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8.08.27 20:48 수정 : 2008.08.27 20:48

조희연 성공회대 통합대학원장

시론

벌어지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졌다. 한국경영학회 회장을 지냈고 연세대 명예교수인 오세철 교수를 포함해 7명이 ‘사회주의 노동자연합’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구속되려 하고 있다. 이 사건이 너무도 비상식적이어서 스스로 되물었다. ‘도대체 이명박 정부가 어디로 가려는가.’ 오 교수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노동자정치’를 표방하고 공공연히 활동했으며 그런 지향들을 책이나 심지어 87년이나 92년 대선후보 지지 텔레비전 연설 등에서도 당당히 밝힌 바 있다. 그런 오 교수를 새삼스럽게 이명박 정부가 구속하려 하고 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새로 강령을 만든 정도일 텐데 말이다.

여기서 나는 오 교수나 동료들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니까 체포와 구속이 부당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사회주의자인 오 교수가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우리 국민들이 그 정도의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도 스스로를 ‘민주주의 좌파’라고 이야기한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보비오가 지적하는 것처럼 “좌파 모두가 불평등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우파 모두가 불평등을 존속시키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좌파는 기본적으로 현존 불평등에 대립적이며 ‘최대평등주의’적 지향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좌파적 지향과 실천이 있었기에 근대사회는 자유권을 넘어 사회권의 지평으로 이행할 수 있었고 그나마 자본주의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에서 좌파는 필수적이다. 좌파의 여러 흐름에는 생태주의적 좌파, 여성주의적 좌파, 사회민주주의적 좌파, 더 나아가 오 교수처럼 정통 사회주의적 지향을 분명히 하는 좌파도 있다. 오 교수가 돋보이는 점은, 그가 경영학회 회장 같은 지위를 가지면서도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한국 민주주의의 다양함을 잘 보여주는가. 나는 오 교수와 학문적 입장이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오 교수와 같은 사회주의자가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이 ‘최소한의’ 민주주의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내가 깊이 우려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하에서 과거의 권위주의적 관행과 반민주적 성향들이 국가기구들과 국가관료들 사이에서 점점 더 확대증폭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거나 반민주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촛불이 수그러든 이후 이명박 정부가 펴는 강경 드라이브 분위기에 편승하여 하부 수사기관들이 ‘코드 맞추기’를 하면서 ‘신공안정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몰려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며칠 전 식사 자리에서 한 여성단체 관계자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여성단체와 관계하는 한 공무원이 있는데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 태도가 180도 바뀌었고 시민단체를 대하는 데 고압적임은 물론 가급적 소통조차 안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 살리기’ 슬로건에 동의하면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국민들조차도 이런 식으로 과거 권위주의적 행태로 돌아가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방송> 사장 축출, 종교편향 등 계속 무리수를 둘 경우 자신들의 핵심 지향인 ‘경제 살리기’를 추진할 수 있는 국민적 지지기반 자체도 더욱더 균열될 것이다.

지금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촛불이 잦아졌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권위주의적 강경 드라이브를 걸려고 한다면, 국민들의 절망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2, 제3의 격정적인 촛불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나는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의 금도를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조희연 성공회대 통합대학원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시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