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12.12 19:41
수정 : 2008.12.1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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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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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항 두 곳을 점거하였던 민주주의민중연대(이하 ‘연대’)가 타이 헌법재판소의 집권 연립정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고 해산하였다. 지난 9월 사막 총리를 퇴장시킨 데 이어 또다시 ‘쾌거’를 이룬 것이다.
‘민중헌법’이라고까지 극찬을 받았던 1997년 헌법 체제하에서 명실상부한 대중적 지도자로 떠오른 탁신은 과거 진보세력의 일부를 끌어들여 서민을 위한 기초의료보장제도, 농가지원정책 등을 추진하면서 농촌에 탄탄한 지지기반을 구축하였다. 이른바 ‘탁시노믹스’가 경제회생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데 성공하는 것으로 보이면서 국제사회까지 그의 능력에 주목하였다.
그러나 그의 인기가 2005년 총선 압승으로 확인되면서 그의 독선은 더 심해졌다. 이미 그 이전부터 탁신은 언론을 비롯한 시민사회 길들이기에 나서는가 하면 타이 남부지역 무슬림에 대한 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마침내 그를 지지하던 시민사회 진영과 지식인들이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일부 기업인들도 등을 돌렸다. 마침내 그의 행보가 국왕의 권위를 넘보는 것으로까지 비쳤다. 때맞춰 존왕파를 자임하는 군부, 민간관료, 정치인, 언론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여기에다 2006년 탁신 일가가 법망을 교묘히 피해 19억달러에 이르는 주식을 세금 한 푼 안 내고 외국에 판 것이 발각되자 존왕파와 사회운동권의 동맹조직인 ‘연대’의 탁신 퇴진운동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탁신이 농촌사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방패로 2006년 4월 조기총선에서 다시 승리하고 좀처럼 물러서지 않자 ‘연대’는 쿠데타를 적극적으로 요청하였다. 2006년 9월 쿠데타는 그 결과였다.
그런데 군부와 존왕파가 만들어낸 2007년 헌법하에서 치른 총선에서도 탁신의 정치적 후계 세력인 피플파워당은 농촌의 지지를 받아 집권에 성공하였다. 군부의 힘을 빌려 탁신 퇴출에 성공하였던 ‘연대’는 사실상의 탁신의 재집권을 허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표명하고 올해 5월 말부터 ‘점거투쟁’에 나섰다.
‘연대’는 한마디로 탁신과 그의 추종자들을 퇴출되어야 할 부패정치집단으로 간주한다. 또 이들을 지지하는 농촌 유권자들의 정치의식을 폄하한다. 명목상 이들의 관심사는 정치적 윤리에 기반한 ‘신정치’의 건설이다. 그러나 이들의 ‘신정치’는 낡은 부패정치를 청산하려면 군부의 도움도 필요할 수 있으며, 의회의 70%는 임명제, 나머지 30%는 선출제로 하자는, 다분히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에 어긋나는 안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친정부 세력으로 분류되는 반독재민주주의연합전선(이하 ‘전선’)은 ‘연대’를 왕실을 등에 업고 군의 정치개입과 국수주의를 공공연하게 부추기는 파시스트 세력으로 간주한다. 이들이 볼 때 탁신 정파는 군정체제라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선거를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 절차적 정당성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탁신 정파 지지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직접행동이다.
그러나 ‘전선’의 지도부는 과거 탁신의 부패행각, 독단적 행태 등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렇기에 윤리적 하자가 있는 탁신을 전면에 내세운 이들의 정치적 기획이 성공할 가능성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일단 타이 사회는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판결로 또다시 쿠데타를 불러올 수 있는 반탁신 진영과 친탁신 진영 사이의 극단적인 ‘내전’ 상황을 피하였다. 그러나 갈등의 해결 방식을 제도화한 민주주의 원리에 대한 지적, 실천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타이 사회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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