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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06 22:24 수정 : 2009.10.06 22:24

김효순 대기자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방한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총선에서 승리해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종식시킨 하토야마 총리는 양자외교의 첫 방문지로 한국을 택했다. 유명환 외무장관은 9월 말 도쿄의 총리 관저를 방문해 정상외교의 첫발 떼기를 한국으로 해줄 것을 요청해 수락 의사를 받아냈다고 한다. 하토야마는 10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 앞서 서울을 기착지로 쓰는 셈이다.

한국의 하토야마 ‘선점’에 대해 중국 누리꾼들의 반응이 곱지 않다. 베이징 3자회담의 김을 빼놓으려 한다는 등의 비난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누리꾼들의 단선적인 비판이야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우리 정부가 어떤 구상을 갖고 신임 총리를 서울로 불러들이는지 궁금하다. 하토야마의 방한은 굴곡이 많았던 한-일 관계의 진전을 위한 역사적 계기가 될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하토야마 자신이 일본의 전통적 외교 자세를 비판하고 수정 방침을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일본을 지배해온 자민당 정권의 일관된 대외정책은 대미 편중 외교다. 미국의 의중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한 정책기조의 부산물이 ‘아시아 무시 외교’ 또는 아시아 외교의 부재다. 상징적 인물이 전후 총리직에 장기 재직하며 경제재건을 주도해온 요시다 시게루다. 외교관으로 잔뼈가 굵었고 국제경험이 풍부한 요시다는 1954년 아시아협회 발족 기념 리셉션에서 마이크가 켜져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작은 소리로 “아시아에는 변변한 나라가 없으니까요”라고 농담조로 얘기했다고 한다.

요시다의 목소리는 일본 외무성의 기본 자세를 반영한다.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한 것은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처음이다. 그는 1993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우리말 사용 금지, 창씨개명, 군대위안부, 징용 등의 예를 들며 “가해자로서 마음속에서 깊이 반성하고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외무성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 전임 총리의 방한 때 한 발언을 바탕으로 문안을 준비했으나, 호소카와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발언 내용이 크게 달라졌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끝난 후 기자단에 대한 일본 쪽 설명에서 호소카와 발언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 쪽 브리핑에서 내용이 알려지자 외무성은 “설명을 할 때 메모에서 읽는 것을 빠뜨려 버렸다”고 말이 되지 않는 변명을 했다. 관료들의 은밀한 저항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이제 시대 여건은 많이 달라졌다. 하토야마는 야당 시절부터 관료지배 체제에 휘둘리지 않고 과거사를 직시할 용기가 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하토야마를 안방으로 불러들이며 어떤 비전을 다듬은 걸까? 새로운 한-일 관계를 만들어 가는 첫 단추가 될 터이니 한정된 시간에 무엇이 논의될지 주목된다. 북한의 핵문제가 세계적 현안이니 논의의 중심이 그쪽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평양 방문 견제용으로 회담이 서둘러 마련된 것이라면 현명하지 않다. 우리 정부가 대화의 물꼬 트기가 아니라 하토야마를 끌어들여 대북 강경 노선 고수에 매달리려 한다면 일제 강점 100년을 앞두고 큰 것을 놓칠 수 있다.

일본도 자국민 피랍 문제의 주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 공작원의 일본인 납치가 개탄스런 일임에 틀림없지만 피해 정도로 따지면 식민지 지배 피해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이 피해자의 얼굴로 분장하고 이명박 정부가 이를 부추기기만 하면 북-일 관계 정상화도, 동아시아공동체 추진도 풀리지 않는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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