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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출신 질리언은 원래 오랫동안 항해하면서 살아온 뱃사람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미국인과 사랑에 빠져 미국의 외진 콜로라도 주 오드웨이까지 흘러들어와 교도관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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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31)
미국 횡단하는 바이크 라이더들이 나처럼 혼자 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다양한 조합을 이룬 2인조들이라는 사실을 오늘도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57살의 지프(Geoff)와 48살의 패스티(Pasty) 부부. 이글거리는 태양 속을 달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검게 탄 피부가 빛난다. 지프는 퀸즈랜드에서 여러 사람을 두고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했는데 웨스턴 익스프레스 트레일을 타고 네바다 사막을 건너 바로 오는 보통의 예와는 달리 서부 해안을 타고 북상, 오리건 주 아스토리아(Astoria)까지 가서 거기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타고 오고 있는 중. 내가 여행을 출발한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까지 간 뒤 거기서 노스 캐롤라이나 주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 여행을 위해 6개월간 휴가를 냈다고 하는데 미국을 긴 호흡으로 천천히 음미하면서 횡단하고 있다. 두 번 째 조는 엘리자베스 케네디(Elizabeth Kennedy)와 애미 밴디버(Amy Vandiver). 학생이거나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미국 여성들이다. 오리건 주 유진(Eugene)에서 출발. 지금까지 나흘만 쉬고 매일 달렸다고 한다. 여성이어서 더 힘들었던 점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받아서 좋았다고 한다. 동부 해안의 사우스 캐롤라니아 주까지 갈 예정이라고 하니 역시 긴 여정이다. 오드웨이 교도소 딸린 집에서 묵었다
주인장은 183cm 건장한 여성 교도관
갱단 재소자들 잦은 폭동에 스트레스
라이더가 오면 좋은 기운을 느낀다 세 번 째 조는 로저와 조리 메스먼(Roger & Jorie Messman). 나는 처음엔 중년의 남자와 묘령의 아가씨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와서 좀 수상쩍은 관계로 생각했는데 아버지와 딸이었다. 로저는 54살이고 조리는 21살. 고참 라이더인 로저는 조리가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가까이 할 기회를 준 결과 오늘처럼 대학생인 딸과 함께 장거리 여행을 하는 복을 누리고 있다.
아름다운 부녀 동반 라이딩 그들은 복잡하게 미국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시카고에서 출발,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까지 간 뒤 거기서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웨스턴 익스프레스 트레일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캘리포니아 주를 통과했다. 네바다 사막은 차를 빌려서 건너 콜로라도 주 푸에블로까지 온 뒤 다시 자전거를 타고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타라 동진하고 있는 중. 그들은 캔자스 주 알렉산더에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을 벗어나 아이오와 주를 가로질러 시카고로 돌아갈 예정. 그들은 시카고에서 요크타운으로 동남진할 때 버지니아 주에서 서진하는 팀 슈락 메노나이트 목사 일행을 마주쳤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어제 동진하다가 서진하는 그들과 재회했다고 한다. 목사 일행이 얼마나 놀랐을까. 분명 한달 반 전에 버지니아 주에서 동진하던 사람들이 유령처럼 몇 천 ㎞ 서쪽에 있는 콜로라도 주에서 나타나 여전히 동진하고 있으니… 로저는 고교 수학교사다. 나는 미국 횡단 라이더들 중에 왜 이렇게 수학선생들이 많은지 알 수가 없다. 어제 만난 로렐 시핵도 수학교사였고 메노나이트 목사일행인 웬덜 밀러는 초등학교 교사지만 수학을 주로 가르친다고 했다. 수학적으로 인생을 풀어보면 언젠가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해야 한다는 게 답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조리는 대학에 들어간 뒤 타향에서 살고 있다가 여름방학을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로저는 아들도 있는데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 여행하는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부녀의 동반 라이딩은 아름다워 보였다. 작렬하는 태양과 부글부글 끓는 아스팔트 사이에서 대화 나누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워낙 특별한 만남이어서 그런지 라이더들은 개의치 않고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헤어질 때 작별인사를 서너 차례씩 한다. “행운을 빌어.” “안전해야 돼.” “언젠가 또 보자.” 또 보자는 말에는 사실 힘이 없다. 완전히 다른 인생들을 살다가 어느 날 같은 시기에 미국 횡단을 결심하게 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3600㎞를 달리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인생이 교차한다. 짧은 만남에 비해서는 긴 작별인사를 나눈다. 출발하고는 다시 뒤돌아보고. 다시는 볼 수 없기에 더 각별한 만남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추천한 대로 오드웨이(Ordway)에 있는 질리언(Gillian)의 집으로 갔다. 질리언은 키가 183㎝로 여성치고는 ‘건장한’ 체격이다. 뉴질랜드인이라는 점도 특이했다. 8년 전 이곳으로 와 정착했는데 3년 전 막내아들이 군입대하고 방이 비어서 바이크 라이더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올해만 해도 12명의 라이더들이 막내아들 군입대의 혜택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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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마주친 라이더 커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플이다. 로저와 조리 메스먼 부녀로, 로저는 수학교사, 조리는 대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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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되게 한 ‘로키’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맘속에 들어찬 ‘로키’
그 ‘로키’가 가뭇거린다
입을 악문다 그는 매일 수인들과 생활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바이크 라이더들을 집에 초대하고 있다. 그는 “바이크 라이더들은 하나 같이 다 좋은 사람들이어서 그들과 하루라도 생활을 같이하면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번제인 교도소 근무특성 때문에 저녁에 집을 비울 때도 있는데 그 때도 바이크 라이더들에게 묵고 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고 간다. 딱 두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첫째 부엌에 있는 정수기로 온수를 쓰지 말 것. 둘째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 것. 감옥은 미국 사회의 축소판 그의 집에는 동물농장이 딸려 있다. 말과 개, 고양이를 각각 두 마리씩, 그리고 오리와 닭 수십 마리를 키운다. 팔기 위해서 키우는 게 아니라 함께 생활하기 위한 것. 동물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질리언은 “그들은 환경을 조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질리언의 집에서는 로키 산맥이 보일 듯 말 듯했다.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해보자는 생각을 최초로 불러일으킨 그 로키 산맥이다. 가슴이 설렐 준비를 하면서 멀리 시선을 던지지만 여전히 로키 산맥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날이 좋으면 보이기도 한다던데. 여행을 앞두고 읽은 다른 사람들의 미국 횡단기들에 따르면 로키 산맥을 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다고 한다. 문제는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는 것. 어떻게들 생각했는지 알 길이 없으니 힘든지 안 힘든지 종잡기 어렵다.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에서 가장 높은 곳은 로키 산맥의 후지어 패스(Hoosier Pass)다. 무려 11,542 피트 (3463m). 높이 1천m 안팎의 애팔래치언 산맥 구간에서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과연 이 높이를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라이딩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체력에 대해, 라이딩 기술에 대해 회의하고 스스로를 단련하고 그래도 회의를 버리지 못하는 과정이었다. 조금이라도 하루 라이딩 거리가 줄어들면 그렇게 해서 어떻게 로키 산맥을 넘겠다는 거냐 하는 소리가 내 속에서 들려왔다. 아직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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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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