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순 대기자
|
김효순칼럼
신문제작 일에 종사하다 보면 취재나 보도를 당하는 쪽의 항의를 많이 받게 된다. 이의제기 방식이나 태도는 기관이나 단체의 속성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점잖게 해명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은근히 협박을 하는 쪽도 제법 있다. 나의 경험으로는 공직기관 가운데 가장 막무가내로 압박하는 데가 국세청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까지 동원해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를 빼달라고 달라붙는다. 그 끈질김과 조직 보호주의는 진절머리가 날 정도다. 국세청은 얼마 전만 해도 ‘경제 안기부’ ‘경제 정보부’로 불렸다. 기업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염라대왕 같은 존재다. 삼성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으로, 국세청 등 금융감독기관에 뿌리는 뇌물 액수는 다른 기관보다 영이란 숫자가 하나 더 붙는다고 하니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지난 11월 이 경제권부의 초석이 뽑히는 듯한 사건이 벌어졌다. 국세청의 현직 우두머리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혐의의 사실 여부는 법원의 심판으로 가려지겠지만, 우리 사회의 성역이 또 하나 허물어진 긍정적 신호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성역 수가 적을수록 좋다. 검찰은 국세청장을 잡아넣어 거악을 일소한다는 조직의 존립 이유를 과시했지만, 그런 검찰을 조사하고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은 보이지 않는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이 나돌 정도로 난공불락의 아성으로 남아있는 검찰의 위력은 이제 대선판도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의 대선은 전통적으로 막판까지 알 수 없을 만큼 불확실 변수가 많은 것으로 외국언론들에 악명(?)이 자자했다. 하지만 검찰의 비비케이(BBK) 수사 발표 후 특정 후보자에 대한 쏠림 현상이 아주 뚜렷해졌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선거가 이 추세로 막을 내리면 차기 대통령을 뽑은 주체가 유권자인 국민이 아니라 검찰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음모설이 번지고 ‘정치검찰’의 본성이 다시 드러났다는 날선 비난도 나온다. 검찰이 과거에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10여년 전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인사로부터 ‘정권의 개’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위에서 물라고 하면 물 수밖에 없었다”고 자조 섞인 표정으로 얘기하던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론 그런 시대와 지금의 검찰을 같은 맥락에서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대상황이 많이 바뀌었고, 제도 운영 방식과 인적 구성도 달라졌다. 하지만 이번 수사 발표에 대해 신뢰하는 쪽보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더 많은 것은, 검찰 스스로 그 이유를 되새김질해 봐야 한다. 수사팀으로서는 억울한 구석이 있을지 모르나, 국민의 다수는 엄정한 수사가 이뤄졌다고 생각지 않는다. 검찰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사법 살인이나 시국사건 조작과 부풀리기에 앞잡이 구실을 한 사례가 적지 않지만, 과거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나서서 고해성사를 한 적이 없다. 참여정부 아래서 나름으로 과거사 정리에 나서는 시늉이라도 했던 국정원이나 국방부와 달리 검찰의 조직 우월주의나 자아도취는 여전하다.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스스로 성역을 허물어야 한다. 예로부터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점이 입증됐다. 만일 검찰 우두머리의 비리혐의가 나올 경우, 현재의 검찰이 경제 정보부의 수장을 잡아넣은 것과 같은 강도로 수사를 해서 끝장을 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검찰 홀로서기를 위해서도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이나 제도적 장치 마련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박영선 ‘BBK 사무실서 이명박 인터뷰’ 동영상 급속확산
▶ 신당 “검찰총장 탄핵 추진”
▶ ‘BBK 수사발표 불신’ 55.2% ‘이명박 특검’ 찬성 49.2%
▶ 청와대 “검찰수사 관여할 의사 없다”
▶ 이명박 45.2 - 정동영 13.5 - 이회창 12.9%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