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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2 19:47 수정 : 2008.06.12 19:47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시론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을 앞서는 상상력에 있다. 과거 미드(미국드라마) 열풍의 대표 주자였던 <웨스트 윙> 시리즈가 그러하다. 이 드라마는 시민공동체를 위한 진정성과 애국심을 가진 이상적 대통령의 멋진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탁월한 웨스트 윙 원작자의 상상력마저도 도저히 흑인 출신의 후보가(그것도 중간 이름이 후세인인 자가) 백악관을 차지할 수 있다는 가정을 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드라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타입의 진보 오바마와 보수 매케인의 본선 격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의 폭발적인 흥행력의 비밀은 ‘짝퉁’ 정치인에게 지친 많은 유권자들에게 양당 후보가 그들이 수십년 기다려온 ‘진짜배기’ 정치인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에 있다. 미국인들에게 ‘명품’ 진보와 보수로 간주된 존 에프 케네디나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처럼 말이다.

물론 그들은 한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제2의 케네디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여론추수주의적이라 ‘뺀질이’ 별명이 따라다니는 클린턴에게 그들은 다소 실망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그와 권력을 공유했던 힐러리의 패배는 근본적으로는 측근의 전략 오류 문제라기보다는 그가 너무 기성정치에 깊숙이 편입되었다는 것에 있다. 오바마 현상은 다시 진짜 정치인의 부활에 대한 미국의 오래된 요구이다.

중도적 성향의 유권자들과 국가안보 중시 유권자들은 특권자들의 클럽이 돼버린 공화당에서 왕따였으며 작년에 정치적 사망 판정을 받은 매케인을 후보로 회생시키는 미국 역대 선거 사상 최대의 기적을 행사했다. 이는 매케인 의원을 통해 루스벨트류의 개혁적 보수의 부활을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본선에서 오바마는 그가 예비경선에서 고전했던 힐러리의 강점을 흡수하고자 할 것이다. 즉 그가 단지 소수진영만이 아니라 백인 노동자들, 나아가서는 다수 보통사람들의 진정한 경제적·문화적 대변자인지를 보여줄 수 있다면 승리는 그의 것이 될 것이다.

매케인은 개혁성을 퇴색시키고 보수 본류를 선언했지만 그가 여전히 미덥지 않은 공화당 집토끼와 개혁적 보수이길 원하는 산토끼 사이에서 부단히 비틀거릴 것이다. 만약 그가 절묘한 균형잡기와 공화당의 전설적인 네거티브 공격에서 효과를 거둔다면 승리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본선 결과를 예측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지난달 퓨 리서치 센터의 복수응답 조사에서 대선의 최대 현안으로 경제를 꼽은 유권자가 88%임을 볼 때 경제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오바마의 승리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겠다. 72%의 유권자가 선택한 이라크 전쟁 이슈에서도 미 국민 다수가 철군을 요구하기에 이조차도 결코 매케인에게만 유리한 이슈가 아니다. 성급한 예측이겠지만 현재 나타난 시대정신은 오바마에게 더 미소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오바마나 매케인이 집권 이후에도 웨스트 윙 드라마처럼 현실에서 진짜의 순도를 얼마나 지켜 나갈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미국 정치는 금권정치에 단단히 결박되어 있고 위대한 진보나 보수를 낳은 시민사회의 촛불이 한국과 달리 미약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환기에 진보·보수 양쪽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예사롭지 않은 두 정치인의 대결은 개혁적 혼을 상실한 개혁파와 부시보다 더한 천민보수 정권으로 고통 받는 한국 사회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한국 사회는 언제 드라마의 상상력을 앞서는 제도권 정치를 만들어낼지 궁금하기만 하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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