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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08 22:17 수정 : 2009.03.08 22:17

김승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사법부가 정치권력 앞에 어떻게 굴신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검찰이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이 특정 판사에게 집중 배정되었다. 또 작년 10월9일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판사가 집시법상의 야간집회 금지조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 제청을 한 닷새 뒤 신영철 당시 법원장은 촛불집회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는 형사단독 판사 12명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재판에 간섭한 사실이 드러났다. 형법상의 직권남용죄, 헌법상의 사법권 독립 침해와 탄핵사유 등 다양한 (헌)법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한마디가 가관이다. “사법행정과 재판간섭의 경계는 미묘한 문제다. 판결문에 오자가 있을 때 법원장이 고치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인데 이를 간섭으로 느끼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번 신영철 파동을 판결문의 오자 고치기 정도로 취급하는 대법원장의 경박스러움 또는 다른 의도가 그대로 묻어난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들먹인 사법행정은 법원의 작용 중 재판 외의 작용을 가리킨다. 사법행정은 법관이 아닌 법원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재판과 사법행정의 경계는 분명하다. 대법원장이 이걸 모르고 말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그렇게 말했다면 부도덕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법 제42조 제1항을 따르면 법관이 재판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조항에 위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을 경우 당해 소송사건의 재판은 원칙적으로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결정이 있을 때까지 정지된다. 그러나 실무상으로는 형사사건의 경우 당해 사건의 재판진행만 정지되는 것이 아니라 위헌제청된 법률조항이 적용되는 모든 사건의 재판진행이 정지되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다. 일단 유죄판결을 해 놓고 나중에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리면 상급심 또는 재심단계에서 무죄판결을 내림으로써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법원 내부에서 사법권 독립을 수호하고자 하는 의식 있는 판사들이 법원 내부통신망 등을 통해서 이 문제를 제기하였고, 결국 외부에까지 알려지게 됨으로써 사법부와 정권 사이 이심전심의 유착이 드러나게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영장사건 몰아주기의 문제점을 판단하기 위해 독일 법원조직법을 들여다봤다. 사건 배당과 관련해 조문을 무려 10가지나 규정해 놓고 있다. 모든 법원에 판사회의를 설치하도록 하고, 그 판사회의에서 사건배당을 결정하며, 판사회의의 구성원이 아닌 판사는 사건배당이 확정되기 전에 사건배당에 관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법원장이나 대법원장이 재판에 개입할 여지를 철저히 봉쇄해 버린 것이다. 이에 비하면 대한민국 법원의 사건배당은 원시상태 그것이다. 사법권의 독립은 법원장·대법관·대법원장 등 고위법관들이 앞장서서 쟁취해 나가야 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면서 법관들이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신영철 대법관과 이용훈 대법원장은 과연 그런 책무를 수행했는가를 자문해 보라.

국회는 이번 신영철 사건 조사를 위한 국정조사권을 발동해야 하고, 대법원이 진심으로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규명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법원 외부 인사들로 진상조사단을 꾸려야 할 것이다. 그에 앞서 신영철 대법관은 즉시 대법관직을 사퇴하는 게 맞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어떠한 조사에도 성실하게 응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김승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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