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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8 19:53 수정 : 2006.01.18 16:16

캔터키 주에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출생지에 가면 링컨의 생가를 사당처럼 모신다. 하지만 진짜 생가가 아니라 나중에 지은 모조품이다.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30)


캔자스 주 스콧 시티에서 이번 여행의 여섯 번째 주인 콜로라도 주로 넘어가는 길은 딱 하나였다. 주도인 96번. 지나가는 차를 봐도 반가운,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에서 가장 외로운 길 중 하나다.

오늘은 여러 가지 기록을 세웠다. 170㎞를 달려 하루에 가장 멀리 갔다. 마일로 100 마일(160㎞) 이상 하루에 달리면 ‘센추리(century)’라고 부른다. 역시 알아두면 자전거여행에 대해 뭔가 아는 사람으로 대접받는 자전거계의 속어다. 미국을 책읽기로 비유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무려 지도를 4쪽반이나 넘겼다. 그리고 오전 6시 반에 출발해 11시간 반을 달려 오후 6시가 아니고 5시에 도착했다. 중부시간대에서 마운튼 시간대로 진입, 다시 한 시간을 번 것이다.

모래바람 안고 콜로라도에 진입한다
주 경계 통과 시간변경선 통과
하루 100마일 초과 ‘센추리’ 달성
오늘의 기록을 치렁치렁 달았다

그 시간대가 같은 캔자스 주안의 위치타 카운티에서 그릴리 카운티로 가면 바뀐다. 뜻밖에 이 외진 곳에서 언론인 호레이스 그릴리(Horace Greeley)에 대한 존경심의 흔적을 발견한다. 카운티 이름만 그의 성을 딴 게 아니라 그의 이름인 호레이스를 딴 마을도 있고 그가 창간하고 오랫동안 편집인으로 일한 <뉴욕 트리뷴>의 이름을 딴 마을 트리뷴(Tribune)도 지났다. 그의 절친한 친구 별명이라고 하는 화이트로(Whitelaw)를 이름으로 딴 마을도 그릴리 카운티 안에 있다.

그는 19세기 중반 일자리를 못 찾아 거리를 방황하던 뉴욕의 젊은이들에게 “젊은이들이여, 서부로 가라(Go west, young man)”고 촉구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일하는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필봉을 휘둘렀다. 그가 남북전쟁 도중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교환한 서신은 링컨 대통령의 노예제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중요한 문서로 간주된다.

링컨 가짜 생가 위대함 미화

남북전쟁이 시작된 지 1년 반쯤 뒤인 1862년 미 의회는 북군에 가담한 흑인들을 노예신분에서 해방시켜주기로 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북군인 연방군은 이 법을 집행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릴리는 링컨에게 법 집행을 촉구하면서 “당신은 괴이하게도 그리고 불길하게도 법 집행을 태만히 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하는 편지를 보냈다. 링컨은 답신에서 “이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노예제를 지키거나 없애려는 게 아니고 연방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해 노예해방이 부차적인 목적임을 언명했다. 그리고 1년 뒤인 1863년 그는 노예해방선언을 했는데 그 내용은 연방군에 맞서 싸우는 지역, 그러니까 남부에서의 노예를 해방하는 것이었고 연방군 쪽에 있는 노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그러니 남부군이었던 쪽에서는 “자기들 노예나 먼저 해방하시지, 그래”하면서 링컨을 비웃을 만하다.

링컨의 사후 미국 역사는 그를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미화하기 위해 쓰여진다. 이번 여행에서 국립 사적지로 지정된 캔터키 주의 링컨 출생지도 들렀는데 사당과 같은 건물 안에 오두막집을 정성스럽게 보존하고 있어서 그게 그의 생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만든 가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가인 것처럼 떠받들어지고 사람들은 이 집을 보려고 사방에서 모여든다.

그릴리는 남북전쟁에 앞서 1846년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에서도 미국을 맹렬히 비난하는 사설을 쓴 용기 있는 언론인이었다. 이 전쟁은 미국이 멕시코가 관할하던 캘리포니아와 뉴 멕시코 주 등을 빼앗으려는 사실상 정복전쟁이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전쟁이었는데 그는 “폐허가 된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보면서 무력에 의한 제국 확대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교훈이 되고 있지 않느냐”고 일갈했다.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했던 그가 창간한 신문은 묘하게도 1966년 인쇄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결정적 타격을 입고 문을 닫았다.

이제 캔자스가 끝이다. 캔자스는 마을마다 그레인 엘리베이터(grain elevator)라고 불리는 큰 곡식창고가 인상적이었다. 시야를 가리는 게 없는 평평한 대지여서 20, 30㎞ 떨어진 곳에서도 곡식창고가 보인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 달린 뒤 다시 고개를 들면 곡식창고는 여전히 머나먼 곳에 있다. 나는 그 곡식창고를 등대 삼아 달렸다. 자전거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서 돛단배와 같다. 화물차가 지나가면 그 후폭풍에 큰 배의 파도에 밀리는 돛단배처럼 자전거가 휘청거린다. 화물차는 물보라와 같은 먼지를 내 뺨에 뿌리고 간다. 때로는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뒤로 미끄러지는 것 같지만 곡식창고가 보이는 한 나는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페달을 밟으면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한다.

만약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서 여기까지 물에 잠긴다면 그 곡식창고를 실제 등대로 쓸 수도 있겠다 싶다. 나중에 고고학자들은 항해하던 선체를 찾기 위해 이 넓은 바다를 헤맬지도 모른다. 배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 곡식창고가 외침을 탐지하기 위해 곳곳에 세운 망루라고 생각할지도….

