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6.09 16:39 수정 : 2006.01.18 17:09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4

동방에서 온 이방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환대가 시작되는 것일까 아니면 공존의 자전거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우연히 알게 된 버지니아 주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에 사는 브라이언 페트리치는 공항까지 마중 나와서 자신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에 그 무거운 짐들을 실어서 요크타운까지 날라줬다. 전편에 잠시 소개했듯이 그는 미국을 횡단한 경험이 있는 고참 라이더다.

동료 라이더들을 보살펴야 하는 당령에 복무하듯 그는 요크타운에서 미국 횡단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돕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차에서 연장통을 가져와 자전거를 조립하는 것을 도와줬다. 아니 그냥 그가 다 조립했다고 해야 맞다. 라이더는 타는 사람과 자전거로 구성된다고 쓴 적이 있는데 사실 라이더는 타는 사람과 자전거 그리고 자전거 기술자로 구성된다. 스스로 자전거를 분해, 조립은 물론 수리를 할 수 없으면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없다. 불행히도 그 점에서는 나는 완전한 라이더가 아니다.

내가 타는 자전거는 <휴먼 파워드 비어클 저널(Human Powered Vehicle Journal)>의 에디터인 버논 포브스의 것이다. 그는 내 횡단 여행을 후원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자전거를 빌려주고 장거리 여행에 맞도록 자전거를 개조하고 수리해줬다.

페트리치는 저녁시간까지 내줘서 요크 강변의 요크타운 퍼브(Yorktown Pub)라는 선술집에서 술을 함께 마셨다. 가볍게 한 잔 한다는 게 서로 죽이 맞아서 많이 마시게 됐다. 나로서는 그 동안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졸여왔던 마음도 풀고 다른 한편으로, 젠장, 여행 첫날 비를 맞아야 하는 구질구질한 느낌을 씻어버리기 위해 들이켰다.

영국 간호사는 사흘만에 핸들을 돌렸단다
나도 무거운 짐에다 자전거 조립조차 못한다
비슷한 꼴이 되는 것은 아닐까
“강해질 걸세” 고참 라이더는 위로했다


그는 올해 49살로 기계공장의 감독관이다. 시카고 출신으로 기혼. 취미는 사진과 컴퓨터. 그의 웹사이트도 있다. (www.petritsch.net) 내게 자전거 여행을 수백 마일이라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없다. 왜 그런 질문을 할까 생각하다 내가 짐을 푸는 모습을 그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게 기억이 났다. 그는 “짐을 효과적으로 쌀 필요가 있다”고만 한마디했었다. 그는 자신이 도와준 라이더들 중에서 영국에서 온 29살의 간호사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 여자는 장거리 라이더가 해서는 안 될 일만 골라서 했다면서 먼저 자전거 자물쇠를 두 개나 가져온 점을 예로 들었다. 나도 두 개를 가져왔다. 그가 여분의 타이어 두 개를 가져왔다고 했다. 나도 한 개 가져왔다. 그는 전혀 자전거 여행을 한 경험이 없다고 했다. 책 10권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물론 페이퍼백이었지만” 이라고 덧붙였는데 내가 가져온 책 5권 중에 페이퍼백도 아닌 두꺼운 표지의 책들이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는 산악자전거를 가져왔고 내 자전거는 그가 본 적이 없는 몰턴(Moulton) 자전거. 다행히 나는 그가 가져왔다는 8파운드짜리 2인용 텐트 대신 3파운드짜리 텐트를 가져왔다.

구질구질한 여행 첫날

점점 그 여자의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그는 미국횡단 여행을 출발한 지 사흘 만에, 버지니아주도 벗어나지 못하고 샬럿츠빌(Charlottesville)에서 핸들을 돌렸다고 한다. 영국에서 미국까지 비행기에 새 자전거와 온갖 짐들을 이고 지고 와서 72시간 만에 돌아선 것. 그 대목에서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는 명시적으로 나도 그런 꼴이 될 거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도 자전거를 혼자 조립할 수 없고 산더미처럼 짐을 챙겨오고 자전거 여행 경험조차 없으니 그 여자처럼 될 것 같으냐”고. 그는 “글쎄” 라고 확답을 피하면서 “중요한 것은 일주일만 버텨보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주일만 자전거를 타면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강해져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준비를 갖출 수 있게 된다면서 성급히 판단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얼마나 내가 미덥지 않게 보였으면 그런 얘기를 할까 하면서도 그의 충고를 접수하기로 했다. 그는 추가로 버지니아주를 통과할 때까지의 여정과 지름길 등을 알려주면서 지도까지 건네줬다. 덤으로 여행에서 마주치는 신기하고도 감동적인 경험들을 들려줘 술자리를 풍성하게 했다.

