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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6 20:06 수정 : 2006.01.18 16:21

오자크 고원지대에는 수많은 천연 용천수가 있다. 눈 앞에서 샘물이 솟아올라 강을 이룬다. 앨리 스프링에는 하루 3억ℓ의 맑은 물이 솟아오른다. 앨리 스프링 옆에는 그 물을 동력으로 이용한 방앗간과 대장간이 있었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엘링턴까지 100km를 한번밖에 안 쉬었다 종아리 근육이 버섯처럼 돋아난다
팔팔 끓는 인간 엔진이 탄수화물을 무섭게 써버린뒤 복부 기름도 갖다 쓴다
라이더로서의 체질이 갖춰져 가고 있다
한증막 더위를 뚫고 소문난 모텔로 직행했다
“한국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21)

미주리 주 파밍턴에서 엘링턴까지 가는 데 100㎞, 7시간이 걸렸다. 아침과 점심을 사먹기 위해 주유소에 멈춘 것을 빼고는 딱 한 번 쉬고 갔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50분에 10분 쉬는 간격이었는데 이제는 두 시간을 안 쉬고 갈 수 있다.

클리트를 부착한 사이클화의 효과가 컸다. 미는 힘 외에 끌어당기는 힘을 사용하면서 특정근육만 혹사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종아리에 근육이 버섯처럼 돋아난다. 잠을 잘 자는 요령은 바닥에 닿는 몸의 표면적을 최대한 넓히는 것인데 다리에 근육이 울룩불룩 튀어나와 충분히 몸을 바닥에 붙일 수 없다. 물론 근육이 아니라 그냥 살이 딱딱하게 부은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짐을 줄인 효과가 더 컸다. 이중 감량이 일어났다. 짐무게와 몸무게가 줄었다. 배가 홀쭉하다. 자전거를 타면 대체로 한 시간에 350 칼로리를 소비한다고 한다. 짐수레를 끌고 오르막을 가면 소비량은 더욱 늘어난다. 정확히 잴 수 없지만 대체로 500 칼로리라고 하고 하루에 여덟 시간을 타면 자전거 타는 것만으로 4000 칼로리를 쓴다. 그래서 아무리 먹어도 지나치지 않는다(You can’t eat enough.)는, 성문종합영어에서 나오는, enough와 부정문을 사용한 강조용법이 입에서 튀어나온다.

한번 인간 엔진이 타기 시작하면 팔팔 끓는 난로와 같아서 안에다 무엇을 집어넣어도 태워버린다. 장거리 라이더들을 위한 적절한 다이어트는 탄수화물 65%, 단백질 20%, 지방 10%, 나머지 5%는 선택사항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비율을 의식해서 먹고 마시는 라이더를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대체로 즉시 연료로 전환할 수 있는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라는 말로 받아들인다.

몸속에서 신문지처럼 타버리는 식빵


쌀이나 밀가루에 많은 탄수화물은 몸에 들어와 글루코스로 바뀌는데 이게 석유를 정제한 가솔린과 같은 연료다. 연료통인 몸은 보통 두세 시간 운동량에 필요한 글루코스만을 비축할 수 있다. 그래서 핏속에 글루코스가 많아지면 인슐린이 분비돼 남는 글루코스를 글리코겐으로 바꾸어 간이나 근육에 저장한다. 이게 자동차와 사람이 다른 점이다. 자동차는 ‘만땅’으로 채우면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데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우겨 넣는 버릇이 있다. ‘황제 다이어트’의 창시자 로버트 애킨스(Robert Atkins)가 탄수화물 섭취를 극단적으로 경계한 것은 남는 글루코스가 글리코겐뿐 아니라 체지방의 형태로 저장돼 체중을 증가시킨다고 보기 때문. 차체가 계속 커지고 움직이는데 연료만 더 든다.

