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5 20:08
수정 : 2008.12.2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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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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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칼럼
국정 운영과 관련해 언론이 싸잡아 비난할 때 쓰는 상투어 가운데 ‘총체적 난맥상’이 있다. 나라의 살림살이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와 여당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표류할 때 단골손님으로 내보내는 표현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전혀 반갑잖은 이 말이 문득 떠오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달 중순 미국과 일본 방문차 출국한다. 한-미 동맹 강화와 미국, 일본과의 ‘관계 복원’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으니 취임 직후 첫 방문국으로 미국을 택한 것은 자연스런 흐름이다. 일정을 이렇게 잡은 것은 다음달 9일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원내 안정기반을 확보한 뒤 자신감 있게 대외무대에 나서겠다는 계산이 작용했을 터이다.
18대 총선은 후보등록이 오늘 마감되면서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초반 판세를 보면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정치적 셈법이 뒤틀리고 있다. 총선을 치를 때면 정치판은 으레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이기에 일단 당선만 되면 신분이나 사회적 위상이 곧추 상승한다. 떨어지면 대체로 역방향 처우를 겪는다. 예선격인 주요 정당의 공천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지지자들을 동원해 당사에서 시위를 하거나 직접 울분을 토로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양상은 선거 때마다 봤던 그런 차원을 한참 넘어선 것 같다. ‘친박연대’라는 희한한 정당의 등장과 집권여당의 노골적 세력다툼이 희화적으로 보여준다. 친박연대는 정근모 전 과기부 장관이 지난 대선 출마용으로 만든 정당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일부 지지자들이 접수해 ‘리모델링’한 정당이라고 한다. 우리 의정 사상 특정인을 정당 이름에 내건 적은 없었다.
집권여당이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것은 한국사회에서 주요 세력기반인 ‘티케이’(대구·경북) 지역의 주도권 다툼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티케이 지역의 일반적 민심이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 대해 부정적 시각으로 계속 표출된 것은 중앙정부와의 파이프가 단절됐다는 소외감이 큰몫을 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특유의 정치력으로 이 지역의 대표주자라는 지위를 굳혀 왔다. 이제 이상득 부의장이 현직 대통령의 형님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민원사항’을 챙겨주는 창구로 부상했으니 알력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총선은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정권을 중간평가하는 이상한 구도로 짜여졌다. 직접 요인은 이 대통령이나 정권 실세들의 과욕, 성급한 줄세우기가 제공했지만, 초반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의제나 정책을 던져주지 못한 탓이 더 크다. 기억력이 망가졌는지 지난 한 달 동안 어떤 감동스런 정책이나 행사가 있었는지 떠오르는 것이 없다. 문민정부 이후 나왔던 하나회 해체, 대북 포용정책, 권위주의 잔재 제거 등 상큼한 것이 없다.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와신상담했다는 사람들이, 연중무휴 체제로 보따리들을 풀어놓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적어도 아직까지는 물건이 보이지 않는다.
보여준 것이 없는데도 유권자에게 판단을 강요하는 선거라면 어처구니가 없다. 정당정치의 미성숙 같은 구조적 문제에다 시대착오적 정치행태, 정치 지도자들의 경륜과 준비 부족이 겹쳐 나쁜 방향으로 상승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민심은 변덕스럽고 무섭다. 민심의 용광로에서 파행적, 퇴행적 정치구도와 행태가 어떻게 소각될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만 좁은 남쪽 땅에서 지역구도가 악화하는 쪽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기원한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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