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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크 고원 지대(Ozark Platuau)에 난 길. 애팔래치언 산맥과 로키 산맥 사이는 그냥 평지라고 생각했던 바이크 라이더들은 오자크 고원을 통과하면서 혀를 내두른다. 높이는 야산 수준인데 굴곡이 심해 심지어는 로키 산맥을 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하는 라이더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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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걸린 길을 6시간 만에 되짚어 갔다
분명히 온 길인데 기억이 없다
자전거 여행은 보지 않고 몸으로 느끼는 것
고기를 굽는 동안 친숙함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왔다
날 떨궈놓은 차가 사라지자 털썩 주저앉았다
지갑속 명함까지 무겁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20 한 짐 바리바리 싸서 오는 것도 큰 일이지만 끌고 다니는 것은 더 큰 일이다. 무겁기도 하지만 간수하기가 쉽지 않다. 짐수레에 노란 색 큰 가방과 배낭을 싣고 자전거 프레임에는 간이 가방을 달았다. 이민가방을 눕혀놓은 크기의 노란 색 가방에 대부분의 짐들을 집어넣었는데 두 끝이 안 다물어져서 번지 코드라고 하는, 양쪽 끝에 갈고리가 달린 고무줄로 단단히 짐수레에 묶어야 했다. 가방 속은 심연이다. 높이가 60㎝밖에 안 되는 그 속으로 짐들을 집어넣으면 공간의 밀도는 물론 심도까지 변한다. 러시아 인형처럼 가방 안에 또 다른 가방이 들어있고 그 가방 안에 주머니가 달려 있고 그 주머니 안에 비닐 봉지가 들어있고 비닐 봉지 안에 상자가 있고… 공간은 세포분열을 계속한다. 어느 날 작심하고 손톱 깎기를 찾기로 했다. 손톱이 길게 자라서 끝이 날카롭게 갈라지고 있었다. 세면도구 가방 안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없다. 열 몇 개의 비닐 봉지를 열어봐도 없다. 가방과 배낭에 달린 작은 주머니들을 뒤졌는데 나오지 않는다. 몇날몇일 수색작업을 한 끝에 자전거 도구를 담아온 비닐 봉지에 다른 도구들과 함께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손톱 깎기를 자전거 도구로 분류했을까. 나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보통은 가방 속에 있는데 못 찾는 건지 아니면 어디다 놔두고 온 건지 확인이 쉽지 않다. 덕분에 짐이 간소해지기 시작한다.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 근처의 모텔에 5ℓ짜리 물통을 놔두고 왔다. (애초에 5ℓ짜리 물통이 왜 필요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샬롯츠빌 부근에서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쿠키 레이디의 바이크 하우스에 짐수레 뒤에 다는 안전용 깃발을 놓고 왔는데 블루 리지 하이웨이에서 만난 두 여성이 차로 가서 찾아다 줬다. 슬리핑 패드가 없어져서 한참 뒤지다 전날 묵은 위더빌 마을회관에 전화하니 그곳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오늘은 일리노이 주 카본데일에 있는 한 모텔에 휴대전화기를 놓고 온 사실을 확인했다. 매일 새로운 곳에 도착할 때마다 좌판을 벌린다. 큰 비닐 봉지를 바닥에 깔고 텐트와 슬리핑 백, 버너, 갈아입을 옷, 비누, 수건 등을 늘어놓으면서 물적 피해를 확인한다. 음, 오늘은 그대로군.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가방 속에 나름대로 차곡차곡 집어넣는데 자전거를 타다 보면 가방 속 짐의 배열이 머릿속에서 흐트러지면서 다시 좌판을 벌리게 된다.
