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1.17 20:35
수정 : 2008.11.1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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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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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국어사전을 보면 ‘모욕’이란 말은 ‘깔보고 욕되게 하는 것 또는 업신여기는 것’ 정도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말이 최근 인터넷 세상에서 ‘인기 단어’가 되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주로 하는 형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모욕죄의 시초는 근대 유럽의 국왕 모독죄에서 기인한다. 시작부터 권위적이고 국가나 특정한 정치권력을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음을 짐작게 한다. 아마 우리가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우화를 생각한다면 분명히 이해될 것이다. 당시 신하들과 백성들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말을 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는 처벌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사실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모욕죄 조항을 폐지하거나 사문화하는 추세다. 일반인 모욕죄가 있는 나라는 독일과 일본이 있을 뿐이다. 민주국가에서 오프라인의 모욕죄조차 최소화하는 이유는 민주주의 가치인 표현의 자유가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시민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모욕죄도 사라지는 추세를 고려한다면, 사이버 모욕죄는 시작부터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 법안이다.
사실 사이버 모욕죄가 신설된다고 해도 실제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언어는 상대적이고 다의적이다. 속담에 ‘좋은 말도 세 번’이란 말이 있다. ‘참 잘났다, 참 웃긴다’라는 댓글이 수십 개 달렸다면 어떤 이는 좋다고 하고, 다른 이는 모욕을 느낄 수 있다. 언어는 억양·표정·상황에 따라 모욕도 칭찬도 된다. 그것을 제3자인 수사기관이 처벌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 수사기관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금칙어 사전처럼 ‘모욕단어 사전’을 배포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진풍경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포털과 인터넷 뉴스에 수천만 게시글과 댓글을 감시하고 심사하기 위해 수천 명이 모니터 앞에 있어야 할지 모른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반의사 불벌죄’(비친고죄)와 강화된 처벌 조항이다. 반의사 불벌죄는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아도 수사기관이 인지수사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반대한다고 밝혀야 처벌되지 않는 조항이다. 그런데 이것이 악용된다면,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법이 해석될 수 있고 사법 판단보다 수사기관이 과도한 권력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도 민생치안에 바쁜 수사기관이 시민들의 모욕을 판단하는 자상함(?)을 가질 수 있을까?
우려되는 것은 권력자나 일부 정치인들의 보호에만 앞장서고 시민들은 방치하는 사태다. 결국 이 법은 시민을 위한 법이 아니라 소수 기득권자를 위한 법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인터넷이라고 해서 치외법권 지역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인터넷이란 이유만으로 과도하게 처벌받을 이유도 없다. 인터넷은 오프라인의 연장선이다. 그런 만큼 인터넷의 건강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터넷만의 문제가 아닌 그것을 이용하는 시민의 문제도 있다. 단기적인 처벌·규제보다 장기 시민교육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프라인의 뒷담화 문화나 헐뜯기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한, 악성 글을 척결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사이버 모욕죄는 현행법(형법)으로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다. 누리꾼들과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현행 제도의 적절한 집행으로 해결 가능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런 맥락에서 국가는 이런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인터넷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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