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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7.29 19:47 수정 : 2008.12.23 17:11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칼럼

20여년 전만 해도 남북 대치 공관은 날 선 긴장과 비장한 느낌이 감도는 일상어였다. 한반도의 대표성·정통성을 놓고 총력전을 펼치던 시대에 대사관이 됐든 총영사관이 됐든 공관이 함께 설치된 외국은 그야말로 총성만 들리지 않는 남북의 전쟁터였다. 먼저 공관을 설치한 쪽은 다른 쪽이 들어오는 것을 막느라 온갖 공작을 벌였고, 동시 수교가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다른 쪽의 활동을 흠집 내려 무리수를 마다지 않았다. 싸움의 결과는 한동안 유엔 무대에서 판가름이 났다. 서로 동맹국을 내세워 제출한 결의안에 얼마나 많은 지지표를 얻느냐에 따라 그 해의 승패가 갈라졌다.

끝없는 표 대결이 의미 없는 공회전으로 바뀌어도 남북 공관의 로비는 주재국 정부뿐만 아니라 학자·언론인·문화인 등으로 확대됐다. 남쪽 공관은 이른바 ‘친한파’ 인사를 만들어 우호적 글을 언론에 발표하도록 유도한다. 하나가 성사되면 본국에 ‘업적’으로 보고된다. 1980년대 중반 아프리카의 대국 나이지리아의 유력지 간부로부터 “위스키 생각이 나면 한국대사관에 전화했다”는 말을 들었다. 한국 외교관이 수시로 찾아와 ‘남쪽에 유리한, 북쪽에 불리한’ 뉴스나 논평·기고를 싣도록 부탁을 했다고 한다.

싸움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하지만, 집요한 로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헤아려 보지 않으면 정작 본질을 놓치기 십상이다. 한반도에 중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나라를 제외하고는 실상을 잘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전에 국가 정상이 제3세계 국가를 공식방문할 때 환영식 전에 북한 국가가 연주되거나 북한 국기가 게양되는 사고가 이따금 터졌다. 지난해 12월 초 송민순 당시 외무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도 잘못 그려진 태극기가 게양돼 여러 해석이 나돌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잘못이 명백하더라도 별로 따지지 않으려는 것이 제3자의 속성이다. 어느 한쪽이 테러를 했건 핵실험을 했건 그것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코리안 전체의 이미지로 굳어진다. 코리안은 호전적이고 국제규범을 무시하고 성숙을 모르는 민족으로 비친다.

지난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에서 사라진 것으로 생각했던 대치외교가 생생하게 재현됐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을 국제무대에서 쟁점으로 만들려다 오히려 망신을 자초했다. 동남아 5개국으로 출범한 아세안은 작년에 창설 40돌을 맞았다. 베트남전이 미국의 본격적 개입으로 확전일로를 걸을 때 반공동맹으로 출발한 아세안은 냉전종식 등의 정세변화와 함께 지역의 현안을 논의하는 국제기구로 위상을 높였다. 94년 방콕에서 처음 열린 아세안지역포럼은 안전보장 문제에 관해 아세안 가맹국과 주요국 정부가 논의하는 아·태 지역의 유일한 무대로 자리를 굳혔다. 한국은 포럼 창설국의 하나이지만 북한은 인도 몽골보다 늦은 2000년에야 가입을 했다. 북의 포럼 가입에 남이 뒷전에서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해 7월 방콕회의에서 데뷔한 당시 북한 외상 백남순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과 첫 북-미 외무장관 회담을 하며 언론에서 신데렐라 대접을 받았다.

남과 북의 뚜렷한 국력 차이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남쪽이 여유와 관용을 갖고 관계를 이끌어가지 않으면 출구 없는 소모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동네방네 다니며 집안싸움의 책임 소재를 떠들어도 공감을 모으기보다는 집안 망신으로 귀결되는 게 현실이다. 독도문제에서 밀리는 것도 이 탓이 크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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