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8.06 19:07
수정 : 2008.08.06 19:07
|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시론
8월6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래 세 번째 한-미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렸다.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한-미 정상이 세 차례씩이나 회동했다는 것은 인상적이나,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둘러싼 찬반 세력의 시위와 첨예한 대립은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는 미래지향적 한-미 동맹 강화가 주요 화두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한국 쪽 의무이행에 대한 미국 쪽의 강력한 요구가 깔려 있다. 2012년까지 전시 작전통제권을 전환할 터이니, 한국도 그때까지 용산 기지의 평택 이전을 차질 없이 진행해 달라는 점을 분명히하고 있다. 평택 기지로 이전 지연을 빌미로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을 연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려했던 한국군의 아프간 파병, 이라크 주둔 자이툰 부대의 파견 연장, 그리고 방위비 분담 증액 등 민감한 사항은 거론되지 않았다. 쇠고기 파동이 지속되는 현 상황에서 이는 다행한 일이다. 한-미 동맹의 미래 비전에 대한 공동선언을 채택하지 않은 것도 좋은 선택이라 본다. 지난 4월 양국 정상이 합의했던 가치·신뢰·평화구축에 기초한 전략동맹의 모색은 한·미 양국 입장에서 볼 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미국은 한국의 경찰 훈련 요원과 같은 비전투 분야 인력의 아프간 파견을 요청한 바 있다. 한국이 미국과 전세계적 차원의 포괄 동맹에 동참을 약속했기 때문에 미국은 아프간, 이라크 등지에서 이러한 비전투 분야의 한국 쪽 지원을 계속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반대 여론과 미국의 요청을 슬기롭게 조율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핵심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있다. 두 정상은 모두 자국의 입법부와 협력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이른 시일 내에 비준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대선 정국 아래서 부시 재임 중 민주당 다수의 미국 의회 비준을 받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 에서 한국 국회의 비준을 먼저 받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합의는 다분히 선언적 성격이 크다.
두 정상이 북핵 문제 해결에서 6자 회담의 중요성과 한-미 공조를 강조한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남북 관계에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인권 관계 개선을 ‘관계정상화’의 전제 조건처럼 부각시킨 것은 문제시된다. 또한 부시 대통령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에 대한 유감과 조의를 표명한 것은 이해가 가나, 그 사건의 빠른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 남북 당국자 간 대화 재개를 촉구한 것과 관련하여, 북한은 이를 미국을 통한 우회적 대북 압력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남북 관계를 걷잡을 수 없는 파행으로 내몰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대학생들에게 미국에서 영어 연수와 취업 및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대학생 연수취업 프로그램’(WEST)의 신설과 한국의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VWP)의 연내 실시 등은 한-미 관계의 개선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임기 말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정도의 실질적 성과를 얻은 것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년 1월 출범하는 차기 행정부와의 조율을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는 일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