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5.06 19:49
수정 : 2008.12.23 17:13
|
김효순 대기자
|
김효순칼럼
1970년대 인권·도덕 외교를 주창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치하에서 한-미 관계는 아주 삐걱거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저격사건으로 숨지기 4개월 전 카터가 방한했을 때 정상회담 자리는 주한미군 철수, 인권 탄압 등 민감한 현안으로 분위기가 싸늘했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 김포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차에서 독실한 침례교 신자인 카터는 박 대통령에게 종교가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는 답변에 카터는 신앙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에서 교육받은 김장환 목사를 보내겠다고 제의했다.
조시 부시 현 미국 대통령은 널리 알려진 대로 갱생한 기독교 신자다. 주벽이 심했던 그는 40살이 되던 생일에 술을 끊었다. 절친한 친구의 권유로 텍사스에서 성서연구회에 들어가 성경 공부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때 술을 끊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 자신이 이따금 고백을 한다. 부시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백악관은 전임 클린턴 때에 견줘 엄숙한 분위기로 확 달라졌다. 남성의 복장은 감색이나 회색 정장이 원칙이고 청바지 차림은 금물이다. 성서연구회도 열린다.
기독교 신앙의 독실함으로 따지면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미국이 키운 유명한 부흥전도사의 과외를 따로 받을 필요가 없다. 지난달 중순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두 사람은 죽이 척척 맞았다.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골프차를 함께 타고 돈독한 관계를 한껏 연출했다. 세계관에 큰 차이가 없으니 전략적 동맹 관계란 표현이 절로 나왔다.
미국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나라다. 두 나라의 정상이 격의 없이 얘기할 수 있다면 일단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상간의 친밀함 과시가 두 나라의 국가이익, 나아가 국민의 복리 증진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부시가 취임한 뒤 김대중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할 때 김 대통령이 대북 포용정책을 설명하려 하자, 송화구를 손으로 가리고 “이 사람 누구야? 이렇게 순진하기는 …”이라고 보좌진들에게 불평했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부시는 텍사스 주지사에서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 미묘한 국제 문제를 다룬 경험이 거의 없다. 독서도 별로 하지 않아 성경을 읽은 것이 그의 지적 훈련의 주요한 토대로 알려졌다. 그러니 ‘악의 축’ 연설이 나온 것이나 북-미 관계가 얼어붙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로 비롯된 피해나 고통을 누가 당하느냐 하는 문제가 되면 다른 얘기가 된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 후 2주도 채 안 돼 백악관에서 가장 먼저 영접한 외국 정상은 나토 동맹이나 캐나다, 멕시코 같은 이웃나라의 수뇌가 아니었다. 성대한 오찬 손님은 다름아닌 전두환이었다. 레이건의 참모들은 나중에 사형 위기에 몰린 김대중씨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했지만,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이 대통령이 방미 외교를 하면서 나온 미국 쇠고기 개방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국민의 먹거리와 건강, 축산농가의 생존에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인데도 전략동맹이라는 원대한 꿈에 들떠 타결을 서두른 탓이다. 그러나 전략동맹은 미국과 영국처럼 오랜 역사적 경험과 국가이익을 공유하고 국력이 어느 정도 비슷할 때나 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광복 뒤 60여년이 지나도 통일은커녕 화해도 이루지 못한 분단국 처지가 아닌가?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또 무슨 선심이 튀어나올지 두렵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