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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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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필자는 지난 2월4일치 〈한겨레〉 ‘시론’을 통하여 현재 진행되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및 다가오는 지방자치 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간의 선거 연대를 촉구하였다. 이후 양당 사이에 울산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위한 후보 단일화 논의가 계속되어 선거 연대가 가시화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후보 등록 마감 전 단일화는 무산되었고, 현재 민주노동당의 김창현, 진보신당의 조승수 두 후보는 각각 후보 등록을 하고 별도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일차적 이유는 울산 북구 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 단일화를 위한 민주노총의 투표를 불법으로 유권해석했기 때문이다. 2002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노동조합이 선거운동 기간 전에 예비후보에 대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선전 행위를 하지 않고 투표를 하는 것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지만, 이번 울산 북구 선관위는 이러한 중앙선관위의 해석도 무시한 것이었다. 이후 민주노총 울산본부도 내부 이견이 발생하여 후보 단일화를 위한 총투표를 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제 남은 것은 선거운동 기간 중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쉬워 보이지 않는다. 두 정당 및 후보 사이에 분당으로 인한 구감(舊感), 진보 정치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경쟁, 여론조사의 방식과 절차에 대한 이견 등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 소속 인사들은 과거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 사이의 단일화 실패와 그로 인한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맹비난하였지만, 이제 두 진보정당이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두 정당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 “감 놔라, 배 놔라” 할 자격은 없다. 그렇지만 두 정당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단일화 실패 이후 어떠한 일이 닥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예상이 되기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당장 양 정당과 후보는 단일화 실패를 상대 당과 후보 탓이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낼 것이다. 선거 결과가 좋지 않으면 상대에 대한 비난은 더 가중될 것이다. 입으로는 ‘진보 대연합’을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역시 쟤네들은 안돼”라고 되뇌며 서로를 적대시할 것이다. 보수정당보다 경쟁 진보정당을 더 미워하고 경원시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다가올 지방자치 선거에서도 겉으로는 후보 단일화를 거론하겠지만 속으로는 각개약진의 길을 추구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대중의 냉소와 실망은 커질 것이다. 이 경우 진보정당의 미래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노동자 정치 1번지’라는 상징성을 갖는 울산 북구의 국회의원 한 석에 대한 양당의 열망은 치열하다. 게다가 단일화가 되면 당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일방의 자발적 양보나 살신성인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경우 후보 단일화는 양 후보와 정당에 대하여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외부적 세력이 있거나, 또는 양 후보와 정당이 정치력을 발휘하여 서로의 이해(利害)를 합리적으로 분배·조절할 수 있는 경우에 가능하다. 현재 시점에서 첫 번째 경우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적·도덕적 힘을 가진 세력은 없으므로, 두 번째 경우만이 유일한 선택지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지도부와 두 후보는 즉각 만나야 한다. 그 자리에서 그동안 그리도 외쳐왔던 진보의 대의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누구를 내세워 진보의 원내 교두보를 추가할 것인지, 그리고 양보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혜택을 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국민 모두가 두 정당 지도부와 두 후보의 그릇과 정치력을 지켜보고 있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두 진보정당의 정치적 선택은 적어도 향후 10년간 진보 정치의 명운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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