몇날며칠 손톱깎이 수색작전 여행이 좋은 것은 그 숱한 과정을 통해서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낼 뿐 아니라 필요한 것들의 숫자를 줄인다는 점이다. 여행에서 질박한 삶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과작업은 잃어버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의식적으로 버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두 차례의 중요한 정리가 있었다. 첫 번 째는 버지니아 주 래드포드에서 의사 태드 리의 집에 머물 때였다. 여분으로 가져온 자물쇠, 양말, 장갑, 수건과 긴급구조 도구(호루라기, 부싯돌, 나침반, 정수기), 그리고 초 여섯 자루와 책 두 권, 자전거 바퀴 덮개, 불쏘시개를 우편으로 집에 부쳤다. 우체국 직원한테 무게를 확인하니 3.6㎏이다. 이전 전체 짐 무게가 45 ㎏이어서 큰 감량은 아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갑자기 자전거에 가속이 붙는 느낌이었다. 보낸 짐 하나 하나는 소소한 욕구들을 대변하니까 욕구를 줄이면서 마음이 가벼워져 더 빨리 달리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번은 캔터키 주 렉싱턴에서 친구 경보 집에 머물 때였다. 미국 전도와 주별 지도, 여행지에서 받아본 소책자들, 여분의 페달, 초 두 자루. (애초에 왜 이렇게 초를 많이 가져왔는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초뿐 아니라 벌레 쫓는 향이 나는 초까지 종류도 두 가지다. 그러나 초 켤 일이 거의 없는 게 우선 해가 지기 전 잠에 곯아떨어지기 일쑤고 둘째는 독서를 하기에는 초의 불빛이 약했다. 약하지 않았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다. 책을 펼치고 두 쪽을 넘겨본 적이 없다.) 거기에다 강력접착제와, 텐트의 솔기에 바르는 심 실러(Seam Sealer) 두 통. 마지막으로 <오토바이 관리의 선과 예술(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이라는 책을 놓고 망설였다. 로버트 퍼식(Robert Pirsig)이 쓴 이 매력적인 책은 마음의 양식으로 넣어왔다. 이 책마저 보내면 정신적으로 너무 팍팍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부질없는 걱정을 하면서 결국 포기했다. 라이더들은 짐을 줄이기 위해 옷에 붙은 라벨까지도 잘라낸다. 레이서들은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다리에 난 털까지도 깎는다. 나는 지갑 속을 뒤졌다. 지갑에는 쓰지 않은 신용카드를 필두로, 비디오 가게 이용권, 유효기간이 지난 전화카드와 국립공원 입장카드, 차 보험증, 다시 볼 일 없는 사람들의 명함들, 낡은 영수증 등 꺼내놓으면 한 서가가 가득할 만큼 차 있다. 미련의 잔재들을 말끔히 끄집어냈다. 두 번의 대학살에도 살아남은 것은 주로 먹는 것과 관계된 것들이다. 밤에 책읽을 초는 없어도 쌀 없이는 못 산다. 고추장볶음과 김, 즉석 북어국, 요리할 때 쓰는 꼬마 도마 등은 무사했다. 한국 음식에 대한 집착은 실로 강력하다. 그런데 내 짐이 유독 무거운 이유는 번다한 욕심도 욕심이지만 본질적으로 휴대용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휴대용 컴퓨터는 말이 휴대용이지, 피시(PC)의 절반 무게이고 여행을 위해서 구입한 나이콘 디지털 카메라는 망원과 광각 렌즈와 함께 별도의 카메라 가방에 담아서 갖고 다녀야 한다. 이 두 가지는 건드릴 수 없다. 밥 벌이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를 희생해야 하는데 이제 그 때가 왔다. 가져온 쌀은 다 해 먹었고 즉석 식품도 동이 났다. 미국 식료품점에서는 보충도 안 된다. 원래 미주리 주를 지나갈 때 아내가 중간 보급을 해주기로 했는데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집착을 버리기로 작심했다. 여행은 필요한 것의 숫자를 줄인다 그 동안 서쪽을 보고 달려왔다. 서부 해안에서 여행이 끝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접선 장소는 미주리 주 파밍턴(Farmington)에 있는 마을 도서관. 토요일이어서 도서관이 일찍 문닫는 바람에 밖에서 서성거리는데 오후 1시를 조금 넘겨 아내 현숙과 아들 재준이 탄 차가 나타났다. 아내는 얼굴이 좀 안 됐고 숨만 쉬어도 크는 나이인 13살 소년은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다. 내 자전거가 신기한 듯 밀어본다. 타보라고 하니까 싫다고 그대로 놔둔다. 