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6.20 20:09
수정 : 2008.06.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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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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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국 쇠고기 논란의 시작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조건으로 정부가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하면서 시작되었다. 정부가 타결한 조건을 보면 검역주권마저 포기한 채 국제적으로 보면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조건으로 미국 쇠고기와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SRM)마저 수입하기로 했다. 이 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촛불로 표시되자 정부의 대처 방안은 갑자기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거론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입조건의 위험성과 미국 쇠고기의 위험성은 과연 같은 문제일 것인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나 이 부분에 대한 혼선이 문제 제기의 본질을 흐리고 있어 매우 염려스럽다.
무엇을 수입하건 국제사회의 다양한 기준을 바탕으로 자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수입하는 것은 통상의 상식이다. 지금 문제의 본질은 풍부한 임상 사례에 바탕을 둔 유럽연합(EU) 기준이나 최근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무시한 채 전적으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며 특정 위험물질 등의 수입을 허용한 것에 있는 것이지,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 여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주요 여론은 제기된 수입기준의 안전성 논란과 주권 문제를 슬그머니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 논란으로 바꾸려 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사실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 여부에는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이번에 제기된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엄격한 유럽연합의 기준으로 보면 미국 쇠고기는 마치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우유로 비유할 수 있다. 냉장고에 있었다면 유통기한이라는 관리 기준이 하루 정도 지났다고 우유가 상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낮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는 결코 마시지 않고, 또 어떤 이는 조금 살펴보고 그냥 마실 수 있다. 그것을 안전해서 마시느냐, 꺼림칙해서 마시지 않느냐는 각자의 관점이며, 소위 위험인지에 대한 각자의 판단이기 때문에 자신의 관점을 과학적으로 따져서 상대를 설득하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더욱이 그것이 과학적으로 안전하다 해도 정작 중요한 것은 어느 입장의 사람이건 가게에서 우유를 살 때는 그 누구도 좀더 안전하게 단 하루라도 유통기한이 지난 것은 구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양한 국제기준으로 볼 때 자국민에게 유리한 기준을 버리고 굳이 수출국의 입장만이 반영된 쇠고기를 사 와야만 하는가라는 수입조건에 대한 문제 제기를 구입할 쇠고기 자체의 안전성 논란으로 정당화하거나 문제의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요즘 미국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환자의 인간광우병 여부가 매우 중요한 것처럼 말하는 여론의 태도도 이러한 왜곡된 논리의 연장일 뿐이다. 불행히도 정부나 일부 여론은 미국 사람이나 유학생도 먹고 있어 안전하다느니 발병 확률이 낮다느니 하면서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조할 뿐 졸속 협상의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이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여러 나라의 기준과 과학적 사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미국의 입장만 반영된 일방적 타결로 말미암아 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전 예방의 원칙은 무시됨으로써 특정 위험물질이 수입되어 자국민에 대한 안전성이 전혀 확보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과거 캐나다에서 온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미국 농무부는 미국 소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확률을 16억분의 1로 보며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뒤 미국 소에서 두 마리나 검출되었으니 지엽적 문제나 안전성 확률이나 따지면서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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