이 이론에는 적지 않은 반론이 있지만 라이더들에게는 무의미한 논쟁이다.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무섭게 소비해버리기 때문이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핏속 글루코스가 줄어들면 간이나 근육에 있는 글리코겐을 글루코스로 바꾸어 연료로 쓰고 그것도 부족하면 복부에 비축해놓은 기름을 갖다 써버린다. 이 보급과정에 문제가 생겨 항상 핏속에 글루코스가 많은 사람이 당뇨병환자고 운동을 하면 글루코스를 소진하기 때문에 당뇨병에 걸릴 가능성이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라이더들의 주식은 땅콩버터 젤리 샌드위치다. 탄수화물이 풍부하고 만들기도 쉽다. 하지만 나는 입천장에 달라붙은 땅콩버터를 혀로 떼어낼 수 없어 손가락을 집어넣어야 하는 게 싫다. 그래서 나중에 개발한 방법인데 식빵에 꿀을 발라먹는 것이다. 부드럽게 잘 넘어가고 달아서 맛도 있다. 미국에서는 서울우유 병만한 꿀 한 통이 7, 8천원밖에 안 하고 24쪽짜리 식빵 한 줄도 2천원 안팎이다. 조리 시간은 불과 몇 초. 문제는 팔팔 끓는 몸 속에 식빵을 집어넣으면 신문지처럼 타버린다는 것.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 한번에 식빵 열 쪽이 들어간다. 그래서 뭉근히 오래 탈 수 있는 장작을 찾게 되는데 그게 스테이크다. 이걸 속에 집어넣으면 비교적 오래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매일 상복할 수는 없지만 가끔은 넣어준다. 성장하는 근육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몸이라는 건물에 골재와 철근격인 단백질을 보충해줘야 한다.

라이더로서의 체질을 갖춰가고 이중 감량이 일어나면서 또 다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됐다. 내 자전거는 오르막길에서 앞기어를 저단으로 변속할 수 없다. 그래서 애팔래치언 산맥을 통과할 때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손으로 체인을 저단으로 바꿨다는 얘기는 이미 한 바 있다. 이제는 앞 기어를 저단으로 바꿀 일이 없어졌다. 내 자전거는 모두 21단이다. 앞 기어가 고단 중단 저단 3단이고 뒷기어가 7단이다. 이제는 모든 기어를 다 쓸 필요가 없다. 앞 기어를 고단에 놓고도 웬만한 고갯길을 올라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다리에 걸리는 부하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다.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더 높은 부하를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전에는 중단으로 갈 길을 고단으로 간다. 힘들다. 대신 속도는 빨라진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엘링턴은 인구 1천명의 소도시. 가는 길에는 광산과 벌목 트럭들이 손 바닥 하나 차이로 스치고 지나간다. 그 외에는 도전할 만한 고개들이 있고 그에 상응하는 상쾌한 내리막도 있는 좋은 라이딩 코스였다. 마을 자체는 유령마을(ghost town)으로 변해가는 미국 농촌마을의 또 다른 전형이었다. 메인 스트레이트라고 하는 중심가의 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마을 전체에 열어놓은 식당이 하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주유소에서 미리 조리해서 파는 간이 피자로 저녁을 때워야 했다.

기어 변속 않고도 오르막길 거뜬

야영하러 간 시립공원도 외지고 왠지 어두운 느낌이 들어 마을로 돌아와 여관에 묵었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나가보니 다시 마크 미첼과 마크 칠드런이었다. 밖에 세워둔 내 자전거를 보고 찾아온 것. 그들은 자전거나 체력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나은데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속도로 여행하고 있다. 이유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갈 일정을 너무 여유 있게 잡아놔서 서둘러 갈 일이 없었던 것. 샌프란시스코는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타고 가다 콜로라도 주 푸에블로에서 북쪽으로 우회전하지 않고 웨스턴 익스프레스 트레일(Western Express Trail)을 타고 네바다 사막을 건너 직진하는 코스. 그렇게 횡단하면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보다 1600㎞, 기간으로는 20여일 정도 단축해서 미국을 횡단할 수 있다.

장거리 라이딩이 처음인 탓에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과소 평가하고 일정을 짰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로 횡단해 종착지인 오리건 주의 플로렌스에 도착한 뒤 거기서 샌프란시스코로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다혈질의 미첼은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럽게 천천히 가는 바람에 지금까지 라이딩으로 지친 적이 없었다”면서 완전히 탈진하는 경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뜻은 조금 무리가 가더라도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칠드런은 아직도 통증이 안 가신다며 무릎을 주무르고 있다. 발을 뻗는데 가늘고 흰 다리가 보였다. 그는 자기는 매일 피로감을 느낀다면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로 돌아가는 것에 간접적으로 반대했다.

