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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02 21:04 수정 : 2008.12.23 17:06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칼럼

이미 버락 오바마 차기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 언론의 조명이 시들해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는 “이라크인 5천만을 해방시키고 평화를 이루고자 노력한 대통령으로 알려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다. 언론기관과 한 정식 인터뷰는 아니고, 추수감사절을 맞아 일반인들의 삶의 자취를 구전으로 남기자는 ‘스토리코르’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명해 자신의 여동생과 나눈 대화 일부를 백악관이 공개한 것이다.

현세에서 최강국의 대통령을 8년이나 재임하며 온갖 영광을 누리고서도 역사에 좋게 기록되기를 바라는 것은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반응은 그렇게 곱지 않은 모양이다. 꿈을 깨라는 것에서부터 이제 ‘전범’ 법정에서 보자는 위협까지 누리꾼들의 다양한 소감이 나왔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면서 핵 선제공격 불사, 일방주의 외교를 밀어붙였다. 미국의 오만한 독주에 유럽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별로 감정이 좋지 않았다.

부시에 대한 한국인들의 평가는 어떤가? 진보진영에서는 좋지 않았다. 흑백 단순논리로 재단해 힘으로 끝장내려는 무력 숭배자 이미지가 강했다.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을 위한 군사적 지원을 강요하고, 모처럼 대화 기조로 들어선 남북관계를 다시 뒤헝클어 버렸다는 인식이 퍼졌다. 취임 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최고권력자를 ‘피그미’로 지칭하며 조롱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화통화에서 햇볕정책을 설명하려 하자 송화구를 손으로 막고 도대체 이렇게 순진한 사람은 누구냐고 보좌관들에게 반문했다고 한다.

그러면 한국의 보수진영에 부시는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을까? 우파 언론을 자처하는 한 사이트에는 부시가 백악관에 초청한 탈북인의 손을 잡고 북한의 인권 유린에 분노하던 그 진정성을 믿는다는 글이 올랐다. 지금도 부시가 수백만 인민을 굶겨 죽인 김정일의 폭정을 잊은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는 이 글에는 부시에 대한 실망감이 슬며시 배어난다. 우파 진영의 내부 논의에 정통한 한 인사로부터 최근 흥미를 끄는 얘기를 들었다. 부시에 대한 평가가 초기의 엄청난 기대에서 경멸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부시가 아프가니스탄을 응징하고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을 궤멸시키자, 이제 북한 정벌이 시작된다고 기대가 컸다. 전쟁이 나더라도 북한이 미국의 엄청난 군사력을 오래 감당할 수 없기에 불안하면 ‘잠시’ 외국에 나갔다 오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다 북한 핵실험 후 6자 회담을 통한 해결로 정책 기조가 굳어지자, 부시가 뭔가 할 줄 알았더니 겁쟁이라는 비판이 속출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도 여론조사의 추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역전승을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 인식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 대한 평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라이스가 2005년 봄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과 한 공동회견에서 ‘난데없이’ 북한은 주권국가이며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말해 국내 보수진영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소통의 부재다. 정보와 판단 근거가 폐쇄회로처럼 한정된 구역에서 돈다. 이 점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을 쥐고 있는 쪽이 자신들만 믿는 현상 인식에 갇혀 버린다면 그 폐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우려가 있다. 최근의 역사교과서 강제 수정, 과거사위에 대한 무차별 공세, 공안기관 강화 등을 보면 돈키호테식 돌진이 얼마나 계속될지 지켜보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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