교회에서 공짜 숙박

그리고 은총 감독교회. 1697년에 세워져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을 모두 견뎌낸 308년 된 교회로, 요크타운의 사적지 안에 있다. 이 교회에 딸린 2층짜리 사택은 리버뷰 하우스(Riverview House)라고 불린다. 탁 트인 창 밖으로 요크강이 대서양과 합류하는 전경이 펼쳐진다. 교회는 이 사택을 미국횡단을 마쳤거나 시작하는 라이더들에게 공짜로 빌려준다. 교구 목사 칼턴 배컴(Carleton Bakkum)의 부인인 엘사(Elsa)는 “3년 전 우연히 두 명의 라이더들로부터 트랜스 아메리카의 트레일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듣고 교회의 친절을 널리 베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이곳을 다녀간 라이더들에 대한 정보가 숙박명부에 축적돼 있다. 올해에는 나를 포함해 모두 29명이 묵었다. 모두 떠나는 사람들이다. 몇 개월 있으면 서부에서 출발해 미국을 횡단한 사람들이 도착할 것이다. 출발과 도착을 포함해 지난해에는 모두 31명이 묵었으니까 올해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묵는 셈이다. 이 곳의 환대에 대한 소문이 더 퍼졌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횡단을 시도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교회의 친절이 이웃들에게는 낯선 사람들을 항상 마주쳐야 하는 불안으로 해석됐다. 이웃 사람들은 라이더들이 자신의 동네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소송을 걸었고 그 결과 라이더들은 집 앞에 있는 골목은 이용할 수 없고 교회 주차장으로 난 계단을 통해 삥 둘러와야 한다. 자전거와 짐수레를 들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면 아무리 친절이 넘쳐나도 근본적으로 계약사회인 미국사회의 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다. 배컴 목사는 “원래 이 사택이 한 주민의 소유였는데 이 주민이 동네 이웃들과 사이가 틀어져서 복수하기 위해 교회에 헐값에 넘기고 떠났다”고 말했다. 이 주민의 복수는 낯선 사람들이 북적대 동네를 소란스럽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라이더들만 횡재를 하게 된 셈이다.

숙박명부에서 놀라운 인물을 발견했다
5달만에 세번 횡단하고 한번 종주했단다
“처음 35일간 내 의지로 다녔다”
그럼 나머지 날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단 얘기다

이 교회가 얼마나 집단적으로 친절한지, 교회를 관리하는 집사인 대릴 더글러스(Daryl Douglas)는 리치몬드(Richmond)까지 가는 길 루트 5번에 시멘트를 실어나르는 트럭들이 많이 다녀 위험하다면서 위험한 길이 끝날 때까지 차를 태워주겠다고 제안했다. 그가 만약 차를 타고 가면 아메리카를 횡단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새치기하는 게 되느냐고만 덧붙이지 않았어도 그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숙박명부를 훑어 나가다 놀라운 인물을 발견했다. 지난해 11월18일에 이곳에 묵은 응웬 히엡(Ngugen Hiep)이라는 인물.

“CA → FL → ME →WA, OR→ VA → BC → CA. Started end of June, probably won't finish until Jan of next year. 110 ℉ AZ days, 17 ℉ MT nights, 3 hurricanes, 2 ft of snow in Yellowstone… The first 35 days on my own volition…”

해석해보자. 미국의 서쪽 끝인 캘리포니아주에서 출발해 동남쪽 끝인 플로리다주까지 횡단했고 거기서 기수를 돌려 북상, 북동부의 가장 북쪽 주인 메인주까지 종주했고 거기서 서북부의 북쪽 끝 주인 워싱턴주까지 횡단했다.

내일은 반드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오리건주로 내려갔다가 다시 미국을 세 번째 횡단해 버지니아주까지 왔으며 앞으로는 캐나다의 서쪽 끝인 브리티시 컬럼비아주까지 다시 네 번째 대륙을 횡단한 뒤 캘리포니아로 남하할 계획이라는 것. 6월 말에 출발해 5개월 만에 미국을 세 번 횡단하고 한번 종주했다는 얘긴데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듬해 1월 그러니까 올해 1월까지 여행을 끝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얘기. 그 대목에서는 신뢰가 다시 생긴다. 애리조나주를 통과할 때는 화씨 110도 그러니까 섭씨 43도가 넘는 열사의 사막을 지났고, 몬태나주의 산악지방에서는 화씨 17도, 섭씨 영하 8도까지 추위를 견뎌야 했으며 태풍을 세 번이나 만났고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60㎝가 넘는 눈에 파묻혔다는 것.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다. “처음 35일간 내 의지로 다녔다.” 그럼 나머지 날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얘기거나 하나님의 가호로 여행을 했다는 얘기다.

장편의 기행문을 써도 모자랄 여행을 단 세 줄로 압축 요약했으니 얼마나 경제적인 언어의 사용인가. 자전거를 한 바퀴도 돌리기 전에 벌써 백장에 가까운 원고를 쓰고 있는 나랑 대조적이다. 역시 진정 할말이 많은 사람들은 말을 아끼는 법이다. 베트남 이름을 쓰고 있는 이 사람은 주소란에 이렇게 적었다. “homeless for now, usually SF area” 지금은 집이 없고 주로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산다는 뜻이다. 혹시 여행이 아니라 그냥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방랑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인생이 여행이라는 의미에 더 부합해서 사는 것일지도.

아직 정주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나는 여전히 여행을 출발하지 못하고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다. 첫날부터 비를 맞으며 여행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메모를 읽고 난 뒤 교회 사택이 더 이상 강변의 호젓한 2층 양옥이 아니라 나를 가두고 있는 빈집처럼 느껴진다. 더 이상 빈집을 지키지 말고 이 자리를 뜨자. 내일에는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반드시 출발할 테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