나로서는 모처럼 페이스가 비슷한 라이더들을 만난 김에 더 오래 같이 가고 싶어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 선상에 있는 옐로스톤과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이 압권이라고 미끼를 던졌다. 미첼은 그러냐며 마음이 더 동하는 눈치였고 칠드런은 아무 얘기를 안 했다. 미첼은 나중에 혹시 진로를 그 쪽으로 바꿀지도 모르니 트레일 지도를 복사하자고 해서 지도를 빌려줬다. 그런데 정작 복사하러 가는 사람은 칠드런이다.

그들은 ‘캉스 앵글리스(Kang’s Anglish)’를 쓰는 오자크 고원 지대에서 잘 대접 받고 있었다. 내게는 여관비를 한 푼도 안 깎아주던 여관 주인이 그들에게는 선뜻 팩스 머신을 복사기로 쓰라고 빌려줬다. 사실 오자크뿐 아니다. 그들은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집 마당에 야영해도 되느냐고 당연히 영국 액센트로 물으면 열중 아홉은 그러라고 마당 또는 방을 내준다고 했다. 나로 비유하자면 재미교포 집들을 다니면서 마당을 빌릴 수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두 사람 중에서 미첼이 나와 비슷했다. 미첼은 장갑에다 속도계로 쓰는 컴퓨터도 잃어버렸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항상 전진하는 성격이다. 반면 칠드런은 상대방을 많이 배려하고 인내심이 많지만 굼뜨다. 두 사람이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이상적인 팀 동료가 될지 아니면 물과 기름과 같은 잘못된 만남으로 귀착될지….

시간 조절을 위해 하루 더 엘링턴에 머문다는 그들을 뒤로 하고 떠났다. 오자크 국립 공원(Ozark National Scenic Riverways)을 통과하는 106번 길은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이 공원을 가로지르는 오자크 트레일은 며칠 동안 등산을 해도 인적을 구경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숲 속을 지나간다. 공원에는 커런트(Current)와 잭스 포크(Jacks Fork)라는 두 강이 흐르는데 미국에서 가장 청정한 강으로 분류된다. 이유는 18회에 쓴 것처럼 지하에서 솟아나오는 용천수가 이곳에서 강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앨리 스프링(Alley Spring)은 그 중 하나로 하루에 3억ℓ의 청정수를 뿜어낸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 목이 쉬었다

에미넌스(Eminence)를 거쳐 앨리 스프링으로 가는 길은 가팔라서 앞 기어를 중단으로 내려야 할 구간이 있었지만 환장할 정도로 험하지는 않았다. 힘든 것은 한증막과 같은 더위. 섭씨 38도. 너무 땀을 많이 흘려 목이 쉬고 귀가 멍멍했다. 오전 7시에서 출발, 9시간을 달려 오후 4시 무렵 휴스턴에 도착했을 때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바로 휴스턴 모텔로 직행했다. 동진하는 라이더들로부터 싸면서도 깨끗한 모텔이라고 소개를 받았다.

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모텔 사무실로 들어서자 동양인 중년의 남자가 “한국 사람이죠?” 라고 한국말로 물어와 깜짝 놀랐다. 여행 도중 한국사람을 우연히 만난 건 애팔래치언 하이커 조안 박에 이어 두 번째. 찬 물을 청하자 부인이 얼음을 담아서 가져왔다. 기다리는 동안 냉장고에서 스프라이트를 꺼내서 마셨다. 마치 내 집에 온 듯 행동하고 있다. 모텔 주인은 최철환씨. 뉴욕에서 32년 동안 사업하다가 노후를 조용한 곳에서 보내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경매사이트인 이베이를 통해 모텔을 매입했다고 한다. 자녀 두 사람은 뉴욕 로펌의 변호사와, 제너럴 일렉트릭스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이 모텔 건너편에 있는 중국 부페식당 스프링 가든도 교포인 주영업씨가 경영하고 있었다. 인구 2천명의 소도시에서 한국인 모텔과 식당이 있다. 한국인의 이민 경로가 이제는 모세혈관처럼 세밀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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