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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교통사고로 숨진 희생자를 기리고 교통사고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유가족들이 사고가 난 자리에 십자가를 세운다. 사진의 십자가는 미주리 비스마르크 부근의 N 길에서 사고를 당한 애나를 기리는 십자가와 조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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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천치’ 하루 셋만 만나도 나쁜 곳이다
점잖은 목사 입에서 나온 허용치를
미주리 입성 몇시간만에 훌쩍 넘겼다
난 새 기준을 정해 숫자를 빼 나갔다
한없이 너그러워진 이유? 가족을 만나는 날이니까
좁은 다리에 생명선을 긋고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19
새벽에 미시시피 강을 건넜다.
오늘은 가족을 만나는 날이어서 저절로 눈이 일찍 뜨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차 통행이 많아지기 전 다리를 건널 필요가 있었다. 새벽 바람이 애프터 쉐이브 로션처럼 살갗에 와 닿는다.
하지만 북미 대륙의 대동맥인 미시시피강을 이렇게 서둘러 건너는 게 아쉬웠다. 오하이오 강과는 달리 배가 아니라 편도 1차선의 좁은 다리가 일리노이와 미주리 주 사이에 놓여 있다. 차도 옆은 갓길 대신 바로 강이다. 차와의 충돌, 추돌을 피하기 위해 강으로 떨어질 수 있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난간이 쳐져 있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그대로 차와 난간 사이에 끼이게 돼 있다. 큰 배가 밑으로 지나가도록 다리 중간이 솟아 있어 맞은 편에서 오는 차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에는 아예 진행 차선을 당당히 점유하고 차들을 뒤에 달고 가는 게 방법이다. 하지만 혹시 모를 사고의 위험보다 당장 뒤에서 빵빵대는 차들의 압박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강심장들이 많지는 않다.
그것은 더구나 통행량이 많아 차가 서행할 때나 할 수 있는 방법. 지금은 차들이 거의 안 다니는 새벽이어서 차선 중앙으로 가다간 쌩쌩 달리는 차에 그대로 깔릴 수 있다. 많은 라이더들이 새벽 음주운전 차에 당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도로 끝에서 1m 정도 차선 안쪽에 마음 속으로 생명선을 긋고 그 생명선을 따라 마구 페달을 밟았다.
만약 200여 년 전에 이 강을 건넜더라면 기초 프랑스어라도 외워와야 한다. 12회에 썼다시피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나폴레옹 황제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당시 루이지애나는 현재의 루이지애나 주를 포함하는 미시시피강 서쪽의 광활한 땅. 그런데 발달한 도시는 미시시피 강 하구에 위치한 하상 무역의 요충지 뉴올리언스 하나뿐이었다. 흥정이 이뤄지는 과정이 언급할 만하다.
먼저 나폴레옹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미국 쪽으로서는 부동산 투기의 동기였다. 프랑스는 현재의 캐나다를 식민통치하고 있어서 뉴올리언스는 프랑스가 미국을 공격하면 북쪽의 캐나다와 함께 양동 작전의 한 축을 이루는 남쪽의 발진기지가 될 수 있다. 제퍼슨은 나폴레옹의 북미대륙 상륙 발판인 뉴올리언스를 매입해버리려고 했다.
루이지애나 통째로 팔아버린 나폴레옹
마침 나폴레옹은 플로리다에서 남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섬 산토 도밍고에 3만5000명의 병사를 보내 반란을 진압하고 있었다. 제퍼슨은 뉴올리언스가 산토 도밍고 다음이 될지 모른다고 보고 협상을 서둘렀다. 대 프랑스 교섭창구였던 로버트 리빙스턴(Robert Livingston)과 제임스 먼로(James Monroe)에게 뉴올리언스를 750만달러에 매입하라고 지침을 줬다.
