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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7 19:57 수정 : 2006.01.18 16:20

캔자스 주 유레카에 있는 한 모텔에서 바라본 서쪽 하늘. 금방 먹빛으로 변했다.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24)


가히 무한한 대지다. 길은 지평선으로 사라진다. 아니 하늘로 잇닿는다. 수막현상 때문에 길 끝이 하늘빛을 머금고 있다. 저 끝까지 가면 하늘로 올라가지 않을까. 하늘을 향해 달린다. 캔자스 대평원은 공간을 깨끗이 단순화한다. 하늘과 대지. 그 사이를 내가 간다. 지도에서도, 현실에서도 길은 굴곡 없이 일직선이다. 여기서는 길을 잃어버리기가 더 어렵다. 쭉쭉 직선으로 달려나가 캔자스 주에 들어온 첫날은 채누트(Chanute)라는 곳에 멈췄다. 8시간50분만에 144㎞를 달렸다. 또다시 하루 라이딩으로는 최장 거리 기록을 갱신했다.

이런 페이스라면 캔자스는 단숨에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바람만 아니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쪽 하늘이 심상치 않다. 검은 띠가 보인다. 또다시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하루 라이딩 114km 또 신기록
캔자스를 단숨에 건널 것 같다
바람만 아니라면…
옆바람은 바퀴살을 건드리며
슬픈 비파 소리를 냈다
2년 동안 잊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로 여행하는 사람들 중에서 오리건 주에서 출발해 버지니아 주에 도착하는 동진 라이더들이 많은 것은 바로 바람 때문이다. 미 대륙에서 지배적인 바람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서풍이다. 뒤에서 바람이 불어주면 여행이 한결 수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맞바람을 받고 서진하는 이유는 동진하면 마치 역사책을 뒤에서부터 읽는듯한 느낌일 것 같아서였다. 유럽인들이 미 대륙을 찾아와 정복하고 식민하는 과정을 뒤밟아보고 싶었다.

지평선…하늘 향해 달린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바람의 방향에 대해서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놀라운 것은 동진하는 라이더들도 바람의 방향에 대해 고마워하기는커녕 때로는 나처럼 불평한다는 사실이었다. 바람은 한 방향으로 부는데 정반대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바람에 대해 불평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 물론 남풍이나 북풍이 불어서 똑같이 옆바람을 받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보통은 뒤바람이 웬만큼 불어줘서는 사실 그 후광을 느끼기 어렵다. 만약 시속 16㎞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같은 방향의 바람이 시속 16㎞로 분다면 바람의 영향을 느낄 수 없다.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만약 페달을 세차게 밟아 시속 20㎞로 달리면 시속 16㎞로 움직이는 공기보다 빨라서 공기의 저항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뒤바람인데도 맞바람이 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럴 때는 반대로 달려보면 그 동안 바람의 음덕을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그렇게 뒤바람이 불어줘서 남보다 빨리 달리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자유경쟁이 아름답다느니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캔자스(Kansas)라는 지명은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이름인 칸자(Kansa) 또는 커(Kaw)에서 따왔는데 남풍의 사람들(people of the south wind)이라는 뜻이다. 이름의 기원대로 캔자스에서는 남쪽, 또는 남서쪽에서 바람이 주로 불어왔다. 옆바람이다. 세게 불어서 때로는 자전거를 길 밖으로 밀어낸다. 내 자전거는 차체가 단단한 쇠로 돼 있고 크기가 작아서 바람에는 잘 견디는 편이다. 대신 바퀴살에서 슬픈 비파소리가 난다. 맞바람보다 옆바람이 불 때 소리가 더 요란해져서 마치 계속 사이렌을 울리고 가는 것 같다. 핸들의 방향을 바꾸면 소리가 달라진다. 이렇게 해서 음의 장단고저와 음색을 조절할 수 있다면 나는 자전 거문고의 연주자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실 자전거는 훌륭한 반주 악기다. 언제부턴가 생각이 멈추고 노래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노래를 부를 때 고질적인 문제는 박자 맞추기. 자전거는 그 문제를 해결해준다. 만약 노래가 4/4 박자면 강·약·중강·약으로 페닯을 밟는다. 6/8박자라면 페달을 강·약·약 중강·약·약으로 밟는다. 단조로운 대평원을 건너는 게 얼마나 지루하길래 별 짓을 다하는군. 그렇게 생각해도 할 수 없다. 노래 부르는 게 좋다. 인적이 없는 대평원은 광활한 노래방으로 변한다.

지난 2년은 노래 없는 삶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가 노래 부를 때 춤을 춘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노래방이라는 데가 드물다. 무엇보다 남의 말로 일하고 공부하느라 노래 부를 여유가 없는 생활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노래를 흥얼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이 다시 말을 시작한 순간 같은 것이었는데 정작 놀란 것은 선곡에 있었다. 그 노래는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노래도 아니고, 불러본 적도 없고, 가사도 끝까지 모르는 노랜데, 이 이역만리에서, 그것도 아무 관련 없는 맥락에서 몇 소절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쓰다가 쓰다가 틀리면/지우개로 지워야 하니까.”

전영록씨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내 입에서 이 노래가 나왔다는 사실을 지우개로 지우고 싶다. 누구는 키플링(Kipling)의 시 ‘동서의 발라드(Ballad of East and West)’를 외우면서 미국을 횡단했는데 그 정도의 교양은 없더라도….

멋진 이 시를 외운 이도 처음 이 시를 기억에서 복원하는데 8㎞를 달려야 했다고 한다. 내 레퍼토리는 지난 2년의 가무 공백에 앞서 노래방 기계가 다 지워버렸다. 가사가 화면에 흐르지 않으면 노래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날이 오면>을 부르고 싶었다.

