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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5 18:44 수정 : 2014.12.05 18:44

하성란 소설가

만차라비아야는 말라가의 서북쪽에 위치한 작은 산간 마을이다. 마을까지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몇 안 되는 마을이기도 하다. 약 7㎞에 이르는 산길 어딘가에 마을 어른들이 걸어다녔던 지름길이 있다고 한다. 봄이면 아몬드 꽃이 만개해서 장관을 이룬다는데 12월, 이곳도 겨울이다.

산 정상에 올라서자 저 아래로 하얀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드넓은 평원 속에 자리잡은 마을은 아주 작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자동차가 마을로 들어서자 호기심 많은 주민 몇이 모습을 드러내고 인사를 건넸다. 마을 규모에 비해 굉장히 웅장한 성당 안에 묘지가 있었다. 몇백년 전에 죽은 이들과 얼마 전까지 마을에 살던 이들의 무덤이었다. 이곳에 살던 이들은 자신이 평생 걸어다니던 골목 옆에서 영면한다. 마을을 다 도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마을의 주민은 300여명이라고 했다.

지인은 올봄에 집수리를 하기로 했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느리기는 하지만 지원금이 나올 테니 비가 새는 창문부터 고치기로 했다. 300명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에까지 정부의 손길이 미치고 있었다. 304명이나 희생되었는데 우리 정부는 무얼 했나, 화가 치밀었다.

이 마을에는 300명을 위한 시청 하나, 성당 하나, 레스토랑 하나, 박물관이 하나 있다. 300명의 복리 후생을 위한 축구장이 하나, 체육관이 하나, 농구장이 하나, 실내수영장이 하나 있다. 300명으로 이런 마을이 하나 이루어졌다는 것이 신기했고 곧 지난 4월16일에 있었던 일이 얼마나 참혹스러운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마을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또 세월호 이야기냐고 할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작은 마을은 더욱 고요해졌다. 언젠가 차로 들어섰던 안산의 풍경이 떠올랐다.

창비 블로그에서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학부모의 인터뷰를 읽었다. 미지 아빠와 건우 엄마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안톤 체호프의 ‘애수’가 떠올랐다. ‘누구에게 나의 슬픔을 이야기하나?’ 늙은 마부 이오나는 일주일 전 아들을 잃었다. 마차에 탄 손님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보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심지어 “누구나 죽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일년에 사고로 천명, 이천명이 죽는데 삼백명 죽은 걸로 왜 이렇게 난리냐고, 나라 거덜낼 거냐”고 말한 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건우 엄마는 오래오래 살아 건우를 기억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아들을 잃고도 5개월이나 살아 있는 자신을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나, 죄스러울 뿐이다. 미지는 이다음에 크면 꼭 비행기를 태워주겠다는 아빠와의 약속을 지켰다. 미지 아빠는 미지의 시신과 함께 헬리콥터를 탔다…….

마부 이오나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함께 나눌 사람을 찾는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혼자서는 아들 생각도 할 수 없고 아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도 없다. 여자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여자는 두어 마디만 듣고도 통곡을 할 테니까. 결국 이오나는 자신의 늙은 말에게 말을 건다. “만일 말이다. 너에게 새끼가, 네가 낳은 새끼가 있다면 말이다…… 그 새끼가 죽었다면 말이다. 얼마나 괴롭겠니?”

인터뷰는 내년 1월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다행히 부모들에게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들이 있다. 차마 혼자 있을 때는 너무도 힘들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어주는 것. 말이 아닌 인간이 할 수 있는 아주 최소한의 일이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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