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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소방관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직 공무원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한다. 지난 6월7일부터 화재 진압복을 입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하는 소방관의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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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 지지한다, 그들이므로
살고 있는 아파트가 비교적 큰길가에 있어 수시로 소방차가 지나간다. 요란한 경적이 울리면 우리 아이는 쏜살같이 창가로 뛰어간다. 이미 그때쯤이면 ‘불자동차’는 지나가버리고 없는데도 아쉬운 듯 창가를 떠나지 않는다. 두 눈이 경외심으로 반짝인다. 여덟살 남자아이의 마음을 저렇게 흔들어놓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떤 상황에도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 빨갛고 커다란 소방차가 주는 위압감, 아니면 소방안전체험교실에서 만난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소방관 아저씨들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여느 아이들처럼 우리 아이도 소방관이 될 거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경적의 여운이 사라진 뒤에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어릴 적 장독대에서 올려다보이던 산동네 마을에 불이 났었다. 소방수들의 등에 업혀 실신한 사람들이 큰길을 지나갔다. 그땐 소방수라고 불렀다. 처음 운전을 배워 소방차와 맞닥뜨렸을 때는 울고 싶었다. 경적이 울리고 경광등이 번쩍이는데 당황해서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몰랐다. 2001년 홍제동 화재를 생각하면 화부터 난다. 불난 집 안에 아들이 있다는 제보에 소방관들이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여섯명이 숨졌다. 아들은 진작에 밖으로 나왔을뿐더러 그 집을 방화한 것도 바로 그 아들이었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에 반짝 관심이 일었다. 미국의 9·11 테러 희생자 중 343명이 소방관이었다. 그들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세월호 사고와 정부의 무능을 보는 내내 불쑥불쑥 119가 떠올랐다. 순식간에 화재 현장으로 출동해 불을 진화하고 목숨을 구한다. 소방관이 그곳에 있었다면 수십명이 모여 있는 객실을 보면서도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거나 자신의 목숨부터 생각하는 대신 일단 망치로 유리를 깨고 아이들의 손을 잡았을 것이다. 소방관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우리 아이처럼 내게도 그런 믿음이 있다. 지난 일요일 아버지가 목욕탕에서 쓰러졌다. 어머니는 성당에 가고 마침 출장 준비 중이던 동생이 부랴부랴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응급실 문밖으로 응급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동생이 보였다. 응급실 한쪽 병상에 여든살이 넘은 아버지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10분도 안 되어 아파트 문 앞에 도착했어.” 동생은 119 구급대의 신속성에 놀란 모양이었다. “음, 골든타임.”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내뱉고 보니 또 억장이 무너졌다. 그날 그곳에 정부는 없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사이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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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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