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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02 21:42 수정 : 2009.06.02 21:42

김효순 대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이후 전국적으로 번진 추모 열기 속에 누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먼지털기식 수사를 하며 온갖 혐의내용을 공식·비공식으로 흘린 검찰, 독자적 검증 절차 없이 중계방송하듯 한 언론, 암묵적 지시를 한 정권 핵심 등이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봉수 세명대 교수는 5월28일치 <한겨레> ‘시민편집인의 눈’에서 언론이 가장 힘을 쓴 것으로 썼다. 한겨레에 대한 날선 비판도 눈에 띈다. 노무현을 지켜내지 못한 한겨레가 그를 추모할 자격이 있느냐는 주장이다.

검찰의 양태와 언론의 보도 태도가 문제되는 것은 비단 노 전 대통령 수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취임사에서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던 그에게 특별한 대접을 요구할 수는 없다. 검찰의 시시콜콜한 브리핑이나 포토라인 세우기가 혐의를 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어떻게 짓밟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검찰이 ‘정치검찰’ ‘하이에나 검찰’이라고 불리는 것은 자업자득이지 국민이 덮어씌운 것이 아니다. 언론도 사회악 비리를 척결한다는 명분 아래 그런 검찰과 공생의 유대관계를 유지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노무현 죽이기’의 뿌리는 이보다 훨씬 깊을 것이다. 기득권층의 집요한 반감과 멸시에 닿아 있다. 1997년 12월말의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3전4기 끝에 당선된 뒤 그의 핵심 측근인 박지원 특보가 연락을 해서 만났다. 당시 정치부장을 맡고 있던 나는 1년여의 대선 공방전에서 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는 “그동안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인사치레를 한 뒤 “<조선일보>에 가서 살았다”고 해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다른 점은 집권을 하기 위해서 비토세력과 어떻게든 사귀어보려는 몸짓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정치인 노무현과 한겨레의 출범 시기는 같은 1988년이다. 노무현은 그해 4월26일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한겨레는 5월15일 창간호를 냈다. 한겨레도 비주류였지만 그도 3당 합당 반대, 꼬마 민주당, 국민통합추진회의 등 철저히 비주류의 길을 갔다.

보수언론에 영합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는 취임 뒤에도 기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는 당선자 시절 한겨레 사옥을 방문했고 발전기금 모금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그의 남다른 관심은 한겨레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곤혹스런 사안이었다. 한겨레의 신뢰성에 흠을 내려는 세력들은 ‘노빠신문’의 증거라고 들이댔다.

2004년께 노무현 팬클럽 모임인 노사모에서 한겨레 국장에게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면담 요청이 왔다. 네다섯 분인가 대표가 찾아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한겨레에 서운한 것이 많아서 왔습니다.”

“어떤 점이 그런지 말씀해주세요.”


“예를 들면 장봉군 화백의 만평은 큰 문제입니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고 해서 일제 때 학병 나가도록 선동한 친일파처럼 그려도 됩니까?”

“만평이야 풍자와 해학이 가미되지요.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를 공격하는 것도 많아요.”

“비판하지 말고 대통령님 일 좀 하게 해주세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 속성입니다.”

“아니 참여정부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권력이 아닙니다.”

“야당 정치인 때와는 다르지요. 인사권과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으면서 권력이 아니라고 하면 곤란하지요.”

“무슨 말을 하십니까? 대한민국의 권력은 조중동입니다.”

이분들을 다시 만나면 얘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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