캔자스 주의 주화는 해바라기다. 생각보다 많이 볼 수는 없는 해바라기 들판이었다
핸들 방향따라 바람 멜로디

“그날이 오면/그날이 오면/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한 줄기 강물로 흘러/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저 넓은 평화의 바다에/ 뜨거운 눈물 넘치는 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아 피맺힌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이 노래의 치명적인 결함은(나처럼 기억력이 안 좋은 사람에게 말이다)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가 후렴에 나오는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과 가사가 비슷하다는 점. 후렴의 ‘그날이 오면’이 끝나고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로 들어가야 할 때 내 입에서는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가 나왔다. 그러니 후렴으로 계속 못 가고 노래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버린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에 도돌이표가 박혀있는 듯했다.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엉켜버린 기억의 실타래는 내 힘으로 풀리지 않았다.

다마스커스에서 만난 한 애팔래치언 트레일 종주 하이커는 빌리 조엘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걸었는데 2절이 생각 안 나 불면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을에 들렀을 때 가게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바로 그 곡이었다. 그는 배낭을 던져놓고 주저 앉아 정신 없이 받아 적고 난 뒤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고 한다.

<그날이 오면>이 혹시 지하철 2호선 시청역 레코드가게라면 모를까 여기 마을 가게에서 흘러나올 리 만무하다. 할 수 없이 인터넷 접속이 되는 마을 도서관에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제발 부탁인데 이 가사 좀 띄워주세요. 미쳐버릴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그렇게 쓰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절박한 기분이었다. 이용재 형이 자비롭게도 가사를 띄워줬다.

노찾사가 부른 이 노래는 80년대의 애창곡. 어깨를 걸고 그 노래를 같이 부를 때는 군사정권이 끝나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꽃피는 날을 그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이 왔을까. 내게 ‘그날’은 오지 않았다. 10개 주 6700㎞를 달려 서부 해안에 자전거의 앞 바퀴를 담그는 그 날까지 이 노래를 부를 작정이다.

캔자스에 부는 바람은 대평원을 오르막길로 바꿔버린다. 같은 평지인데 바람이 세지면서 자전거 속도가 시속 25㎞에서 10㎞로 떨어졌다. 흔히들 대평원을 거대한 러닝 머신이라고 말하곤 한다. 러닝 머신에서는 아무리 뛰거나 걸어도 제자리다. 나는 폭풍이 만드는 계곡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미주리 주 골든 시티에서 피한 폭풍에 이어 또 다른 폭풍이 기둥처럼 몰려 오고 있는 그 사이에 있다. 바람이 옆바람에서 맞바람으로 바뀌면서 고개를 들 수 없다. 고개를 들면 사정없이 바람이 따귀를 때린다.

“후렴구 알려달라” 인터넷 호소

사실 이번 여행에서 여러 가지 장비를 부실하게 준비해왔지만 단 한가지 내세울 게 있다면 핸들 바에 단 유바(U-bar)다. 막대기 두 개를 유자 모양으로 붙여놓은 것인데 핸들 바에 설치한 받침대에 두 팔꿈치를 얹고 두 손으로 두 막대기를 붙잡으면 자전거 핸들 바에 상체를 기댈 수 있다. 상체와 하체는 90도의 각도를 이루면서 바람의 저항을 줄인다. 바람이 아니더라도 이 유바에 기대어 상체의 피로를 줄일 수 있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교양없이 왜 이 노래가?
‘그날이 오면’으로 다시! 가사가 막힌다, 돌아버리겠다
계속 도돌이표…맞바람은 인정없이 따귀를 갈려댄다

맞바람이 불 때의 주행 방법을 구분동작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머리를 쳐들지 않고 송곳처럼 앞으로 뻗어서 바람의 벽에 구멍을 낸다. 그 다음 유바에 상체를 기대서 몸을 유선형으로 만든 뒤 그 구멍으로 상체부터 쑥 빠져나간다. 상체가 빠져나가면서 구멍이 넓어지고 그 구멍 속으로 페달을 밟아 하체를 집어넣는다. 이 때 하체는 접영의 발차기처럼 순간적으로 구멍을 향해 솟구친다. 연속동작으로 설명하면 고개를 치켜세우지 않고 마구 페달을 밟는다는 것이다.

100㎞ 가량 달려 유레카(Eureka)에 도착했을 때 서쪽 하늘은 검정이 장악했다. 오늘도 할 수 없이 야영을 포기하고 모텔에 묵어야 했다. 방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니 한 기자가 캔자스 주 서쪽에는 테니스 공만한 우박이 떨어지고 있다고 급박한 소리로 보도했다. 폭풍이 동쪽으로 시속 100㎞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그 일기예보를 들은 지 한 시간 뒤에는 온 하늘이 먹빛이었다.

밖에 나와 캔자스 특유의 폭풍이 몰아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데 싸이클복을 입고 있는 한 사내가 여관주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역시 혼자서 서진하고 있는 미국 횡단 라이더. 그의 이름이 낯익다.

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데이비드. 골든 시티에 있는 호스텔의 로그북에 53살이라고 나이를 밝히면서 이번 여행이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일들 중의 하나라고 적은 그 사람이다. 비바람이 세차게 처마지붕 안으로 들쳐 방으로 대피할 때 그는 자신의 방으로 나를 초대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완벽한 여행 동반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혼자고, 남자고, 그리고 묶인 일정 없이 여행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문제는 자전거를 타는 속도인데 서로 호흡을 맞출 수 있는지 내일 여행을 같이 해보기로 했다. 아침 7시에 같이 출발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폭풍우가 가져다 준 특별한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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