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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과 수 슈락 목사 부부와 웬델 밀러(오른쪽). 개신교의 일종인 메노나이트 교도들인 이들은 '평화를 위한 페달밟기(Peace for Pedaling)'로 미국을 횡단 중이다. 뒤에 보이는 승합차가 그들을 따라 다니는 지원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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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목사부부와 초등학교 교사
그들은 평화봉사 단체에 기증하려고
기부자로부터 1마일당 얼마의 돈을 받는다
자선과 연대를 몸소 실천하는 라이더
이들과 함께 달리니 기분이 좋다
미국횡단 라이더들은 6400km 넘는 길 따라
공동체 이룬 한마을 주민 그만큼 소문도 빠를 법
나에 대한 뒷담화도 퍼졌다
“45kg의 짐을 싣고 가는 괴상한 녀석이 있다”고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18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여행하는 바이크 라이더들은 서로 마주치지 않아도 한 마을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마을은 아마 세계에서 유례없이 가늘고 긴 띠 모양일 것이다. 6400㎞가 넘는 길을 따라 공동체를 이뤄나간다. 엘리자베스타운을 떠나 고질적인 기어변속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리노이 주 카본데일에 있는 자전거포에 들렀을 때 나도 모르게 이 마을의 주민이 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면식 없는 주인이 수리를 마친 뒤 “너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 라고 말했다. 먼저 그 집을 들른 바이크 라이더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고 간 것이다. 궁금하기 짝이 없다. 주인은 말을 빙빙 돌리다가 ‘저 무게’ 하면서 내 짐수레를 가리켰다. 내가 끌고 가는 짐이 ‘마을’에서 화제가 된 것이다. 필시, 평균보다 세배나 무거운 45㎏의 짐을 싣고 가는 괴상한 녀석이 있다고 조롱하고 간 게 틀림없다. 라이더의 안식처 체스터 시립공원 그런데 기이한 것은 지금까지 나를 지나쳐간 라이더들은 몇 명 없었고 그들의 이름을 대자 주인은 그들은 아니라면서 정확히 누구한테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어떤 경로로 나를 알게 된 것일까. 구전은 빠르고 넓게 퍼진다. 내가 보지 못했다고 해서 여행하는 사람들이 얼마 안 되는 것은 아닐 게다. 같은 길을 비슷한 시기에 간다고 해도 끝까지 한번도 서로 못 볼 수 있다. 출근 지하철을 타는 것과 같다. 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도 앞 객차에 타는 사람은 뒤 객차에 타는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다. 그런데 기분에 따라 객차를 앞뒤로 바꿔 타는 사람들이 있거나 어느 날 늦잠을 자고 또는 부부싸움을 하고 황급히 지하철에 올라타 평소와 다른 객차를 타는 바람에 다른 승객들과의 교유가 이뤄지고 동료 승객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이다. 진짜 지하철 여행에서는 서로 말을 건네지 않지만 자전거 여행에서는 만나는 순간 바로 한 마을 주민이 되기 때문에 말이 빠르게 전파된다. 일리노이 주 체스터의 시립 공원 입구에서 크레이그 브록하우스라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머리를 짧게 깎은 우람한 체격의 그는 대번에 “그 동안 네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했다. “어? 나를 어떻게 알지?” “사람들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무슨 얘길? 무거운 짐 끌고 다니는 이상한 녀석이 한 명 올 거라고?” 브록하우스는 다소 신경질적인 내 어조에 조금 당황하며 “그게 아니고 한국 저널리스트가 올 거라고 들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라이더들을 공원으로 안내하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자원봉사자. 그는 찬 스포츠 음료와 얼음을 가져다 주며 아침에는 팬케이크와 잼, 주스로 대접하겠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먹지 못했지만. 그는 내년에는 자신의 집에 침대를 여러 개 마련하고 라이더들을 초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잘해주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는 “라이더들은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들”이라고 말했다. 체스터의 시립공원에는 별도의 캠프장이 없고 그냥 잔디밭에 텐트를 치는 것이었지만 마실 물과 전기가 있고 수영장에서 수영까지 할 수 있었다. 미국 횡단 바이크 라이더들에게는 모든 시설이 무료다. 수영장에는 10m는 될 듯 높은 다이빙대까지 있어서 한번 뛰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질간질 했지만 해가 저물어서 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설이 좋고 사람들이 친절한 탓인지 이곳으로 라이더들이 몰려들었다. 동진, 서진하는 라이더들 6명과 함께 야영했다. 동료가 있다는 게 좋다. 모처럼 자전거에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 잘 수 있는 게 좋다. 한 달이 가까워 오도록 자전거에 올라타면 왜 아직도 엉덩이가 고문 당하는 수준으로 아픈지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어 좋다. 나처럼 그들도 어느 방향으로 가든 바람은 뒤에서 불지 않고 앞에서 불어온다고 느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공사 중인 어느 길은 피해야 하고 어느 마을 공원의 잔디밭이 텐트치기에 부드러운지 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서 좋다. 나와 같이 서진하는 라이더들 중에는 목사 부부와 초등학교 교사 일행이 있었다 이들은 나보다 열흘 늦은 6월5일 출발했는데 불과 20일 만에 나를 따라잡았다. 비결은 ‘얄밉게도’ 차량의 지원이다. 승합차 한 대가 그들과 동행하면서 짐을 실어주기 때문에 그들은 자전거만 몰면 된다. 하루의 여정이 끝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승합차 운전자가 저녁을 지어놓고 기다리고 있다. 내가 펌프질을 해서 액체연료를 심지 위로 분사시켜 버너에 불을 피우고 물을 떠다 올려놓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텐트를 치고 옷을 빨고 부산을 떠는 동안 그들은 유유히 샤워를 끝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맛있게 저녁을 먹은 뒤 낮에 찍어온 디지털 사진들을 휴대용 컴퓨터에 연결해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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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 시립 공원의 입구에서 만난 크레이그 브록하우스 (가운데). 첫 인상이 봉사와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데 라이더들에게는 천사 같은 존재다. 그는 필자가 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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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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