나폴레옹은 미국에 대해 역제의를 하는데 뉴올리언스만 떼서 안 팔고 루이지애나 전체를 사야 한다고 했다. 대신 모두 1500만달러, ㎢당 7000원의 ‘도매금’으로 넘기겠다고 덤터기를 씌우는 모습이 왠지 우리가 아는 황제의 이미지는 아니다. 전형적인 끼워팔기다. 뉴올리언스를 파는 김에 쓸모 없이 넓기만 한 땅도 팔아 치우려는 것. 제퍼슨으로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미국 영토는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나폴레옹이 마치 소탐대실하는 소인배처럼 보인다.
사실 나폴레옹은 산토 도밍고에서 나중에 ‘흑인 나폴레옹’으로 추앙받는 투산 루베르투어(Toussaint L'Ouverture)가 지휘하는 현지인들의 항전에 부딪혀 병사 2만4천 명을 잃는바람에 북미 진출을 포기했다. 대신 미국으로부터 받은 부동산 대금을 전비로 활용, 이미 잘 개발된 유럽의 부동산에 ‘투자’했다.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 등을 잇따라 쳐들어가 유럽의 맹주가 된 것은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의 일이다. 그로 봐서는 앞뒤 아구가 맞는 계산이었지만 국가 프랑스로 봐서는 여전히 두고 두고 땅을 칠 거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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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크 고원에서 만난 스콧과 크리시(오른쪽). 대학 졸업기념으로 미국을 횡단하고 있는 이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사막지역은 차를 빌려 건너뛰었다고 한다. 크리시는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두 연인이 함께 여행하는데 뭘 한들 재미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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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02년 뒤 미시시피 강을 건너 과거 프랑스령으로 들어가게 되는 나로서는 영어 하나만 써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영어가 요상하다.
강을 황망히 건넌 뒤 16㎞ 가량 옥수수 평야를 지나가니 미주리 주 세인트 매리에서 “여기서부터 산이 시작됩니다”는 안내판만 없을 뿐 딱 부러지게 고개가 시작된다. 오자크 고원(Ozark Plateau)의 입구다. 하늘이 가까워서 조그만 목소리로 기도해도 하나님이 다 들을 수 있다는 곳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꽤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미주리 주에서 가장 높은 산은 높이가 관악산보다 낮은 531m밖에 안 된다. 높지는 않지만 굴곡이 워낙 심해서 바이크 라이더들에게는 ‘자기추동 롤러코스터 언덕(self-propelled rollercoaster hills)’으로 불린다. 뜻은 청룡열차를 타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건데, 문제는 그 열차를 자기 발로 밟아서 몰아야 하기 때문에 금방 녹초가 돼버린다.
외지인에 배타적인 산골마을
이곳 식당에서 스테이크 소스인 A1 소스를 주문하면 못 알아듣다가 ‘오, 아 원 소스’라고 답한다. 날이 여기에서는 ‘dark’해지지(어두워지지) 않고 ‘dork’해진다. 프랑스는 ‘Europe(유럽)’이 아니라 ‘Yurp’에 위치해 있고 결혼하면 ‘ring(반지)’ 대신 ‘rang’을 손가락에 낀다.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여자권투선수로 분한 힐러리 스웡크가 쓰는 말이 꼭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자신들의 말이 예전 영국 왕실에서 쓰던 캉스 앙글리쉬(Kang’s Anglish)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오, 그래?” 하면서 박장대소한다. 미국에는 한국처럼 표준 영어가 따로 지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투리라는 것도 따로 없다. 하지만 대체로 미드웨스트에서 쓰는 말을 표준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것과 다르면, 특히 오자크에서 쓰는 말과 같이 달라도 한참 다르면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인다.
오자크 주민들이 독특한 언어를 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산골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버지니아 주 서부와 켄터키 주 동부에 걸쳐 애팔래치언 산맥에 사는 사람들처럼 옆으로 조금만 더 가면 넓은 들판이 있는데 굳이 산골에 처박혀 사는 사람들이다. 사실 같은 사람들이다. 오자크 주민들의 조상들을 보면 애팔래치언 산맥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이사를 가도 산으로 간다. 씨족사회를 이루고 살아서 사촌간의 결혼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다른 씨족이나 외지인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었다.