캔자스 주에는 마을이 있는 곳에 반드시 그레인 엘리베이터라고 불리는 큰 곡식창고가 있다. 멀리서 보면 꼭 등대 같아 보인다.
곡식창고 등대…자전거 돛단배

여행은 매일 이름 모를 항구에 도착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낯선 거리를 걸으면 오랜 항해 끝에 부두에 내린 선원이 된 듯하다. 선원은 정복자가 아니라 마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찬 이방인이다. 내일이면 떠날 나그네라는 점에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다는 점에서, 호기심만으로 세상을 본다는 점에서,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다.

그러나 꼭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하기는 어렵다. 오늘 콜로라도 주에 들어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또 하나의 마을 이름을 지나쳤다. 지도에 우체국 하나만 달랑 표시된 작은 마을 쉬빙턴(Chivington). 1864년 백인 민병대를 이끌고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학살한 존 쉬빙턴 대령의 이름에서 따왔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지명이다.

쉬빙턴 조금 못 미쳐 나는 빅 샌디 크릭이라는 바짝 마른 개울을 건넜다. 바로 나무 그늘이 나와 물을 마시면서 151년 전인 1864년 이곳에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쉐이언(Cheyenne)과 아라파호(Arapaho) 부족의 인디언 500명은 콜로라도 주 정부에 투항해 이곳에 임시로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쉬빙턴 대령은 손쉽게 인디언을 무찌를 기회라고 여기고 민병대를 이끌고 야음을 틈타 이들을 포위한 뒤 대포를 무차별 발사했다. 무방비에 당한 세이언의 추장 ‘검은 주전자(Black Kettle)’는 미 성조기를, 항복을 표시하는 흰 깃발과 함께 들고 나왔다. 오인 공격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그 전에 미 기병대가 일러줬다. 하지만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콜로라도 민병대들은 단지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말에 묶고 다니기 위해 얼굴 가죽을 벗기고 신체부위를 잘라냈다.

인디언들은 저항해도, 투항해도, 때로는 백인들의 용병이 돼서 같은 인디언들을 죽이는데 앞장을 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백인들에게 인디언 문제의 최종적 해결책은 공존이 아니라 완전한 격리이기 때문이다. 보호구역으로 밀어넣든, 죽이든간에. 추장 검은 주전자는 미 민병대의 기만적인 공격을 받아 150명의 부족 식구들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백인들에 협조적이었다가 몇 년 뒤 제7기병대에 의해 살해됐다. 기구한 삶이다.

샌디 크릭을 건너고 쉬빙턴을 지나가는 동안 이 학살의 현장으로 안내해주는 어떤 표지판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학살자의 이름만 마을의 이름으로 당당히 지도에 표시돼 있는 게 놀라웠다. 근처에 있는 저수지의 이름도 쉬빙턴이었다. 이렇게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도 있는가.

하루 170km…지도를 4쪽반이나 넘겼다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민가가 거의 없는 96번 길가에서 동진하는 로렐과 마이크 시핵(Laurel & Mike Cihak) 부부를 만나 외로움을 잠시 잊었다. 로렐은 49살로 미시간 주의 고교 수학교사. 남편인 마이크는 62살로 퇴직 교사인데 벌써 미국을 두 차례 횡단한 경력이 있다. 두 사람은 6월12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웨스턴 익스프레스 트레일을 타고 오다가 콜로라도 주 푸에블로(Pueblo)에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로 바꿔 타고 오고 있는 중. 이렇게 직선으로 미국을 횡단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혼자 자전거를 타면서 아직도 외로움을 털어버리지 못했다고 말하니까 로렐은 그렇게 외로우면 자전거를 돌려서 자기들과 같이 동쪽으로 가자고 엄청난 농담을 했다.

시빙턴이란 마을은 인디언 학살자
시빙턴에서 따왔다
이런 역사 기억도 있는가
도저히 이해 안되는 지명이다

같은 대평원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캔자스는 푸른 평원인데 콜로라도는 사막과 같은 척박한 대지다. 오늘 정박할 ‘항구’인 콜로라도 주 이즈(Eads)는 모래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먼지 속에 뒤덮여 있다. 어느 새 해발고도가 1300m라는 점에서 콜로라도는 캔자스와 높이가 다르다. 그 동안 평지만 내내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의식하지 못한 채 점진적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캔자스에서는 끝이 안 보이는 지평선이라고 한다면 콜로라도에서는 지평선이 솟아올라 있다.

땅이 척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즈 동쪽 슈거 시티(Sugar City) 근처에는 메리단 호와 헨리 호 등 큰 호수가 두 곳이 있어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 얘기가, 인근 도시인 콜로라도 스프링스(Colorado Springs)에서 식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호수를 매입하는 바람에 주민들은 농업용수를 구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농사를 포기하자 푸르던 대지는 갈색 사막으로 바뀌어가고 바람이 불면 먼지기둥이 일어난다.

사립교도소를 여관방처럼

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척박한 땅답게 이 곳에는 감옥이 두 군데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주에서 운영하고 다른 하나는 사립 교도소라고 한다. 사립 교도소라. 교도소를 짓는 속도가 사람 가두는 속도를 못 좇아가 교도소도 빌려야 할 판이다. 민간업자는 마치 여관방처럼 감방을 내주고 돈을 번다고 한다. 희한한 사회다.

동진하는 라이더들로부터 푸에블로로 가기 전 오드웨이(Ordway)에 있는 질리언(Gillian)의 집에서 일박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밥도 먹여주고 샤워도 할 수 있고 공짜로 인터넷까지 쓸 수 있는 곳이라는 것. 당연히 집주소를 들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교도관이었다. 이전에 쓰던 말로 하면 여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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