아버지의 세계에 관심은 있지만 깊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눈치다. 가족을 만나는 순간 나는 이방인이 더 이상 아니다. 가족이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그 중심에 서 있으니 낯선 곳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지나온 경험들은 가족의 시각에서 재해석된다. 우리는 함께 차를 타고 일리노이 주 카본데일까지 휴대전화기를 찾으러 갔다. “이런 길로 왔단 말이야?” 아내는 놀라는 표정이다. 편도 1차선. 곳에 따라 차들의 왕래가 빈번하다. “응, 괜찮아” 하면서도 스스로도 조금 놀란다. 마침 그 때 갓길로 가는 바이크 라이더 두 사람을 보았다. 내가 봐도 아슬아슬하게 차들이 그들을 훑고 지나간다. 자세히 보니 영국에서 온 대학생 마크 칠드런과 마크 미첼이다. 멀리 간 줄 알았는데 뒤쳐져 오고 있었던 것. 날씨는 무덥고 습해서 가스실과 같은 뿌연 대기 속을 한 바퀴 한 바퀴 페달 밟아 가는 모습이 안쓰럽다. 물이라도 주고 싶은데 맞은 편 차선이어서 그냥 지나칠 수밖에. 분명 온 길을 되짚어 가는데 전혀 본 기억이 없다.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시 이 길을 따라 카본데일에서 파밍턴으로 돌아올 때도 처음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같은 길을 가도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자동차 여행은 아무래도 건성이다. 자전거로 이틀을 걸려 온 길을 불과 6 시간 만에 주파한다. 그런데 자전거는 속도가 느려서 경치가 오래 더 눈에 머물 것 같은데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무엇을 봤는지, 특별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안 보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행의 진한 느낌이 있다. 자전거는 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여행이다. 넓고 긴 연속성에 잠수하는 경험이지, 단편적인 장면들의 모음이 아니다.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않으면 객체를 인식해낼 수 없다.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을 기억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신과 세계가 미분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전거 여행은 의식적으로 그 구분을 허물고 미분화된 상태로 들어가는 행위다. 나는 그 경치의 일부가 된다. 심해에서 수영하는 것과 똑같다. 해변으로 돌아오면 무엇을 봤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물과 나는 분리할 수 없는 바다의 일부였던 것이다. 가족이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 파밍턴으로 돌아오는 길에 체스터 시립 공원의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아들과 물장난을 치고 싶었고 지난번에 쓴 대로 그 높은 다이빙대에서 한번 뛰어내리고 싶었다. 다이빙보다 세상을 향해 뛰어들어간다는 느낌을 적절하게 상징하는 것은 없다. 올라가는 동안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러운 비디오 카메라의 놀림처럼 세계가 춤춘다. 다이빙 보드의 끝 변에 발가락들을 정렬하고 숨을 가다듬은 뒤 하나 둘 셋 하고 뛰어내리면 더 이상 세계는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어느 새 그 안에 있다. 아내는 비록 수영장 밖에서 기다렸지만 이렇게 가족은 경험을 공유하면서 낯선 곳들을 익숙한 곳으로 개간한다. 여관에서 하루 같이 자면서 마저 짐을 정리했다. 나는 과감했다. 조리도구를 다 포기했고 초로 켜는 랜턴도, 여벌의 싸이클복도, 신발도 포기했다. 이제는 포기한 것보다 살아남은 것을 적는 게 더 빠르다. 휴대용 컴퓨터와 카메라, 텐트, 슬리핑백, 손수건크기의 수건 한 장, 세면도구, 자전거도구, 양말 한 켤레, 샌들, 비옷, 싸이클복, 백넘버 18번의 농구복 한 벌. 농구복으로는 속옷과 겉옷을 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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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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