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04 20:01
수정 : 2008.12.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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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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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칼럼
지난주 아시아 순방 공연의 일환으로 평양과 서울에서 연주회를 연 뉴욕필하모닉의 사장 자린 메타(70)는 인도 뭄바이(옛 봄베이)의 음악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 멜리 메타는 봄베이 심포니를 만들었고 필라델피아 4중주단에서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자린보다 두 살 위인 형 주빈 메타는 몬트리올교향악단, 이스라엘필하모닉, 뉴욕필 등에서 지휘봉을 잡은 세계적인 지휘자다. 주빈의 첫 부인은 캐나다의 소프라노 가수 카먼 래스키였다. 이들의 결혼생활이 6년 만에 파경을 맞자 자린이 카먼 래스키를 배우자로 삼았다.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필의 평양 공연은 세계의 시선을 모았다. 공연장 양쪽에 성조기와 인공기를 게양하고 두 나라의 국가를 연주하는 것으로 공연을 시작했으니 깊게 드리워진 불신과 해묵은 적대관계를 보아 왔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서울에 온 자린 메타 사장의 발언도 그에 못지않게 충격으로 느껴졌다. 그는 서울 공연의 연주곡이 모두 베토벤의 작품으로 채워진 것에 대해 “베토벤의 운명을 택한 것은 훌륭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현 정세와도 딱 들어맞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정세와 운명을 연결하는 발상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 것은 그가 인도인이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요즘 인도는 세계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하는 투자 대상국으로 관심을 끌고 있지만, 한반도의 현대사와 적지 않은 인연을 갖고 있는 나라다. 60년 전 남북한에 상이한 정권이 들어서기 전 서울에 와 조사활동을 벌인 유엔한국위원회의 의장 크리슈나 메논은 나중에 유엔 대사, 국방장관을 지낸 인도의 명사였다. 단독정부 불사 방침을 밀고 나간 이승만의 지시를 받은 문인 모윤숙의 ‘집중 로비’ 대상자로 알려진 사람이다. 중국이 1950년 가을 유엔군의 인천 상륙작전에 불안을 느껴 중국군의 참전 가능성을 흘리며 서방 진영과의 중재 창구로 이용한 사람은 파니카르 베이징 주재 인도 대사였다. 메논과 파니카르는 식민지 시절 영국의 명문대학을 나왔고 인도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와 절친한 사이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분단의 비극을 다룬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와 잠정적으로 택한 행선지도 인도였다.
뉴욕필의 평양 공연이 있던 날 부산에서는 미국의 핵잠수함 오하이오가 언론에 공개됐다. 군사 문제에 별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그저 큰 군함 정도로 비치겠지만, 오하이오는 미국과 소련의 치열한 군비확장 경쟁이 벌어진 1980년대에 건설된 대표적 전략 병기의 하나였다. 냉전의 종식으로 매스컴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용어가 된 트라이던트급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을 18기나 탑재했다. 이제는 핵탄두를 10개까지 장착할 수 있는 전략미사일을 걷어내고 순항미사일 154기를 쏠 수 있도록 개조됐다. 한국에 처음 입항한 오하이오는 이례적으로 잠수함 내부까지 언론에 공개하는 선심을 보였다.
오하이오 외에도 항모 니미츠, 이지스 구축함 등 막강한 미군의 함정들이 2일부터 시작된 ‘키리졸브 독수리 군사연습’에 참가하기 위해 한반도 해역에 들어와 있다. 키리졸브는 해마다 실시되던 연합 전시증원 군사 연습의 이름을 이번에 바꾼 것이라고 한다. 키리졸브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핵심 결의’라는 뜻이 될 것이다. 평화스런 음악회와 엄청난 화력 과시가 너무도 태연히 겹쳐지는 이 땅에서 무엇을 이루기 위한 결의인가? 자린 메타가 운명을 얘기했을 때 이런 모순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일까?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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