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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21 21:40 수정 : 2009.06.21 21:40

김효순 대기자

국정원의 민간 사찰과 개입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변호사의 발언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분열상을 그대로 드러낸다. 발언이 내포하는 심각성을 생각하면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할 사안인데도 보수언론은 무시해버린다. 이런 상태로 진행되면 박 변호사가 문제의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정치에 무관심한 일반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고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다. 그가 문제의 발언을 한 통로는 <위클리 경향> 인터뷰인데 국정원 의혹이 제목으로 뽑히지 않아 건성건성 읽는 독자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

내용을 보면 박 변호사가 작심하고 말했다는 느낌이 온다. 평소 그가 풍기는 인상과는 달리 다소 거친 표현이 잇따라 등장한다. 이 정부에서 시민단체를 깡그리 무시하고 배제의 정치를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사령부가 있다고 했다. 청와대나 국정원을 지목한 것이다. 인터뷰어가 도리어 발언을 기사화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이 말로 주목받으면 바라는 바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행정안전부와 하나은행의 계약 파기 등 구체적 사례를 거론했다.

박 변호사의 발언 내용이 다른 매체들의 인용 보도를 통해 퍼져나가자 국정원은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아무런 근거 없이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하고 확인 없이 보도했다는 이유로 박 변호사와 위클리 경향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나는 당사자들에게 폐가 될지 모르겠지만 국정원이 검토만 하지 말고 실행에 옮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의혹 규명의 무대가 본격적으로 세워지기를 바란다. 박 변호사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가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박 변호사는 한겨레신문사와 상당한 인연이 있다. 비상임이사를 맡거나 논단의 필자로 참여한 적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은 이미 심각하게 균형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이따금 한겨레에 대한 고언을 할 때면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한겨레신문사는 창간 이후 만성적으로 재정형편이 어렵다. 한겨레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박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돈들이 제법 있으니 그런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라고 조언을 해준다. 실제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풍토가 조성되면서 여유가 있는 금융기관이나 대기업들은 사회적 공헌 예산을 책정해둔다. 그가 설립하고 키웠던 아름다운 재단이나 아름다운 가게가 이런 예산의 도움을 일부 받은 것은 사실일 것이다. 박 변호사의 시민운동 방식에 대해서 제기되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시민운동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개량화시켰다거나 수구언론과의 싸움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들이 나온다.

내가 그의 이번 발언에서 주목하는 것은 정권에 직접 위협이 되지 않는, 전투적이지 않은 시민단체에조차 자금압박이 심해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권에 다소라도 밉보인 단체들의 상황이 어떨지는 훤히 짐작이 간다. 이런 상황은 그의 말대로 총체적 사령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겨레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1996년 10월께 광고 수주가 격감한 때가 있다. 공기업과 대기업이 광고를 거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한겨레는 ‘소통령’이라 불리던 김현철 관련 보도와 안기부법 개정 문제로 정권의 시선이 아주 좋지 않았던 때였다. 나도 당시 안기부 고위직들을 만나 따진 적이 있다. 그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철저히 부인했지만 수년 뒤 안기부의 공작임을 입증하는 내부 문서가 나왔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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