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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30 20:27 수정 : 2008.04.30 20:27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중국정치

시론

중국인들은 올림픽을 ‘중국의 부상’을 세계에 알리는 역사적 이정표로 받아들인다. 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한 30년은 중국이 눈부시게 발전한 역사였고 외세에 의해 열린 근대의 치욕을 씻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따라서 중국이 올림픽에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하게 21세기를 열어가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올림픽이 가까워 오면서 ‘인권 없이 올림픽 없다’는 이미 예상된 주장이 현실화되었고, 티베트 시위에 대한 중국의 강경 진압을 계기로 반중 분위기는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그동안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면서 평화국가의 이미지를 조심스럽게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실제로 올림픽 성화는 평화의 순례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티베트와 중국, 사회주의와 인권이라는 대립항을 만들면서 하나의 정치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일까. 개혁개방 세례를 받으면서 민족적 자존심이 유독 강한 1980년대생 중국의 젊은이들은 올림픽 성화의 파수꾼이 되고자 서울 한복판에 오성홍기를 들고 거침없이 몰려들었다. 이들에게는 민주주의 국가를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서울에서 성화를 사수하기만 한다면, 북한과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탄탄대로를 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티베트 해방’이라는 국가주의에 물든 중국의 젊은이들은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서울이라는 공간을 망각했고, 다른 견해를 폭력으로 압도하는, 안으로 굽은 닫힌 민족주의의 속살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였다.

그 폭력의 이면에는 나의 평화와 당신의 평화를 구분하는 중화주의, 어울려 사는 여유를 가르치지 못했던 애국주의 교육이 숨어 있었다. 또한 무늬만 남은 사회주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민주주의에 대한 독해를 게을리하고 민족주의에 기대왔던 중국 정치의 책임이기도 했다. 사태가 발생한 뒤 중국 외교부의 안이한 인식은 그래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사태를 접근하는 시각과 해결 방식은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왜냐하면 이성적 공론에서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익명의 인터넷에서 날선 민족주의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동북공정, 중화주의, 중국위협 등 중국에 대한 부정적 기억을 동시에 불러내고 있다. 이것은 우여곡절을 거쳐 쌓아온 한-중 관계를 원점으로 돌리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반중의 거울을 통해 미국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계산조차 깔려 있다면 더욱더 우려스럽다.

이번 사태의 폭력 행위자들에 대해 보편적이고 엄격한 잣대를 사용해야 할 것이며, 재발 방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국의 책임을 강조하고 매력공세(charming offensive)를 펼치며 제3세계에 대한 구애에 적극적인 중국이 어떤 대국이 될 것인가를 다시 성찰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화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지닌 주변국가들은 ‘평화발전’에 숨어 있는 중국위협을 발견하고자 할 것이다.

한-중 관계에는 사이가 좋을 때에는 모든 문제가 수면 아래로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숨어 있던 모든 문제가 돌출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잘 관리되기만 한다면 지금과 같은 갈등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국가간에는 항상 이익이 충돌하고 서로를 보는 인식의 차이가 있기에 갈등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을 합리적인 절차와 이성적 논의를 통해 해결하는 관례와 규범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야 비 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중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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