 원호만큼 타이어가 나와야 하는데 꿈쩍도 안 한다. 이 부분이 안 나오면 타이어가 나올 수 없다. 바람 빠진 타이어가 나오지 않으면 자전거가 갈 수 없다. 자전거가 못 가면 내 여행은 여기서 좌초한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타이어의 원호가 내 여행 전체의 거리와 맞먹는 중요성을 갖는다. 이 조그만 타이어의 원호가 이렇게 큰 권력을 행사하게 된 상황에 신경질이 나려고 한다.

최악의 도로 목숨 건 주행

예전 같으면 자전거와 트레일러를 옆에 흐르는 맥켄지 리버에 밀어 넣어버리고 그냥 걸어가고픈 유혹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내 평정심을 회복한다. 여행 초반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에서 교차로 변에서 펑크가 났을 때 허둥대고 서두른 내 모습과는 판이하다.

할 수 없이 첫 번째 레버를 두 번째 레버가 있는 곳까지 힘겹게 밀어서 그 길이만큼 타이어를 밀어냈다. 이번에는 한두 뼘 정도 떨어진 곳에 레버를 찌른다. 바로 지레로 활용해 타이어를 밀어낸다. 밀어낸 지점에서 이번에는 왼쪽으로 레버를 밀고 가서 그 원호만큼 타이어를 들어낸다. 그렇게 해서 타이어의 1/3을 들어내니까 타이어가 림 밖으로 빠졌다. 후유.

타이어에서 튜브를 빼내 바람을 넣어서 새는 곳을 찾았다. 바늘 구멍만한 구멍이다. 누군가는 패치가 없어서 씹던 껌을 붙여서 막고 갔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 구멍을 어떻게 틀어막지. 나는 일회용 반창고를 생각해냈다. 구급약품 주머니에서 반창고를 꺼내 접착제가 붙은 부분을 칼로 잘라낸 뒤 이 조각으로 구멍을 막았다. 불안해서 두 겹으로 붙여놓은 뒤 바람을 집어넣었다. 팽팽할 때까지 집어넣었는데도 바람이 새지 않는다. 됐다. 다시 바람을 뺀 뒤 역순으로 튜브를 타이어 속에 집어넣고 다시 타이어와 튜브를 함께 림에 집어넣었다. 집어넣을 때도 타이어 레버를 지레로 활용해 집어넣어야 한다. 그 때 주의할 것은 레버가 튜브를 물고 들어가 튜브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뒤 프레스타 밸브를 통해 바람을 넣고 바퀴를 트레일러에 도로 끼운 뒤 시운전을 했다. 괜찮을 것 같다. 이 상태로 유진까지 100 킬로미터를 갔다. 이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믿지 못한다. 내가 맥가이버가 된 기분이다. 옐로스톤에서 드레일러가 고장 나자 체인을 끊어 1단짜리 자전거로 만들어 타고 간 것에 이어 두 번째 기술력의 개가였다. 나는 이제 임시변통이나마 자전거의 병을 돌볼 능력이 있다. 자전거와 자전거 타는 사람, 자전거 고치는 사람 삼위일체로서의 바이크 라이더가 된 것이다.

11번째 ‘펑’ 트레일러쪽 여분 없어 낭패
홍동지식 밀어붙이기 대수술 시작
타이어 빼내 구멍에 반창고 이렇게 100km를 갔다
기술력의 개가! 못믿겠다고요?

유진까지 질러가려고 126번을 계속 타고 가다 최악의 도로조건을 만났다. 오리건에서는 비교적 인구가 많은 편인 스프링필드와 유진을 관통하면서 126번에 교통량이 엄청났다. 갓길만 잡고 가는데 벌목 트럭이 흘리고 간 목재의 껍질에서부터 잔돌 부스러기, 병 조각, 병 마개 등이 즐비했다. 갓길이 좁아지는 다리 위에는 더욱 장애물이 많고 차들은 마치 도로로 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듯 인정사정 없이 질주해 아슬아슬한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식은땀이 난다. 6000킬로미터 이상 달려와서 사고를 당한다면 꼭 기분이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전쟁 막판 10월의 청명한 날에 총탄을 맞은 폴과 같을 것이다. 그래도 ‘서부 미국'은 이상이 없을 것이다.

공짜 수리 인심 후한 자전거도시

더 이상 못 버티고 스프링필드에서 126번에서 빠져 나와 통행량이 적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스트리트를 타고 유진에 진입했다. 그러나 도심으로 가는 길이 갑자기 없어지면서 다시 악몽의 126번과 합류했다. 또다시 악다구니처럼 달려드는 차들과 신경전을 벌였다. 도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차선을 바꿔야 했는데 목숨을 건 월경이었다.

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자전거의 수도라고 불리는 유진은 생각한 모습과 너무 다르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익숙해서 문제 없겠지만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는 도로에 지정된 자전거 도로의 배열이 어지럽다. 반면 자전거포들의 인심은 후했다. 자전거포 허치스의 주인은 횡단 라이더에 대한 예우로 공짜로 튜브를 갈아줬는데 모든 작업을 레버 없이 맨손으로 했다. 튜브교체용 특수 근육이 발달해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마지막 행선지인 플로렌스로 가는 길로 126번 대신 대안을 일러줬다. 50킬로미터쯤 도는 길이지만 하도 126번 길에 데어서 그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이제 하루 남았다. 마지막 등정을 앞두고 카페 서울에서 공기밥 두 그릇을 시켜 김치찌개를 먹었다. 김치 찌개는 역시 한국음식의 진수다.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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