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07 22:07
수정 : 2008.11.0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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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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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많은 이들은 방송계가 방송통신 융합 현상에 대한 논란으로 시끄러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지난 6개월여 방통융합 관련 중요 정책 결정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 이면에서 쉽게 결정돼 가고 있다. 반면에 정부의 방송사 개입이라는 ‘전근대적’인 문제에 사회적 에너지가 소진되고 있다. 결자해지의 책임을 진 여권이 어떠한 합리적 논거에도 귀를 막고 있으니 이제 조언자들마저 지쳐 버릴 지경이다.
가장 전근대적인 것은 <와이티엔>(YTN) 사태다. 와이티엔은 공영 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가 자회사로 만들어 출발한 방송사다. 지난 외환위기 때 자본금이 잠식된 상황에서 김대중 정부는 스스로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거슬러 가면서도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로써 이 방송사는 한전케이디엔 등 공기업이 주식지분 60% 가량을 소유한 공영방송사가 되었다. <문화방송>(MBC)도 주식 70%를 공익기관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소유하고 있기에 공영방송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도 문화방송이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와이티엔 정체성을 둘러싸고 여권 인사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하면서 순간적인 위기만 넘기려 한다. 신재민 문화부 차관은 와이티엔이 ‘민간기업’이라고 했다가 얼마 후 “공기업이 보유한 와이티엔 주식을 팔겠다”는 위협발언으로 이것이 공영방송사임을 스스로 증명해 버리고 말았다. 이 뒤에도 고흥길 국회문광위원장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물론 한승수 국무총리마저 나서 와이티엔이 “상장회사기 때문에 정권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언론인 대량해직 사태까지 이르게 해놓고 모르쇠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언론 또한 ‘말옮기기 저널리즘’에 매몰돼 진실 규명 없이 발언 내용만 그대로 전달하면서 선전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여권 주요 인사 및 구본홍씨 자신은 30년간 방송사 동안 근무한 사실에서 비롯되는 ‘전문성’이 정권유착을 가릴 수 있다는 논지를 펴기도 한다. 방송기자 생활을 30년 하면 모두가 방송 전문가인가? 그렇다면 한국에서 30년, 아니 평생을 산 사람은 모두 한국 전문가이며, 미국 사람 모두 미국 전문가라는 말인가? 대통령 당선에 적극 나섰던 사람이 보도전문채널 사장이 돼서는 안 된다는 선진사회 공영방송의 상식조차 모르는 것 자체가 그가 방송 전문가가 아님을 드러내준다.
이에 앞서 <한국방송>(KBS) 사장이 정당하지 않은 사유로 해임되는 과정 또한 전근대적이었다. 더구나 관계기관 대책회의 등의 논란 속에 임명된 새 사장은 자신을 반대한 사원들에게 인사보복을 가하였다. 이러한 일이 공영방송 독립성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당 방송사 종사원들이 오불관언인 것이 더욱 놀랍다. 이들이 힘을 합쳐 한목소리로 올려달라고 했던 수신료도 이제와 생각하니 공익적인 방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복지대박’을 위한 것이었음이 의심된다.
필자는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전공인 동료 교수에게 아직 모더니즘에도 못미친 ‘프리모던’의 한국사회에서 무슨 포스트모더니즘이냐며 힐난조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세계 방송 역사를 공부해 온 필자는 한국 방송이 단기적으로는 일진일퇴하지만 높은 곳에서 보면 발전의 뚜렷한 선을 따라가고 있음을 믿는다. 언론학자들은 다만 이 작은 현실들을 세세히 기록해 두었다가 훗날의 굵은 역사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할 뿐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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