지금도 그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것은 바이크 라이더들에 대한 태도로 알 수 있다.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이 지나가는 10개 주 중에서 어느 주가 가장 적대적이냐는 질문에 열이면 예닐곱은 미주리를 꼽는다. 일시적으로나마 같은 미주리 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다. 러셀 데이비스가 맥주캔에 맞은 곳도 미주리다. 시립 공원에서 자고 있는 라이더의 텐트를 향해 동네 청년들이 언덕 위에서 폐타이어를 굴린 곳도 미주리다.
전날 만났던 메노나이트 목사인 팀 슈락은 “우리 보고 욕설을 퍼붓거나 빵빵대는 천치바보가 하루에 3명이 넘으면 그 동네의 인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고 말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메노나이트의, 그것도 다름아닌 점잖은 목사님의 입에서 ‘천치바보’라는 말이 나와서 놀라기는 했지만 내 속이 다 후련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평소에 입에 안 담을 그런 표현을 쓰실까. 슈락 목사는 좋은 기준을 제공했다. 3명은 통계로 치면 허용오차 범위다. 어느 곳을 가든, 자동차를 타든 안 타든, 이상한 녀석들은 있다. 한두 녀석한테 당했다고 해서 그 지역을 싸잡아 욕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켄터키의 개들을 빼고는 하루에 3명 이상의 천치바보를 만나기는 힘들기 때문에 꽤 관대한 기준을 설정했다고 생각했다.
알파벳길 숫자보다 인간적
미주리는 특이하게도 카운티 길은 알파벳으로 표시돼 있다. 길 이름이 그러니까 A나 T, V, Z 그렇다. 숫자로 된 길 이름을 보다가 간단한 알파벳 길 이름을 보고 어떤 작가는 길로서 미성숙한 느낌을 준다고 표현했는데 나는 정반대다. 1123, 674, 568과 같은 숫자 길보다 A길 B길은 외우기도 쉽고 훨씬 인간미가 난다.
미국이 길 이름에 숫자를 도입한 것은 1925년의 일이다. 그 전까지 길 이름에는 링컨 하이웨이와 전사의 길(Warrior’s Path)과 같이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동네를 지나가면 길에 얽힌 사연이 달라져 길 이름이 바뀌곤 해서 혼동을 주기 시작했다. 자동차 시대의 개막과 함께 길 숫자가 폭증하고 사람들이 여행하는 거리가 늘어나자 그 혼란을 견딜 수 없게 됐다. 그러자 미 농무부는 길의 이름들을 숫자로 치환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길 이름은 마을과 함께 살아 숨쉬는 유기체에서 생명 없는 부호로 전락했다.
숫자로 바꾸나 알파벳으로 바꾸나 길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알파벳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런 길을 다니는 미주리 운전자들이 더 공격적이라는 점에서 더 실망스러운지도 모른다. 차 통행이 거의 없는 길에서도 일단 경적부터 울리고 본다. 자전거를 지나갈 때 오히려 가속한다. 스쳐갈 때 서행해서 배려해주는가 보다 생각하는 순간 차창이 열리고 “길에서 꺼지라”는 소리가 나온다. 여성 운전자까지 소리를 지른다. 다른 주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다. 악명 그대로 미주리는 들어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바보천치의 허용치를 훌쩍 넘겨버렸다.
나는 새로운 기준을 정했다. 만약 손을 흔들어주거나 웃어주는 운전자가 있으면 그 숫자만큼 바보천치 운전자의 숫자를 빼기로 했다. 그래서 하루를 결산할 때 +3을 넘지 않으면 그 지역을 나쁘게 보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진 것은 오늘은 가족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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